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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깽s Jun 18. 2021

소란한 오후

예기치 못할 순간들은 예고없이 찾아든다.

아침 기상예보는 별로 좋지 않았다.

인생에서 배를 타본 경험이 많진 않아도 배나 비행기로 인한 사고가 교통사고보다 없다는 사실들이 크게 위안이 되었다. 오늘은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외도에 가는 날. 아주 오래전 티브이에서 본 외도의 풍경이 눈에 박힌 듯 언저리에서 빛이 났다.

‘언젠가 저 섬에 가 볼 수 있을까’ 어렸던 마음은 어느새 중년이 되었다.

야심 차게 준비한 외도 기행 이건만 바람이 심상치가 않다.    

별일이야 있을까.

70은 거뜬히 넘은 듯 보이는 선장이 자기소개를 했다. 조수로 보이는 선원이 출입구를 관리하고 선박에 탑승한 인원을 체크했는데 역시나 노쇠해 보였다.

선장과 선원의 노쇠한 기력처럼 마이크도 기력을 다했는지 겨우 알아들을 소리로 승객들에게 주의사항을 전했다.

"바람이 많고 파도가 다소 높은 편이니 선박의 이층 출입을 금지합니다" 철컹철컹!

일층에서부터 문이 걸어 잠궈졌다. 그때까지도 뭐 큰 대수랴...


배가 방파제를 지나는 순간 아뿔싸. 생각보다 많이 흔들리는 배 때문에 나는 심호흡을 해야 했다. 가뜩이나 공포심이 큰 터라 가족들과의 여행인데 부모로서 체면 구기는 본성들이 나올까 싶어서였다.

아이들의 안위를 영혼 없이 더러 살피며 눕다시피 기대어 누운 채로 하늘만을 뚫어져라 응시한 채로 외도에 도착했다.

외도와 패키지급이라는 해금강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안 그랬다면 한 시간, 온전히 배로 이동할 수도 없었을지도 몰랐다. 고작 30분을 달려왔는데도 배는 망망대해에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렸던 것이다.

막상 육지 땅을 밟고 나니 사람이라서 얼마나 간사한지! 헛웃음이 다 났다.

섬에서 허락된 시간은 짧았다. 어영부영 서로의 무용담을 듣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얼른 기분을 전환시켰다.

드디어 외도에 입성한것이다.!

햇빛이 아름드리 둘러싼 섬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섬 너머로 보이는 그 파아란 바다도 태연했다.

겸연쩍어지고 말았다.

'고작 저 정도에 겁을 먹었나... 갈 때는 훨씬 낫겠지'

눈으로 풍경을 꼭꼭 씹었다. 이 먼 곳엘 언제 다시 오려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사람들에게 뒤질세라 핸드폰 카메라의 셔터를 얼마나 눌러댔는지...

파랑과 하양, 초록과 오색찬란한 색들의 조화가 하늘상 앞에서 차려진 듯 아름다웠다. 상당히 인위적이었지만 분명히 눈을 사로잡는 구석이 있었다.

허락된 세 시간의 섬 투어 시간의 끝이 다가오자 아까의 바다가 다시 한번 골을 내면 어쩌나 싶어 새삼스레 근심이 밀려들었다.


아까의 노쇠한 뱃사람들이 승객들을 태우며 이번엔 한술 더 떠 섬에서 배로 이동하는 다리 위에서 공지사항들을 얘기했다.

" 자~~ 여기는 여러분 남해 동부해상의 먼바다입니다. 일기예보 때 많이 들어봤지요오? 먼바다에서 파도가 높게 인다는 그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여러분들 파도가 다소 심할 것으로 예상되니 각자 봉지 하나씩을 챙기시고...."

순간 나는 구명조끼가 있는지 선장과 선원 말고 우리를 도울 젊은 직원이 있는지 얼른 살폈다.

올 때도 보지 못했는데.. 다시 찾을 길은 없었다.

