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t-and-pasted printed paper, charcoal, graphite, and color pencil on Yupo paper
"누군가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면 그 순간부터 내 인생은 노난거다."
이게 무슨 미친 소린가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맞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상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뭔 헛소리야. 약 먹었나..."
그런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한 번 생각해보자.
연말 시상식장에서 우리는 종종 과한 옷차림을 하신 무명 여배우님을 가끔 뵙는다.
그분들이 과한지 모르고 입으셨을까?
아니다 이미 애저녁에 계산 다 끝낸 후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입었다고 봐도 크게 과하지 않다고 본다.
그럼 그게 나쁜가? 노우~ 전혀 아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제1항에 의거‘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라고 명시되어 있으므로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나 그 보다 덜 존재감 있고 덜 영향력 있는 (물론 개취에 따라 '덜 영향력'과 '덜 존재감'의 정의는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자유는 무한히 누릴 수 있는 자유대한민국에 사는 민주시민이다.
그런데 하물며 반라의 옷차림을 하고 뉴스를 진행한다거나 벗은 몸으로 도배된 사진집을 출판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아니면 청와대 앞에서 서양의 어느 채식주의자 여성처럼 벗은 몸에 동물의 피를 바르고 시위를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남자가 되었든 여자가 되었든 내가 힘들여 열심히 잘 가꾼 몸을 내가 번 돈으로 사거나 혹은 내가 돈 벌어줄 소속사 사장님 돈으로 샀든지 빌린 옷을 내 몸뚱이에 걸치고 나와 공개적으로 선 좀 보이고 싶다는데 그게 무슨 그렇게 큰 죄가 되나?(물론 공중파를 타기에 절대 과한 옷차림이라면 좀 문제가 되겠지만 우리는 또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의 자손들 아닌가 그래서 그런지 우리 배우님들이 또 선은 어느 정도 지켜들 주신다)
뭐 성향에 따라 조금 민망하다 싶으신 분들은 유사 이래 가히 최고의 채널 홍수 시대에 살고 계신데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채널을 찾아가시면 그만이고 또한 특히 잘 가꾼 타인의 몸을 격렬히 질투하는 일부 특정 개인의 '과하게 관리 안된 몸'과 '패션 센스'라는 것과는 이미 일사후퇴 때 사별한 듯한 복장이 사회적으로 또 은근히 일으킬 수 있는 물의 들의 '반사회성'과 '반이타성'도 절대 무시할 성질의 것이 아님은 꼭 유념해야 할 사항이다.
무튼 다시 돌아와서 문두文頭에 밝힌
"누군가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면 그 순간부터 내 인생은 노난거다."
이건 대체 뭔 소리냐
요즘 유튜브나 웹 서핑을 하다 보면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 늘리는 방법"이나 혹은 "유튜브 너도 할 수 있어" 등 가히 자기 피알 PR의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우리는 자기 피알 PR이 일상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대체 우리는 왜 그러는가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아주 기본적인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인간인 우리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예를 들어 '당신 글 정말 최고'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해주겠다는 노벨문학상을 거부하며 '타인으로부터 받는 인정의 가치'따윈 개나 줘버린 프랑스의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 Jean Paul Sartre' 등의 사람들에게 "어멋 세상에 저걸 거절하다니 정말 간지 폭발이다."라며 마구 열광하는 것일지도...
그런데 말이다.
이상하게 유튜브 동영상을 보다 보면 신기하게 대체적으로 '좋아요'가 많은 동영상일수록 '싫어요'도 많은 경우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즉 영상의 질과 상관없이 조회수 10 이상인 영상에 비해 조회수 10000 이상인 영상의 '싫어요' 수가 절대적으로 많더라는 것이다.
