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흐르는달 Aug 31. 2023

이스라엘 들어가기

국경을 넘는다는 것

처음에는 이라크로 가려고 했었습니다.


암만에서 바그다드는 사막길로 하루정도 가는 직통버스가 있어서 바그다드로 가는 편한 코스이기도 합니다. 호스텔부터 같이 온 한 친구가 혼자 보낼 수 없다며 표를 끊으려는 걸 애써 만류하고 혼자서 버스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출발시간이 돼도 출발을 안 하는 것입니다. 꽤 기다리고 있는데 버스 직원이 올라와서 한마디 합니다.


"문제가 생겨서 체크한데. 지금 출발할 수가 없어"


아마도 최근 일어난 이라크의 테러와 관련 있을 것이라고 추측해봅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이런 류의 일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습니다. 잽싸게 버스를 내려서 배웅하겠다고 밖에서 기다리던 일행과 버스표를 반납하고 다시 이스라엘로 향했습니다. 전 빠른 포기의 소심한 여행자였거든요. 카사블랑카의 폭탄테러 소식을 듣고 지브랄타에서 모로코로 가려고 했던 것을 포기하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국경을 넘는 건 항상 새로운 경험입니다. 나라마다 출입국 하는 지점마다 상황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곤 하거든요. 그 나라 대표 공항으로 비행기로 입출국할 때는 돌아가는 비행기표도 있고 대부분 큰 문제가 없었던 것 같지만, 아무 문제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프랑스의 쉘부르 항구에서 대한민국의 여권을 처음 본 세관에게 북한사람 아니냐는 의심으로 몇 시간을 잡혔었던 적도 있습니다. 어떤 곳은 세관 안에서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입출국법을 잘 몰라서 요르단에서 입국 거부를 당한 적도 있었습니다.


요르단 - 이스라엘 국경은 넘는 게 조금 복잡한 편입니다. 두 나라가 적대적인 국가이기도 하고, 중간에 끼어있는 서안지구(팔레스타인)가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요르단에서 이스라엘로 건너가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는데, 저는 King Hussein Bridge를 통해서 갔습니다. 일단 요르단 측 국경인 King Hussein Bridge까지 가서, 걸어서 세관을 통과한 후 다시 이스라엘 측에서 다시 버스로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요즘에는 버스를 타고 바로 통과할 수 있는 제트버스 서비스가 생겼다고 하더군요.


세관을 통과할 때 보니깐, 서안지구로 들어가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예루살렘을 가려는 여행객들이 각각 긴 줄로 서있었고, 육로로 움직이다 보니 온갖 짐과 물건들이 함께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준전시 상황이다 보니 입출국 문답도 길고 까다롭기로 유명해서 여행자들이 살짝 긴장하기도 하지요. 그래도 시간만 걸렸을 뿐 세관을 통과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국경 통과 후에 버스비를 아끼자고 일행 중에 호주 친구가 한가지 제안을 하면서부터였습니다.


"여기서 여리고(Jericho)로 가는 버스가 훨씬 싸네. 저걸 타고 가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가면 더 싸게 갈 수 있을꺼야"


이말에 귀가 솔깃해서 저와 호주, 미국, 프랑스 4명의 파티가 결성됐고, 우리는 저렴한 버스를 타고 여리고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여리고의 버스정류장에 도착하고 나니, 사방이 철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철장을 통해 줄 서서 이동하다 보니 영화에서나 보던 교도소 느낌이 나더라고요. 팔레스타인이라 공공시설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것 같았습니다. 어찌어찌 여리고 안으로 들어와서 이제 쉐루트 기사와의 예루살렘으로 갈 차비에 대한 긴 협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랍지역을 다닐 때 협상은 필수죠.


결국 협상에 실패해서 예루살렘으로 직통으로 가는 버스비보다 더 나오게 된 상황. 저보다 두 배는 되는 듯한 덩치의 애들이 울상을 짓는 것이 어색하더군요. 요르단을 출국할 때에도 출국세를 냈었는데, 여기서도 철장밖으로 나가서 쉐루트 정류장으로 들어서니 뭔가 요금을 내라고 했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비용지출에 차비까지 더 많이 내고, 시간도 훨씬 더 걸리게 되니 많이 안타까웠나 봅니다.


쉐루트를 타고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사막길이면서 계속되는 오르막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시온산이라고 하면서 성전에 올라간다는 표현을 많이 썼던 성경의 구절들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도착한 예루살렘은 정말 매력적인 곳이었습니다.


1. 쉐루트: 요즘엔 '합승택시' 정도로 설명되는 것 같습니다. 집앞까지 가는 택시는 아니고, 주요 지역마다 쉐루트가 모이는 정류장이 있습니다. 예전엔 봉고차로 불리던 밴을 이용한 이스라엘에서 공공 교통수단인 버스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는 교통수단입니다. 이집트와 요르단에도 있는데, 주로 아랍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고 정규 교통수단보다 저렴한 편입니다.

2.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의 독립과 중동전쟁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치적으로 살 수 있도록 지정된 곳이고, 2011년부터 유엔이 국가로 승인한 곳입니다. 이집트 쪽의 가자지구와 요르단 쪽 서안지구가 있습니다.

3. 협상: 몇몇 아랍 지역을 다녀본 경험으로 그 곳은 '가격'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른 가격을 부르는 것이 너무 일반적이어서 여행자들이 더 높은 가격으로 다니기 일쑤입니다. 우리는 그걸 바가지 또는 사기라고 부르지만 그들은 그걸 협상이라고 부릅니다. 자기네들 끼리도 그러는 걸 보면 그냥 바가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전 02화 암만의 대토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