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집 앞에 있는 수쿤(Sukun)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공원을 들어서는데 문득 팬티 고무줄이 좀 느슨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래되어 고무줄이 늘어진 팬티가 하나 있었는데, 한 번만 더 입고 버리자는 생각에 쓰레기통을 지나 빨래 통으로 내던져지던 녀석이 오늘 또 걸렸다 보다.
인적이 많은 곳은 아니지만 팬티를 추스르는 것은 쑥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집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번거로워 그냥 내버려 두리라 마음먹었다. 언젠가 내 몸이 말을 듣지 않아 팬티를 추스르지 못할 상황이 올지도 모르는 만큼 내친김에 시험을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운동복 긴 바지가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안에서 팬티가 조금씩 흘러내려간들 눈치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작정을 하고 나니 팬티를 남 눈치채지 않게 추슬러야 한다는 걱정이 사라졌다. 그런데 한참을 걸어도 느슨하던 팬티는 엉덩이 언저리에서 버티고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2006년 즈음의 미국 뉴욕에서는 흑인 젊은이들이 청바지를 엉덩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입고 다녔다. ‘답답해서 어떻게 저러고 다니나’ 싶었는데 돌이켜보니 그들도 나름대로 뭔가를 실험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마음을 비우고 문제를 마주하면 금방 일어날 것 같던 일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 공원을 대여섯 바퀴 도는 동안 이제나 저제나 팬티 내려가기를 기다릴 지경이었다. 몸을 풀고 턱걸이를 몇 개 하자니 드디어 팬티가 엉덩이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슬쩍 내려다봤더니 겉으로는 표시가 나지 않아 걱정했던 것보다 자연스러웠고 전혀 드라마틱하지도 않았다.
공원을 두세 바퀴 더 돌아볼 요량으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팬티는 바지에 걸려 무릎 위 언저리에서 멈춰 있었다. 고무줄이 제 기능을 했더라면 걷는데 어색했을 텐데 느슨해진 고무줄이 오히려 불편을 덜어주었다. 무릎에 위치한 팬티를 거느린 채 20여분을 더 걸으며 팬티로부터 점차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언제부터 사람들은 팬티를 허리에 걸쳐 입기 시작했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왔을까?
무릎에 위치한 팬티가 어느새 새로운 기준, 뉴 노멀(New Normal)이 되어준 덕분에 낯익은 이웃들과 눈인사를 하면서도 스스럼이 없어졌다. 언젠가 우리는 “팬티를 무릎에 걸쳐 입으면 부자가 된다거나, 건강에 좋다”는 광고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