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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진 May 04. 2022

마약베개, 정말 괜찮나요?

40대 중반을 지나면서 가장 큰 변화는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 근무하니 목은 거북목이 되었고 어깨는 팔을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느껴지는 오십견이 찾아왔다. 밤을 새워 일을 해도 거뜬하였던 예전의 나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초반에는 예전의 몸을 찾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병원에도 자주 찾아가서 치료받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안타깝게도 별다른 호전은 없었고 급기야 통증이 숙면을 방해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순간 '몸은 파릇파릇한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없구나. 아껴 쓰고 고쳐 쓰고 바꿔 써야 하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평소 '잠이 보약이다.'라는 말을 굳게 믿고 있었기에 숙면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 통증을 줄이고 잠을 편히 잘 수 있는 제품을 구매하기로 결심했다. 가장 먼저 찾아 나선 제품이 베개였다. 너무 편안하여 중독된 것처럼 계속 사용하고 싶은 베개를 간절히 원했다.


인터넷 검색창에 '편안한 베개'를 입력하자 '꿀잠베개', '기절베개', '마약베개', '편해라 베개' 등 여러 제품이 검색되었다. 그중 유독 '마약베개'라는 브랜드가 눈에 띄었다.



<마약베개와 특허청의 싸움>


블랭크코퍼레이션은 '마약베개'를 상표등록받기 위하여 특허청에 상표등록 출원을 신청하였다. 그 직후 '마약베개'라는 상표가 부착된 '베개'를 판매하기 시작하였고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마약베개]


그러나 특허청은 블랭크코퍼레이션의 위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마약'이라는 명칭은 남용의 위험성이 높은 물질로 공중 보건을 저해할 우려가 있으므로 선량한 풍속에 어긋나거나 공공의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블랭크코퍼레이션은 '마약베개'에 대한 상표등록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하면서 특허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해의 길잡이>

상표법은 상표의 의미와 내용이 일반인의 통상적인 도덕관념인 선량한 풍속에 어긋나는 등 공공의 질서를 해할 우려가 있는 상표는 상표등록을 받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4호).


<누가 이겼나?>


특허법원은  '마약베개'라는 상표가 '베개' 제품에 사용되더라도 공공의 질서를 해칠 우려가 없다고 보아 블랭크코퍼레이션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주된 근거는 '마약'이라는 용어가 '베개' 제품에 사용되는 경우 '너무 편안하여 중독된 것처럼 계속 사용하고 싶은 베개'를 연상시키고, 베개에 마약이 함유된 것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특허법원 2019. 11. 7. 선고 2019허4024 판결(확정)]. 이 판결에 따라 블랭크코퍼레이션은 '마약베개'라는 상표를 출원등록받았다.


<승패 이유는?>


'마약'은 사전적으로 강한 진정 작용과 마취 작용을 지니고 있으며 습관성이 있어 오래 사용하면 중독이 되는 물질을 의미하고, 아편(阿片), 모르핀, 코카인 등이 이에 해당한다. 마약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하여 투여 시에 계속적인 투여를 갈망하게 되는 '의존성'과 투여 용량을 증가하여야만 효과를 느끼게 되는 '내성'이 나타난다. 그리고 투여를 중단하게 되면 생리적, 심리적, 그리고 행동적으로 이상 반응이 나타나게 되어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해를 끼친다. 이러한 해악성을 이유로 마약의 취급 및 사용을 법률로 규제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마약'이라는 단어는 '너무 좋아서 마약에 중독되듯이 계속 이용하게 되는 제품'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마약침대', '마약소파', '마약의자' 등과 같이 가구 제품뿐만 아니라 '마약김치찌게', '마약떡볶이', '마약김밥', '마약순대국', '마약부대찌게' 등과 같이 음식점 상호에도 '마약'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블랭크코퍼레이션은 '마약베개'가 사전적 의미의 '마약'이 아닌, '너무 편하여 중독성이 강한 베개'라는 상품의 품질을 암시하는 은유적 기법을 사용하여 창안된 상표라고 주장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마약베개'를 소비자들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문조사결과를 증거로 제출하였다.


제출된 설문조사결과에 의하면, 응답자의 97.2%가 '마약베개'를 마약이 아닌 베개 제품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응답자의 97.2%가 마약베개는 마약을 섭취할 수 있는 베개나 마약을 투약할 때 사용하는 베개가 아니라 마약의 중독성과 같이 '계속 베고 싶은 편안한 베개'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허법원은 위와 같은 소비자의 인식 등을 고려하여 '마약베개'에서 '마약'이 사전적 의미가 아닌 '너무 편안하여 중독된 것처럼 계속 사용하고 싶은 베개'를 연상시키는 것으로 보고 블랭크코퍼레이션의 청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마약베개'는 어떤 상표일까?


보통 좋은 상표라 함은 '다른 상품과 구별하는 힘'인 '식별력이 강한 상표'를 뜻한다. 좋은 상표가 되기 위해서는 '조어상표'이거나 '발음하기 쉽고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 상표', '상품의 성질을 암시할 수 있는 상표', '소비자들에게 계속하여 노출된 상표'라는 등의 요건이 필요하다.


'마약'은 사전적으로 중독성이 강하고 계속 복용 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는 물질로 극히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마약'은 '중독성이 강하여 계속 사용하고 싶은 성질'만을 떼어내어 상품의 우수한 성질을 나타내는 은유적 표현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마약베개'는 은유적 표현으로 '계속 베고 싶은 편안한 베개'라는 의미로 인식되면서도 상품의 성질을 암시하기에 선호되는 상표라고   있다.


그러나 '마약'의 은유적 표현 또한 그 본래적 의미인 '중독성이 강하고 계속 복용 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는 물질'의 성질에서 유래한 것이므로, 마약의 극히 부정적인 이미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소비자에 따라서는 '마약'이라는 단어 자체에 심한 거부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약'이라는 단어를 음식에 사용한다면 어떨까? 베개나 가구에 사용하는 것에 비해 거부감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많을 수 있다.


둘째 아들이 뷔페에 갈 때마다 꼭 먹는 음식 중 하나는 '마약옥수수'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가 '마약옥수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아들, 왜 마약옥수수라고 이름 지었을까?" 아이는 곰곰이 생각한 후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해서 계속 먹고 싶으니까 마약옥수수라고 이름 지은 것 같아요. 그런데 많이 먹으면 마약처럼 건강에 안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전 한 개만 먹어요."라고 답한다.


좋은 상표가 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이 그 상표에 대하여 긍정적인 인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상반된 의미가 공존하는 '마약'을 상표에 사용하는 것은 다소 모험이 될 수 있다. '마약 베개'처럼 성공할 수 있으나 자칫 잘못하다가 마약의 해악성이 부각되어 거부감을 주게 된다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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