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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금평 Oct 23. 2021

친구와 멧돼지

뉴델리에서 맞이한 첫 일요일 오전, 인도 생활(?)에 자신감이 좀 더 붙어서 산책을 나서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그린 파크(Green Park)라는 곳으로 접어들었는데 공원은 없고 길 따라 상가만 이어져 있었다.  번듯한 상가가 있는가 하면 군데군데 음료나 난(밀가루 전)을 파는 점방도 있었고 자전거나 리어카에 과일, 과자, 장난감 등을 싣고 오가는 사람도 많았다. 


길가에 돔형 유적지가 있어 기웃거렸더니 아이들이 크리켓을 하고 있었다. 여남은 살 남짓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셋, 여자아이 둘이었는데 경기 규칙도 배울 겸 앉아서 지켜보다가 사진을 한 컷 찍었더니 아이들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한 아이씩 돌아가면서 사진을 찍어보려고 했던 것으로 보아 그들은 사진기에 찍한 자기들의 모습을 보는 것 보다는 사진 찍는 것을 더 신기해 하는 것 같았다. 


그중에서 가장 큰 녀석이 같이 놀지 않겠느냐고 하길래 그러마고 했더니 그는 나와 한편을 먹고 더 작은 아이들 넷을 다른 편으로 편을 갈랐다.  공을 던져 보기도 하고, 공을 쳐보기도 했는데 아이들이 잘한다고 칭찬(?) 해 주어서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몇 번 땜질도 하고 비닐도 씌워져 있는 옛날 빨래 방망이 같은 크리켓 배트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냥 헤어지기가 뭐해서 아이들에게 ‘뭐 하나씩 사줄까?’하며 가까운 점방으로 데려갔더니 아이들은 색깔이 진한 아이스크림이나 비닐 우유를 하나씩 집어 들고 좋아했다. 57루피.(우리 돈으로 1천5백 원 남짓) 인도에 와서 처음으로 현지화를 사용했다. 아이들은 다음 주 일요일 날 또 만나서 놀자고 했지만 시간을 정하지는 않았다. 인도에 와서 사흘 만에 처음으로 친구를 사귄 셈이다. 현재의 아이들과 40년 전의 내가 함께 놀았나 싶기도 하고, 백 년을 1년이라 치면 거의 동갑내기들이랑 놀았나 싶기도 했다.     

 

오후에는 숙소 아줌마가 추천해 준대로 로즈 가든(Rose Garden)을 찾았다.  상당히 넓은 평지에 장미들이 잘 가꾸어져 있었지만 땅에 물기가 없어서 공을 들여 가꾼 것 같지는 않았다. 장미가 보이는 대부분의 벤치에는 가족들과 연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공원 안쪽으로 접어들자 더 많은 청춘 남녀들이 수풀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서로 껴안거나 기대고 있는 연인들로 상당히 자연스러워 보였다. 


뉴델리 시내 한 복판에 이 정도 숲이 있나 싶을 정도로 넓은 공원에는 에스(S) 라인의 산책로가 꾸며져 있는 등 상당히 잘 정비되어 있었다. 산책로며 풀숲은 건기가 이런 것인가 싶을 정도로 메말라 있었지만 공원 한편에서 크리켓 놀이를 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혹서기나 몬순기보다 30도 안팎의 지금이 놀기에 좋은 때 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크리켓이 ‘인도의 국민 스포츠가 맞기는 맞는구나’하는 생각에 이를 즈음에 갑자기 80근은 되어 보이는 멧돼지 한 마리가 코앞을 지나갔다. 놀라고 어쩌고 할 겨를도 없이 건너편 풀숲 여기저기서 꿀꿀꿀 하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열 마리는 됨직한 멧돼지 새끼들이 크리켓 놀이터를 가로질러 달렸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던 것으로 보아 나보다는 멧돼지가 놀랬어야 맞는 상황 같았다. 

조금 더 걷다 보니 멧돼지라기보다는 키만 좀 컸지 꼭 우리나라 집돼지 같아 보이는, 200근(120kg)은 넘어 보이는 갈색 돼지 한 마리가 ‘뭔 일 있어?’ 하는 표정으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산책하던 두 중생이 5m 정도 거리를 두고 눈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서로의 움직임을 의식하기는 했지만 나는 용기를 내어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갈 길을 갔고 멧돼지는 계속 풀을 뜯었다. 하긴 남이사 전봇대로 귀팝(귀지)을 파건 말건 상관할 바 없는 일이기는 하지.(201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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