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코어 인생아_옥상달빛
뭐가 의미 있나 뭐가 중요하나 정해진 길로 가는데
축 처진 내 어깨 위에 나의 눈물샘 위에
그냥 살아야지 저냥 살아야지 죽지 못해 사는 오늘
뒷걸음질만 치다가 벌써 벼랑 끝으로
어차피 인생은 굴러먹다 가는 뜬구름 같은
질퍽대는 땅바닥 지렁이 같은 걸
그래도 인생은 반짝반짝하는 저기 저 별님 같은
두근대는 내 심장 초인종 같은 걸 인생아
[하드코어 인생아_옥상달빛]
가사가 들어오는 곡이 있고, 무드와 풍경이 들어오는 곡이 있다. 내게 이 곡은 후자로 설명된다.
도입부 코드가 눌려지자마자 나는 그 때의 그 곳으로 빠르게 돌아간다. 20대 중반, 청파동 반지하 내 방 침대.
B-BM7-B6. 무심하게 한 박자씩 툭툭 눌려지는 코드 진행은 아련하고 쓰라렸다.
마음에 깊게 꾸욱 들어온 곡은 무한 반복 청취하곤 하는데 이 곡이 내게 그러했고, 부러 침대 머리맡 옆 책상 위 컴퓨터로 반복 재생을 누른 뒤 잠들었다. 잠들기 직전의 본 것, 들은 것, 행동한 것이 잠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던가, 나는 그 아련한 감각과 함께 잠을 청했고, 이른 아침이나 어스름 새벽에 눈을 떴을 때, 작게 흘러나오는 곡의 사운드가 은근하고 뭉근하게 좋았다.
자기 직전과 잠의 순간들, 기상 직후로 이어지는 꽤 긴 시간을 아련하고 쓸쓸하며 약간은 글루미한 이 곡으로 굳이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곡의 가사를 매번 상상 그림으로 자동 번역하고 해석하는 내가, 신기하게도 이 곡에서만큼은 예외였다. 그 이유는 성격 짙은 단어의 나열과 곡의 처연 무드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의미 없는, 정해진 길, 축 처진, 눈물샘, 그냥, 저냥, 뒷걸음질, 벼랑 끝, 굴러먹는, 뜬구름, 질퍽대는, 지렁이.
이 단어들이 상징하는 것들이 꼭히 나의 그것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처음 곡을 듣는 순간부터 마음에 꾸욱 하고 들어오더니 이내 깊고 넓게 퍼져버렸다.
스윽, 투욱, 추욱, 하는 저 밑바닥의 단어들이 지나가고, '그래도'와 '저기 저 별님', '심장 초인종'으로 약간은 꺼내주고 마무리해주어 고마웠다. 그럼에도 끝까지 처연무드를 지켜주어 더 고마웠다.
양옆 두 아이를 끼운 채 그들을 위한 '밤에 듣기 좋은 편안한 음악'으로 취침에 들어가는 현재로선 전혀 상상할 수 없는 20대 그 날들의 그 감성. 문득 아득하고 아련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반짝반짝하는 저기 저 별님과 두근대는 내 심장 초인종이 그 시절보다 선명해졌다는 것. 밑바닥 감정들이 유난히 짙었던 날들, 나의 회색 지점들을 가려주는 두 아이와 한 남자에게 유난히 고마운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