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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스 홍 Jun 15. 2023

프레드릭을 위하여

두 주 전부터 동네 무료 배움터에서 수채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림을 참 좋아해서 혼자 종종 미술관도 가고 미술사도 독학으로 배웠는데 정작 그림은 진짜 못 그린다. 그래서 그림을 배워 보고 싶었고 두 번째 이유는 그림책 창작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도서관과 지역 아동센터에서 어린이 독서 프로그램 수업을 8년 넘게 하면서 많은 그림책을 보았는데 그림책은 시처럼 아름답고 함축적이며 위트 있고 강렬해서 나를 매료시켰다. 그리고 그림책 큐레이션을 하며 작년에는 그림책 더미북 만드는 과정에도 참여하여 열심히 글과 그림을 그리며 봄과 여름을 보냈었다.   


이렇게 그림책에 대한 창작 욕구와 낮은 자존감을 높여준 나의 인생 그림책이 있다. 바로 제목도 평화롭게 빛나는 <프레드릭/ 레오 리오니 글, 그림/ 시공주니어>이다. 프레드릭은 그림책의 거장 '레오 리오니'(1910~1999)의 작품으로 프레드릭 외에도 여러 작품에서 칼데콧 아너 상을 받았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내 마음의 1등 칼데콧 상은 바로 ‘프레드릭’이다.

레오 리오니는 50세가 넘어 늦은 나이에 그림책 작가가 되었는데 기차에서 떠들고 장난치는 손주들에게 즉석에서 옆에 있던 종이를 찢어 장면을 표현하며 생동감 있게 이야기를 하게 된 계기로 그림책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그림을 못 그리는 내가 겁도 없이 그림책 창작에 뛰어들게 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레오 리오니는 그림책의 그림을 그림이 아닌 색종이 콜라주 기법으로 표현했는데 그걸 보고 콜라주를 쉽게 생각했다가 콜라주 기법이 얼마나 섬세하고 창의적인 작업인지도 알게 되었다.


프레드릭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 건 10년 전쯤 아이들 어릴 때 동네 친구로 엄청난 수다쟁이였던 Y로부터였다. Y는 다 좋은데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기본이 한 시간으로 잡히면 꼼작 없이 한 시간 동안 수다를 들어야 하는 피곤한 상황이 발생한다. 나는 그날도 멀리서 보이는 Y를 못 본 척 빨리 걷고 있었는데 그만 Y의 눈에 띄고 말았다.

“언니 어디가?”

“응, 장 보러...

“언니 나 오늘 애들 학교 갔다 왔는데,,, 어쩌고 저쩌고...”

“아! 미안, 나 오늘은 빨리 가야 되는데...”

“음... 그래 그럼 다음에 봐. 근데 참! 나 애들 그림책에서 언니랑 비슷한 캐릭터를 봤다.”

“프... 레.. 드릭 인가! 그랬던 것 같아” 그래서 나는 나의 인생 그림책 ‘프레드릭‘을 보게 되었다.


프레드릭은 ‘개미와 베짱이’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로 더운 여름 열심히 식량을 모으며 겨울을 준비하는 들쥐 친구들과 다르게 황금빛 햇살과 찬란한 색깔과 이야기를 모으는 조용하고 수줍은 들쥐 프레드릭의 이야기이다.

“프레드릭, 넌 왜 일을 안 하니?” 들쥐들이 물었습니다.

“나도 일하고 있어. 난 춥고 어두운 겨울날을 위해 햇살을 모으는 중이야.” 프레드릭이 대답했습니다.  (그림책 본문에서 발췌)


프레드릭은 다른 들쥐들처럼 식량을 모으지는 않지만 시상과 이야기를 모아 추운 겨울 친구들의 무료함과 우울함을 위로하고 즐겁게 한다. 프레드릭은 바로 예술가이며 시인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의 정체성과 예술의 쓸모 있음에 대하여 프레드릭을 통해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나는 그 당시 자신의 일을 하며 경제적 능력이 있는  유능한 엄마들과 비교하며 단절된 경력도 없고 경제력도 없고 살림도 잘 못하고 잘하는 것 하나 없이 책만 좋아하고 가끔씩 끄적거리기나 하는 전업주부로  열등감에 빠져있었다. 그러다 ‘프레드릭’을 읽게 되었고 프레드릭을 보며 나의 오래된 꿈이 작가였다는 걸 기억해 내며 펑펑 울고 말았다.


언젠가 도서관에서 인문학 강의를 듣는데 강사님이 책을 좋아하고 잘 읽는 건 큰 재능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한 번도 내가 책을 좋아하고 잘 읽는 것이 재능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냥 취미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내 취미가 독서와 그림과 음악 감상이라고 하면 오히려 재수 없어해서 차라리 혼자 놀기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니 이런 내가 프레드릭을 만난 건 행운이었고 운명이었다. 그리고 수다쟁이 Y는 두고두고 나의 은인이 되었다.


나는 지금 여러 공모전에 도전하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중이다. 공모전 당선 소식을 마음 졸이며 기다리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어쩌면 등단의 꿈은 별과 나의 거리처럼 멀기만 해서 낙망하며 한숨을 짓다 다시 프래드릭을 꺼내 읽는다.

그래도 브런치에서 만나는 수많은 프레드릭 님들이 있어 다행이다. 프레드릭의 시를 좋아하며 박수를 쳐준 동료들처럼 나의 에 너그러운 마음으로 응원해 주시며 라이킷을 꾹꾹 눌러주시는 작가님들과 구독자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하여 오늘도 모든 프레드릭을 위하여 브런치로 달려간다.


*표지 그림은 어제 배운 풍경화를 살짝 올려봅니다.

* 자료사진은  <프레드릭 / 레오 리오니/시공주니어>에서 가져온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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