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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달 Aug 30. 2023

암만의 대토론

어디에서 머물까

돌이켜보면 이곳에 들어오기까지도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키부츠에 대해서 처음 생각했던 것은 한국에서 같이 자취하던 후배를 통해서였습니다. 사진을 전공했던 후배가 제가 배낭여행을 가겠다고 하니 키부츠 좋다면서 이야기했었는데, 그때는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렸었습니다.


그런데, 3개월 간의 유럽여행에 지쳐 이집트에 있는 동안 여행 끝날 때쯤 하려고 했던 '한 곳에서 3개월 정도 살아보기'라는 계획을 앞당기려고 했을 때, 키부츠는 좋은 대안이었습니다. 약간의 용돈 같은 주급도 주고, 이미 경험해 본 한국 사람들도 많아서 정보도 많이 얻을 수 있었거든요.


이때 갑자기 경쟁지역으로 떠오르는 곳이 바로 '이라크'였습니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쯤 터진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이 1달 만에 수도를 점령하고 그 시기는 미군이 이라크를 통제하던 시절이라 그동안 배낭여행객들이 가기 힘들었던 나라였던 이라크의 국경이 열렸던 것입니다.


고대도시 바그다드를 보겠다고 많은 배낭족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가고, 그 소식이 이리저리 전파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개방된 이라크 시장과 전후복구를 노리고 한국 회사들도 여럿 진출하던 때였지요. 일부 회사에서는 직원을 파견 보내기도 하고 현지에서 한국인을 채용하기도 했습니다. 저도 이 물결에 편승에서 이라크에 가보고도 싶은 마음이 점점 커졌었지요.


대충 이라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놓고, 이집트를 떠나 갈림길인 요르단의 암만에 도착했을 때 생긴 일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오른쪽으로 가면 이라크, 왼쪽으로 가면 이스라엘이었습니다.


배낭족들이 모이는 호스텔에서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여러 이야기를 나누기 마련이죠. 여기에 빠지지 않는 두 번째 질문이 있습니다.


"너 다음에 어디로 갈 거야?"

"이라크와 이스라엘 중에 지금 고민하고 있어. 이제 좀 돌아다니는 게 힘들어서 3개월 정도 한 군데서 살아보려고 하는데, 이스라엘에 가면 키부츠에 들어갈 것 같고 이라크에 가면 몇 주 여행하면서 일거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이 말이 발단이 되어서 대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이스라엘 쪽을 지지하는 호주 친구와 스코틀랜드 친구, 이라크 쪽을 지지하는 이라크에서 1달 있다 왔다는 프랑스 친구와 팔레스타인 출신의 호스텔 직원. 온갖 발음의 영어가 난무하는 걸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강 주장하는 내용을 정리해 보면.


"여행자가 왜 굳이 위험한 곳을 가려고 하나. 아직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니고, 테러도 많이 일어난데."

"이스라엘이라고 안전한 곳은 아니래. 바그다드라는 고대도시를 먼저 보고 싶지 않니?"

"키부츠라는 곳이 들어보니깐 여러 프로그램도 잘 돼있고, 배울 것도 많다더라. 성지순례도 할 수 있고, 멋진 여행지야."

"이라크에는 지금밖에 들어갈 수가 없고, 새로운 직업 기회도 많은 것 같아"


나중에 Capitalist와 Anarchist의 논쟁으로 커졌을 때, 이미 저는 언어의 부족함으로 그 사이에 낄 수가 없었지요. 가끔은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이 좋을 때도 있습니다.


프랑스 친구는 자기가 하던 아르바이트도 소개해 주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는 전쟁 후라 의약품이 부족해서 배낭에 마이신과 아스피린을 사가지고 가면 배낭 그대로 달러로 들고 나올 수 있어서 보따리 장사도 많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었습니다.


각자의 여행을 마치고 다시 모인 다음날 진행된 2라운드에서는 일본인 무리가 끼었습니다. 일주일 정도 전에 이곳에서 바그다드로 출발했다는 4인의 일본인 그룹이 돌아온 것입니다. 그중에 한명은 따로 여행을 하고 세 명은 바그다드의 병원과 구호시설에서 구하는 이런저런 물품을 사서 다시 바그다드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이제 호스텔에 모인 친구들을 이라크 현지 소식을 듣기 위해서 모여들었습니다.


덕분에 2라운드는 싱겁게 이라크 윈. 중간에 미국 친구도 끼었는데 중립을 유지하는 바람에 이라크가 판정승을 하고 이제 구체적인 정보를 얻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방금 다녀온 따끈따끈한 정보를 꼼꼼한 일본 친구들이 모두 적어왔었거든요.


그중 한 친구가 같이 들어가자고 할 때 솔직히 많이 흔들렸지만, 일본인 그룹과 같이 다니는 것이 불편할 것 같기도 하고 그들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방해되긴 싫어서, 전 하루 더 고민하고 싶다고 하면서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떠난 다음날, 이렇게 고민을 계속하면서 암만의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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