한 타임에 불량품이 100개당 5개가 나오는 인형공장이 있다고 치자 어느 날 하늘이 도와 주문이 폭주하여 만개를 생산했고 불량품도 마구 늘어났다. 그러면 갑자기 불량품이 왕창 늘어났으니 그 공장 주인은 확 불어난 불량 인형 개수에 좌절하며 "결국 난 이것밖에 안 되냐."면서 자신의 머리를 마구 쥐어뜯어야 하는가
늘어난 주문에 공장기계를 최신으로 싹 교체하거나 좀 더 숙련된 직원을 추가적으로 들이지 않는 이상 이 상황에서 그 어느 누구도 최소 '잘못한 이'는 없으며 기존의 공장 룰대로 돌아갔다면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결과인 것이다.
이것을 인간관계의 측면에서 생각해보자
앞서 밝혔듯 우리는 무슨 클래스 뭔지 돈까지 들여 수업을 들어가면서까지 인스타 팔로워 수를 늘리거나 유튜브 구독자 수를 올리기에 여념이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왜 그럴까
바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단군 이래 가장 돈 벌기 좋다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나날이 발전하는 IT기술의 혜택으로 SNS 등을 통해 누구나 손쉽게 유명인이 될 수 있으며 또 그 유명세로 물건 등을 판매하고 또 그 유명인들에게 애정을 가지게 된 사람들은 본인들이 열심히 번 돈을 자기가 애정 하는 특정 유명인이 팔거나 추천하는 아이템에 지출하는데 기꺼이 지갑을 열곤 한다.
즉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취향 등을 지지하며 돈을 보내는 것이므로 누군가 돈을 번다는 것은 그만큼 타인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의 방증이기에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은 타인에게 그만큼 많은 양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있다.
바로 '좋아하는 사람이 는 만큼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는다는 것이다. 이게 좀 심해지면 악플에 저주까지 아주 가관도 아닌 사람도 생겨나기 마련인데 이 정도 되면 이제 슬슬 유명인들은 그간 늘어난 날 사랑해준 이들이 내게 벌어준 돈으로 정신과도 가고 스트레스성 폭식을 할 음식도 사며 또 그래도 대중 앞에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나서야 하니 또다시 몸을 원상 복귀시킬 다이어트 약 및 피부과나 마사지 등에 번 돈을 또 고스란히 지출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시 대중의 사랑을 얻기 위해 동영상에 뽀샤시 하게 등장한다.
그러다 보면 또 '좋아요'나 구독자 수가 늘어감에 따라 또 '싫어요' 나 심지어 '저주해요' 뭐 이런 댓글들도 자연스레 늘어나고...
혹시 당신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싫어해 본 적 있는가
이건 또 뭔 멍멍이 소린가 하시는 분도 있을 텐데....
맞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즉 누굴 싫어하려면 일단 그 사람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악플을 예로 들어보자. 악플은 어떻게 달리게 되는 걸까 그것도 쉽게 달리는 것이 아니다. 자고 일어나면 하루에도 수십만 개씩 올라오는 동영상의 대홍수 속에서 특정 동영상이나 피드가 누군가에게 노출되어 대부분은 그냥 무시되고 지나치게 되지만 일부 동영상들은 간택(?)을 당해 영상이 플레이되고 또 그 악플을 다시는 분은 시청하고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귀찮음을 무릅쓰고 손가락을 또 친히 움직여 싫어요 버튼을 찾아 누르고 게다가 너무도 친절하게도 그 바쁘고 공사다망하신 와중에도 친히 시간을 내시어 자판을 쳐주시는 수고를 자처하는 등의 실로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악플'이라는 것이 하나 달리게 되는 것이다.