아까보다 더하다니 지옥의 30분이 될 터였다. 오로지 믿을 것이라곤 저 노쇠한 두 뱃사람들 뿐이었다.

아이들에게 저마다 당부를 하고 겁먹지 않도록 다독이는 사이 배가 출발했다.

더 미룰 것도 없다는 듯이....


창 너머로 출발과 동시에 파도밖에 보이지 않자 큰아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남편 역시 배멀미로 식은땀을 흘리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작은아이가 홀로 정신을 잘 부여잡고는 제 형과 아빠를 번갈아 토닥이며 양쪽 손을 나눠 잡아 쥐며 위로를 해주고 있었다.

나는....

나는 다른 차원의 공포에 압도되어 더이상 가족의 안위를 돌보기가 힘든 지경에 닿았다.

심호흡도 소용이 없었다. 신음에 흐느낌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제는 창문에 하늘이 아니라 집채만 한 파도의 너울만이 보였다.

얼핏 배가 쓰러진것도, 잠긴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바다는 더는 파란색을 띄고 있지 않았다.

배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릴때마다 승객들이 비명을  질러댔는데 그때마다 노쇠한 선장이 시동을 끄는 바람에 배는 멈춘 자리에서 요동을 쳤다.

시간을 가늠하면서부터 그 시동을 끄는 것이 외려 더 큰 공포가 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봉지가 부스럭 거리고 악다구니와 울음 섞인 탄식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노쇠한 선원이 승객 중 최연소쯤 되는 내 아이들에게 다가와 조금만 참으라며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보냈다.


드디어 방파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방파제에서도 항구까지 한참이었지만 이제 망망대해는 끝이 나고 육지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안도였다.

도착했다는 선장의 안내멘트와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배가 드디어 작은 항구에 닿았다.

"날씨가 이래 이상한 데에 니들 돈벌어쳐 무으려고 배 띄았나!!! 내 가마아인는다! 미친거 아이가!

누구를 죽일라꼬오 악!!!! 분하다 분해 내 다신 배 안 탄다! 그리고오 내 니들 회사 소문낼 끼다 돈에 눈멀어 사람 잡는다꼬오!!!"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아이들까지 챙기느라 마지막으로 내리는데 보니 두 노인의 눈가가 촉촉했다

"오늘 마이 무서웠제? 니들 담에 외도 조타꼬 또 오믄 이 배 다시 타러 오그라! 우리가 왔어요~하므는 이 할아버지가 공짜로 여자 친구까지 태아 주께"

승객들의 몸부림에 두 노인은 한층 더 노쇠해 보였는데 아이들에게 웃으면서 그렇게 농담을 해주었다. 나는 고생하셨노라고 그래도 선장님 덕분에 이렇게 무사히 도착했노라고 잊지 않고 노고에 감사를 전했다.

금방 말을 잊지 못하는 선장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평생 뱃사람이었을 당신들 조차도 한순간 앞을 예측하지 못할 테고 이런 시간들이 그들의 삶이 되었겠단 생각,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레 몸처럼 마음도 연약해질 수 있는 자연의 이치를 놓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


두 노인은 삶에서 얼마나 많이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을까.

그 고단함을 글 몇 자로 설명할 수나 있을까.

30분 공포에 휩싸여 욕을 하고 악을 쓰고 원망과 비난이 비록 바다 위를 떠다녔지만 그분들의 삶의 시간들 덕분에 다시금 육지 땅을 밟게 된 것은 축복인지도 모른다.


삶은 예기치 않은 순간마다 우리에게 숙제를 준다.

그것은 때론 선물이되기도, 원망과 비난 또는 좌절로 점철되기도 한다.

그런데 딱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렇게 결론짓는 것은 다름 아닌 '나'라는 사실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기를 바란다.


고작 30분 공포로 죽다 살아났다며 혼을 뺀 우리는 다른일정들을 소화하지못하고 오후 내 숙소에서 그야말로 호캉스를 했다.

때론 그러한 소란함이 뜻밖에 휴식을 선물하기도 한다는 것.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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