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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깽s Jun 18. 2021

엄마의 서랍

수많은 엄마들의 삶에 소소한 위로를.

태초에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태어난 적도 없던 뱃속의 아기를 부모님은 느이 오빠라고 말했다.

"그때는 먹고살기 힘들어 지웠는데 몇 달 후에 네가 또 들어선 거야. 그 애를 낳았다면 너는 없었겠지."

담담했던 그 얘기들 끝에 나는 더 담담해져 되물었다.

"그럼 왜 나는 나은 거야? 아들인 줄 알았다면서 그 애를 낳았어야지!"  

  

부모님은 자주 싸웠다.

어렸던 나는 그 싸움을 멈출 도리를 알지 못했다. 겁을 먹지 않아도 될 나이를 가늠하면서부터는 시간이 빨리 흐르기를 바랬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에게 기다림의 시간은 길었다.  분명히 웃었던 날들도 있었을 테지만 여전히 굵직한 기억을 차지하는 것은 고된 엄마의 얼굴이다. 희와 락이 결여된 비뚤어진 듯 굳게 앙다문입술.

미소가 사라졌던 엄마의 얼굴보다는 목소리와 억양에서 살가움 들을 느꼈다. 피로에 찌들어 앙다물어진 입술사이로 성까지 다 붙여서 길게 불러준  이름 석자가 언제나 푸짐했기에 거기에서 겨우 겨우 사랑을 받아먹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에 일찍 홀로 된 고모와 사촌동생들까지 우리 가족은 9명의 대가족이었다. 엄마는 우리 집안에서 동화되지 않는 유일한 한 사람이었다. 언제나 8대 1로 버텨야 했을 엄마의 작은 몸이  행여라도 부서져 없어질까 조바심이 났다. 그러나 엄마는 쉽게 부서지지도 상처만 받지도 않았다. 때로 장군처럼 부딪혀보기도 하고 악다구니로 대들어보기도 했다. 언제나 역부족이었지만 그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어린 딸의 눈에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아버지는 철저히 남의 편이었다. 자신들의 그늘과 양지에 엄마를 데려와 쉬게 하지 못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신 그 순간까지도 같이 살았던 과거에 비하면 같이 산 정은 있어도 그립거나 보고 싶은 마음은 별로 들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어렸던 내 불안의 원인에 조부모님 또한 큰 역할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딸이라서 마음이 쓰였던 것일까.

엄마는 어떻게 그 시련을 혼자서 다 버텼을까. 얼마나 외로운 시간의 터널들을 홀로 건너야 했을까. 왜 그런 삶을 숙명인 듯 참아냈을까. 그 삶을 받아들이고 참아내는 힘은 어디에서부터 나왔을까.     

엄마는 몇 년 전 동생의 결혼식을 끝으로 황혼이혼이란 걸 했다. 처절했던 삶이 옷이 되고 냄새가 되어 마치 완연한 나인 것 같이 익숙해졌을 때.  어쩌다 홀연한 스스로가 가벼워 불현듯 어! 이게 아닌데, 하고 엄마의 정신을 사로잡으면 어쩌나 하고 더럭 겁도 났다.

엄마의 수고와 인생의 고된 몸부림의 흔적들이 피와 살이 되어 고약한 후회를 낳을 것만 같았다.

평생을 숙명처럼 모든 것을 수긍하고 받아내며 인내했던 시절들이 굳은살들처럼 박혀 있을 텐데 정작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익숙함의 옷들을 어떻게 벗을 수 있을까.

그러나 엄마는 그 옷을 말끔히 벗고 깨끗이 개켜 서랍에 넣었다. 다른 걸 떠나서 엄마가 새로운 서랍을 열어 묵혀두었던 자신의 이름을 찾는데에 찬성였지만 이렇게 말끔히 세월의 무게를 내려놓을 줄은 나도 몰랐다.

엄마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부터가 오류였는지도 모른다. 평생 맞벌이에, 일주일에 고작 하루 쉬었던 엄마. 그것도 평일에 쉬는 바람에 밀린 집안일을 해야 했던 엄마는 과업에 지쳐 자식들이 하교하고 오는 줄도 모르고 쪽잠을 청하다 할머니에게 꾸중을 들어야만 했다.

세월의 흔적은 이제 엄마의 손등에 툭 붉어진 힘줄로만 남아있다. 시퍼렇고 굵은 힘줄이 작은 손등 위에 문신처럼 드리워져 있다. 엄마가 고군분투하며 살았을 세월을 이제는 딸이 지나가고 있다. 피를 어떻게 속일까. 굵은 힘줄은 내 작은 손등 위에도 적당히 붉어져 도장을 찍은 듯 도드라져 있다.

30년 치 빚진 자식 사랑이라며 오늘도 엄마는 40이 넘은 딸을 위해 택배를 주문하고 전화로 안부를 묻는다. 머쓱해지도 하지만 이런 날 만큼은 10살 어린애가 된 듯이 엄마가 보고만 싶다. 덩달아 못 부려본 투정도 부려보고만 싶다.

   

하굣길, 비가 억수로 온다. 학교 교문 앞 아낙들을  재빠르게 쳐다본다. 엄마가 오지 않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버릇이 되었다. 최대한 빨리 저 인파를 뚫고 지나가자.  엄마는 삶이란 고약한 것에 또 붙들려 있나 보다. 빨리 엄마의 마음 팍에 가 닿고 싶어 비오는 내리막길을 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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