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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금평 Oct 22. 2021

인도로 가야하는데 차도로도 가게됩니다

뉴델리 도착 후 하루를 일한 기념으로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이 그려준 수제 지도를 들고 첫 산책에 나섰다. 우선, 대부분은 걱정스러운 눈길로, 일부는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인데 별일이야 있겠느냐’는 체념에 가까운 표정으로 인도 부임을 위로해 주셨던 분들의 우려가 지나쳤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아울러, 공직 생활 중 처음으로 자원했던 근무처이기도 한 만큼, 인도가 그리 험한 곳만은 아닐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입증시켜줄 필요가 있었다.     


사실은 그저께 뉴델리 행 비행기를 타면서부터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탑승객들이 대부분 무표정한 얼굴에 외관상 가난의 흔적이 배어있는 행색이었다. 선입견이 내게 그런 색안경을 씌워 준 것인가? 하여튼 명색이 국제선 배행기를 타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때 국물이 흐르는 허름한 짐 가방을 들고 탑승하던 중년의 인도인 부부는 ‘국제선 비행기나 인도의 시골 버스나 교통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아니면 외형적인 치장 같은 것에 삶에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아가는, 수행자의 피가 흐르는 사람들 같기도 했다. 옆에 빈 좌석이 하나만 있어도 몸을 요가 자세로 꼬부려 숙면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에게서 품위 같은 것은 거추장스러운 껍데기 같아 보였다.(*나중에 알고 보니 서울을 경유해 인도와 미국을 오가는 비행 편이었는데, 이들 인도인들은 미국에서 살고 있는 가족들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으리라)        


숙소 앞 도로는 상당히 넓었다. 자동차, 오토릭샤(뚜껑을 씌운 3륜 오토바이 택시), 오토바이, 자전거가 바삐 움직이고 있었고 보행자는 차도 가장자리를 조심해서 걸을 수밖에 없었다. 보행자를 위한 인도(人道)가 있었지만 지린내가 상당했고 마른 개똥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흙더미가 쌓여 있기도 했고 좌판들이 군데군데 점령하고 있었다. 굳이 인도로 보행하기 위해서는 차도와 인도를 갈지(之) 자로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었다. 동료 직원들에게 "차도가 아닌 인도로 갑니다"라는 인사말을 하고 떠나 왔는데 차도로 걷게 될 줄이야.


작고 마른, 허름한 차림새의 사람들이 길가에 어정거려서 그런지 그렇게 생긴 사람들만 눈에 들어왔다. 가끔씩 혼자 걷는 늠름한 서양 여인들을 지나치면서 나도 조금씩 어깨에 힘을 빼고 걷기 시작했다. 신호등이 없는 거리의 풍경은 70년대 해남 읍내의 후미진 골목과 닮아 보였다. 당시 해남의 주된 운송수단은 소달구지였고 교통수단으로 버스가 드물게 있었는데 이곳은 어쨌든 차량들이 많다는 점이 조금 달랐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걸었지만 찾고자 했던 공원은 찾지 못하고 아이들과 청년들이 섞여 크리켓을 하고 있는 것을 한참이나 구경하다 돌아왔다. 낡은 테니스공이 제대로 한번 멀리 날아가면 그 공을 찾느라 공수 구별 없이 다들 흩어져 수풀 속을 휘젓고 다니는 모습은 낯설지 않아 보였다.     

공원과 반대 방향에 있다는 한인회관(*지금은 신도시 구루그람의 멋진 곳에 위치)을 찾아갔는데 문은 닫혀 있었다. 회관으로 올라가는 1층 계단 오른편에 재래식 화장실 문이 열려 있었는데 어렸을 적 읍내의 지저분했던 재래식 공중변소가 문득 떠올랐다.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에도 시골에 수세식 화장실이 들어온 것은 30년이 채 안된 일이다. 우리나라에 ‘용의 검사(어린 학생들 때 검사)’, ‘연중행사’(명절 앞두고 목욕하는 일)라는 말이 점차 사라지고 샤워를 자주 하기 시작한 것도 그 정도 된 것이 아닐까? 

도로변에 ‘Clean Delhi Green Delhi’라고 크게 쓰인, 뚜껑을 덮은 ㄷ자형 콘크리트 구조물을 두 곳 지나쳤는데, 공중 쓰레기장 같아 보였다. 두 곳 다 파리떼와 먼지로 뿌연 쓰레기 더미를 헤치며 느릿느릿 분리수거(?)를 하고 있는 사나이가 있었다. 이틀간의 짧은 인도 경험상 가장 힘겨워 보이는 사람의 뒷모습이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그는 `괜찮아`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주문을 외우듯 `기대치를 낮추면 행복지수는 높아질 거야`라고 되뇌고 있었다.(20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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