악플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플이라고 하지 않던가
인터넷 서핑을 하다 무심결에 오래간만에 기사에 올라온 옛 스타의 기사를 클릭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무플인 것을 보고는 내가 본인도 아닌데 괜히 민망하고 짠했던 적이 있었다. 나도 그런데 본인은 오죽했겠나... '악플이라도 좋으니 누군가 댓글 하나라도 달아줬으면....' 하는 생각에 그 기사가 뜬 페이지를 밤새도록 들락날락거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앞서 언급한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작가인 장 폴 사르트르가 그가 죽은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지구 반대편에 그와는 피 한 방울도 섞이거나 눈곱만큼의 연관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사랑을 받고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바로 이 '타인의 인정'에 큰 가치를 두기는커녕 '개나 줘버렸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상을 거부한 이유도 노벨상을 받으면 또 그에 걸맞게 살기를 대중들이 기대할 텐데 "미안하지만 나는 안 받고 내 맘대로 살겠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이렇게 트렌치 코트를 멋들어지게 차려 입고 폼나게 담배를 물고 있던 글 쓰는 중년 남자는 시크함을 뚝뚝 흘리며 세계적인 명성의 상을 거부했고 2021년 기준 세계 경제력 순위 10 위에 빛나긴 하나 누구는 줘도 안 갖는 그 흔한 노벨상 하나 없는 나라에 사는 어느 중년 아줌마는 그 의 간지가 그저 부러울 뿐이고...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애초에 남의 인정 따윈 아웃 오브 안중인 에티튜드를 가진 사람이 그런 고매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쓴 글이었기에 노벨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아니었을까
'정말 잘 써서 꼭 세상의 인정받아가지고 언젠가는 노벨문학상을 받아야지.' 하면서 작정을 하고 노벨상 수상에 올인하여 쓴 사람의 그것과는 아마 모르긴 몰라도 언아더 레벨 그 이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흔하지 않은 것을 귀하게 여기고 가지고 싶어 하며 박수를 보낸다. 사르트르의 그 간지 작렬의 에티튜드는 흔한 것이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그것을 높이 샀다.
즉 그 뜻은 "우리 범인들은 그만큼 타인의 인정에서 자유로운 사람의 수가 많지 않다는 뜻"일 게다. 어찌 된 일인지 그놈의 '인정'이나 '사랑'이라는 놈은 당최 먹어도 먹어도 좀처럼 허기가 가시질 않으니... 나 원 참 환장하고 펄쩍펄쩍 뛸 노릇인 것이다(그 부작용으로 이 순간에도 적지 않은 영상 크리에이터들이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무리수를 이빠이 둔 영상을 업로드하고 또 시도하곤 하는 것일지도)
누가 되었든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를 일단 알아야 싫어할 수 있고 또 나를 관찰하는 얼마간의 시간 끝에 나를 싫어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시간이 필요하며 또 그가 자신이 나를 싫어하는 마음을 가슴속에 일정기간 가지고 있다가 몇 번의 망설임 끝에 그 마음을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어 말하고 또 절대 말하지 말라고는 했으나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최초에 나를 싫어하노라고 마음을 밝혔던 사람의 말을 들었던 사람이 고심 끝에 누군가에게 그 사실을 전달하게 되고 결국 그 말이 내 귀에 들어오기까지 나는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마음속에 거하면서 그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잡아먹은 것인지....
누군가 내게 전혀 관심 없고 모르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내가 돈 줄게 이 사람 좀 싫어해 봐." 한다고 우리가 그 사람을 싫어할 수 있을까
이게 신기한 게 누굴 좋아하기보다 싫어하기는 더 쉽지 않다. 누굴 좋아하는 감정은 그 감정을 느끼는 순간 나도 즐겁고 충전이 되지만 누군가를 싫어하는 감정은 내 감정까지도 좀 먹게 되므로 내 에너지도 급격히 고갈되며 나 또한 급히 다운되는 것을 우리는 종종 경험한다.
즉 누군가를 싫어한다는 것이 이게 보통 에너지를 잡아먹는 일이 아닌 것이다. 생각해보라 대체 누군가를 싫어해서 내게 득 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우리는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갑자기 기분이 우울해지고 혹여 마음이 많이 약한 사람은 밤새 뒤척이며 몇 날 며칠을 끙끙 앓기도 한다.
