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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달 Aug 29. 2023

한국이 꿈에 나오던 날


집을 떠난 후에 모처럼 꿈을 꿨습니다. 그동안 꿈을 꾼 기억도 많이 없는데 한국이 나오는 꿈은 처음이었습니다. 여행을 시작한 지 5개월쯤, 돌아다니는 것에 지쳐서 이스라엘의 키부츠에 들어온 지 1달쯤 되는 날이었습니다.


‘향수병의 시작인가?’


왠지 잠에서 깬 방이 생소해지고,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한인 민박집이나 중간중간 만났던 한국분들과 한국음식을 먹을 때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왠지 오늘은 김치찌개가 너무 간절했습니다.


이곳은 이스라엘 북쪽 나자렛 근처에 있는 키부츠 기네갈이라는 곳입니다. 이곳에 도착해서 발론티어로 등록한 후, 발론티어 하우스에 콜롬비아 친구와 함께 쓰는 방을 배정받았습니다.


"필리페, 꿈에서 한국이 나왔어"

"그래? 난 매일 고향 꿈을 꿔"


괜히 너스레를 떠는 듯한 말투의 필리페는 콜롬비아에서 온 잘생긴 친구였습니다. 예쁜 여자 친구가 고향에 있어서 매일 꿈에 그린다는 말이겠지요. 석유회사에 취직하려고 열심히 영어공부를 하는 성실한 친구였습니다.


오후에 근처 키부츠 사리드의 한국사람들에게 놀러 갔습니다. 한 달 정도 거의 영어만 쓰면서 살았는데, 한국말 인사가 어색하게 나오더라고요.


"안.뇽.화쉐요?"


영어도 버벅대는데 이제 한국어도 버벅거리는 처지가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조금 지나니깐 다시 한국어가 돌아왔습니다. 집에서 나온 지 5개월 정도 되었다니깐, 한 친구가 여행자 공식 질문 첫 번째를 던졌습니다.


"어디 어디 다녔는데요?"

"영국에서 시작해서 아일랜드, 프랑스, 벨기에, 스페인, 포르투갈, 지브랄타, 이탈리아, 그리스에서 이집트 가서 조금 지내다가 요르단 거쳐서 여기로 왔어요"

"와 많이 다녔네요. 근데 여기 왜 오셨어요?"

"다른 여행자들은 한 달에 열나라도 다니던데요, 뭐. 근데 여행도 중노동이더라고요. 3개월 지나니깐 어디 다니기도 힘들고 좋은 거 봐도 감흥도 없고... 알바도 하면서 쉬어볼까 하고 왔어요"

"여행하는 게 힘들다니 신기하네요. 전 많이 여행하고 싶은데"

"한국에서 바로 오셨어요?"

"네, 워킹 홀리데이보다 이게 더 나은 것 같아서, 한국에서 센터 통해서 신청하고 바로 왔어요."

"아. 한국에도 센터가 있구나"

"어? 그냥 오는 방법도 있어요?"

"저는 여행하다가 와서 텔아비브에 있는 KPC(Kibbutz Program Center)에 바로 등록하고 소개받고 왔어요. 뭐 처음에는 엘롬으로 가라고 해서 거기까지 갔었는데, 돈은 많이 준다는데 일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이쪽으로 다시 왔어요."

"그렇게도 할 수 있군요. 키부츠 끝나고도 집으로 안 가시나요?"

"아. 끝나고 3개월 정도 더 돌아다녀 보려고요. 한국에서 1년짜리 티켓을 끊고 나왔어요."

"어디서 가시는데요?"

"프랑크푸르트. 여기서 프랑크푸르트까지 부지런히 또 가야 합니다. 시리아나 레바논은 못 갈 거고 터키랑 동유럽정도? 북유럽은 그때 되면 겨울이라 포기했습니다."

"그렇게 다니는 사람 처음이네요"


어느새 전 뭘 해도 평범하지 않는 사람으로 통하고 있었습니다.


1. 이스라엘의 키부츠 공동체에서는 키부츠 발론티어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운영해서 세계의 젊은이들이 방문해서 생활하면서 이스라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합니다. 유럽의 청년들이 이스라엘의 재건을 돕자고 해서 자원봉사 하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2. 당시 이스라엘은 다른 아랍국가들과 준전시상황이라 터키, 요르단, 이집트를 제외한 아랍국가를 출입한 기록이 있으면 입국을 거부했습니다. 물론, 상대국가에서도 이스라엘 출입기록이 있으면 입국을 거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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