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병 극복기
#1. 적근산
강원도 적근산은 높이가 1,000m가 넘는다. 군사적 요충지로, GOP도 아닌 이곳은 1개 중대가 1년씩 로테이션 근무를 한다. 2~3일에 한 번, 식자재를 케이블카로 올려 밥을 해 먹고, 바람이 많이 불어 케이블카를 운용할 수 없을 때는 병사들이 직접 운반해야 한다. 관리해야 할 것도 많다. 눈이나 비가 오면 보급로가 수시로 끊긴다. 그리고 이곳 적근산 중대에는 대규모 벙커가 있다. 삼청 교육대가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전쟁이 나면 중대원 모두가 벙커에 들어가서 후퇴 없이 싸워야 한다. 언제 쓸지 모르지만, 이 벙커도 관리해야 한다. 휴가나 외박을 나갈 때도 불리하다. 그래도 나가는 건 발걸음이라도 가볍지. 복귀할 땐 무거운 마음으로 1,000m를 걸어 올라가야 하니 아주 죽을 맛이다.
#2. 군대에서 차이고
나는 적근산 근무를 할 때 사귀던 여자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았다. 심적으로 힘들었던 시기, 마음을 다잡기 위해 하루 외박을 냈다. 이런 경험,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갖고 있을 테니, 특별한 것도 아니겠지. 하지만 지금부터가 좀 특별하다. 일단, 1,000m를 내려와야 한다. 마음을 다잡기도 전에 다리가 풀린다. 외박이 가능한 위수지역(사방거리)에 나가서 다이어리 한 권과 ‘야광별’을 샀다. 외박에서 복귀하면, 내 방 천장에 야광별을 붙일 생각을 했다. 군인들도 이런 낭만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날, 태풍 ‘루사’가 왔다. 루사는 한반도에 상륙하여 사망/실종 246명의 인명피해와 5조 원이 넘는 재산피해를 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적근산 중대도 루사의 피해를 입었다. 군 간부였던 나는, 외박에서 당장 복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다이어리와 야광별을 챙겨 이튿날 새벽 날이 밝자마자 중대로 올라갔다. 적근산 정상에 있던 우리 부대는, 높새바람처럼 산 능선을 타고 올라온 태풍 바람을 맞아 지붕이 날아간 상태였다. 병사들은 침낭과 무기들만 챙겨, ‘언제 쓸지도 모를 벙커’로 피신했다. 나는 날아간 지붕 대신 벙커의 벽 어딘가에 야광별을 붙였다. 그저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죽을 듯 아팠던 이별의 아픔이 뭔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스르르 흩어졌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우리는 막사로 돌아와 다시 평안을 되찾았다. 내 마음도, 막사의 평안과 함께 평소의 감정 상태로 돌아왔다. 평정심을 찾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3. 행복의 자동 온도조절 장치
대니엘 길버트 교수는 특정한 사건이 미래의 행복감이나 불행감에 미칠 영향을 사람들이 지나치게 과대평가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애인에게서 차이든, 누군가와 갈등을 겪든, 아니면 복권에 당첨이 되든 그것이 우리의 행복감에 미치는 영향력은 당장은 꽤 커 보이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예상보다 훨씬 작고 빠르게 지나가는 일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김주환 「회복 탄력성」).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기껏해야 일시적으로 우리를 행복하거나 불행하게 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곧 자신의 본래 행복 수준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행복의 자동 온도조절 장치’라고 부른다고 한다.
#4. 아이들의 온도조절 능력
행복의 자동 온도조절 장치는 아이들일수록 더 잘 작동하는 것 같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혼내본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아이들을 혼내면, 혼내는 부모가 더 속이 터진다. 왜냐하면 혼이 난 아이들은 아주 잠깐 반성하는 척을 하다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새로운 놀잇감을 찾아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뭐야, 나 혼자 열낸거야?’라고 생각하며 허탈했던 경험이 종종 있다.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만 넘어가도, 자녀들을 혼내면 서먹함이 사라지는 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희한하게 잘 놀다가도, 아빠만 보면 시무룩하고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 나쁜 놈.
#5. 월요병 극복
일요일 저녁, 다이어리에 한 주의 업무를 정리하다 보니 벌써부터 한숨이 나온다. 한 직장에서만 15년을 일했는데 아직도 월요병에 시달린다. 여전히 불안함이 있고, 피하고 싶은 일과 사람들이 있다.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일이 생길 때 기쁨을 경계하는 말인데, 행복의 자동 온도조절 장치라는 개념을 읽으며 호사다마를 ‘다마호사’로 바꿔보기로 한다. 마가 끼는 이번 주 곳곳에 ‘호사’를 배치한다. 수요일 점심에는 부대찌개를 먹어야지. 금요일 저녁에는 오랜만에 좋은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져야지. 기쁜 일도, 우울하고 힘든 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평균으로 회귀할 테니. 그러니 즐겁고 새로운 놀잇감을 내 삶의 곳곳에 포진시켜 놓는다.
그렇게 월요병을 극복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