그런데 앞으론 그러질 마시길 바란다. 그것은 그렇게 내가 슬퍼할 일이 아닌 것이다. 그 뜻은 사실 나는 그냥 별 것 아닌 대중 사이에 있으면 눈에 띄기는커녕 존재감이 미미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웬걸 그렇기는커녕 당최 숨길 수 없는 남다른 존재감으로 이렇게 일찍이 누군가의 눈에 들게 되었고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누군가에게 특정 감정을 일으켜 그것을 결국 또 다른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고 용기를 내어 그 마음을 털어놓게 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즉 누군가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수면에 한 명 떠올랐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내게 티를 내진 않았지만 내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고 있는 다수가 존재한다는 뜻이니 나는 이미 '잠재적 인싸'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웬만큼 쓰레기 같은 콘텐츠가 아닌 이상 '싫어요' 수가 '좋아요'의 수를 넘는 영상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즉 하나의 '싫어요'를 얻기 위해선 열개 백개의 '좋아요'를 얻는 수고로움을 감내해야 우리는 그 귀한 '싫어요' 하나를 얻게 되는 것이다. (아고 그놈 비싸기도 하다)
혹시 당신은 "나는 이 세상에서 싫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야."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런 사람 찾기는 쉽지 않을 거고 혹시 찾았다면 그는 습관성 거짓말쟁이 거나 단기 기억 상실증 환자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우리는 너무도 모순적이게도 나는 누군가를 심지어 큰 죄를 내게 지은 적도 없는데 쉽게 미워도 했다. 또 혼자 속으로 용서도 했다. 혼자서 소리 없는 난리 부르스를 칠 때도 많으면서 누군가 나를 싫어한다는 소릴 들으면 그만 바로 발끈할 때가 많다.
내가 싫어하는 그 누군가도 혹여 내가 그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면 아마 "내가 왜? 내가 뭘 어쨌다고?" 하면서 쌍심지를 켜고 뒷목을 잡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많은 경우 우리는 누군가를 싫어할 때 특별히 내부모를 죽인 원수가 아닌 이상 크게 지긋지긋한 이유로 누군가를 싫어하기보다는 대개 별 것도 아닌 것으로 싫어하게 되었다가 또 나랑 이해관계가 맞거나 내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면 그 싫어하는 마음에 변화가 찾아오는 등 불완전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주변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게 마련인 것이다.
따라서 나도 그간 누군가를 허락 없이 싫어해 온 전적이 있으니 지금 이 순간 나를 열심히 시간 내어 싫어하고 있는 사람에게 좀 나를 맘껏 싫어할 권리를 좀 주어 보면 어떨까
앞서 말했듯 누군가를 싫어한다는 것은 오롯이 그 사람을 생각하고 미워하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가 시간과 감정을 특별히 따로 떼낸다는 것이고 그 '미워함'이라는 행위를 위해 에너지를 기꺼이 소진한다는 것이기때문이다.
사자는 개미를 미워하지 않는다. 심지어 관심이 없다. 왜냐면 사자 입장에서 보면 개미는 존재감이 전혀 없으므로 이른바 '아웃 오브 안중'인 것이다.
따라서 개미를 미워하고 욕하고 견제하는 아이들은 절대 개미보다 나은 아이들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개미보다 더 영향력 있고 존재감 뿜 뿜인 애들은 더 이상 그들에게 개미 따윈 안중에 없기 때문이다.
고로 나를 미워해주시는 분들은 나보다 못한 존재감에 대한 끝없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괴로워하시면서 그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친히 내어 내 생각을 해주시고 맘껏 미워해주시고 저주해 주시느라 당신의 에너지가 탕진 상태에 이르도록 방치하고 계시는 그야말로 나 같은 미물微物에게 일종의 '몰입의 상태'를 허락하시는 정말 '고마운 분'들에 다름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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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경(山海經)에 의하면 중국인들은 우리나라를 해 뜨는 동방의 예의지국 또는 군자국(君子國)으로 일컬어 왔다고 한다. 또한 중국의 '공자'도 자기의 평생소원이 뗏목이라도 타고 조선에 가서 예의를 배우는 것이라고 하였다 하며 중국인들이 예로부터 우리의 민족성을 가리켜 “어진 사람”(仁人)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