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 문구점이 새로 생겼어요. 아니 정확히는 주인이 바뀌어 리모델링을 하고 다시 오픈한 나팔꽃 문구점이에요. 마트로 장을 보러 오고 가는 길에 있는 문구점을 나는 종종 기웃거립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문방구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많이 있거든요. 예쁜 수첩이나 편지지, 매끄럽게 잘 써지는 볼펜, 머리끈 같은 작은 소품들을 주로 사는데 어릴 땐 향기 나는 지우개를 모으기도 했지요.
오늘도 그냥 쓱 문을 열고 들어가 구경을 하다 작은 수첩을 하나 샀어요. 수첩의 용도는 단어 수집장으로 영어단어장은 절대 아니고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등등 마음에 꽂이는 낱말을 모으는 수첩이에요. 글감을 찾거나 쓸 때 아주 유용하게 활용되는 나의 보물창고이지요. 수첩을 열면 별처럼 빛나는 낱말들이 반짝거리며 빛을 낸답니다.
이렇게 나처럼 단어를 수집하는 ‘제롬‘이라는 아이를 소개합니다. 제롬은 피터 레이놀즈 글, 그림/문학동네에서 출간한 <단어수집가>에 등장하는 소년입니다.
제롬은 모든 일상에서 왠지 관심이 가는 단어, 눈길을 끄는 단어, 문장 속에서 톡 튀어나오는 단어, 노래 같은 단어, 저절로 그림이 그려지는 단어 등 마음을 끄는 단어를 수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집한 단어들이 들어있는 낱말책을 옮기다 그만 책이 쏟아져 단어들이 마구 흩어져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어요.
제롬은 뒤죽박죽 된 단어들을 쭉 늘어놓았는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낱말들을 연결하니 멋진 시가 되었지요. 또, 그 시로 노래도 만들어 불렀는데 친구들이 듣고 모두 감동했어요. 우연한 사건으로 시와 노래를 만들 수 있었던 제롬은 지금도 단어를 모으고 모은 단어로 아름다운 시를 지어 친구들에게 들려준답니다.
나도 제롬처럼 언어적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 중 하나예요. 주로 의성어와 의태어를 많이 활용하는데 그러면 문장이 입체적으로 살아나고 재미도 있지요. 언젠가 칵테일이 유행하던 시절 ‘싱가포르 슬링’이라는 칵테일을 좋아했어요. 이유는 순전히 싱가포르 슬링~~ 이라고 말할 때 그 유연하고 경쾌한 발음이 예뻐서였어요. 그리고 서머셋 모옴이 사랑했던 싱가포르의 노을을 상상하며 마시면 어느새 싱가포르 어느 비치에서 나른한 자몽빛 노을을 감상하는 것 같았지요.
제롬의 이야기는 별자리적 글쓰기의 발견입니다. 글쓰기에는 설계도 데로 건축자재들을 맞추어 짓는 건축적 글쓰기와 홀로 빛나며 흩어져있는 별들에 금을 그어 별자리를 만들 듯하는 별자리적 글쓰기가 있습니다.(은유/글쓰기 최전선에서 김진영 철학자의 말을 빌려옴) 제롬은 마음에 드는 단어들을 수집하다 별자리적 글쓰기를 저절로 배운 것이지요,
별자리적 글쓰기는 그 명칭만큼이나 매혹적인 글쓰기방식으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낱말들의 이미지와 생각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창조되는 글로 별자리가 탄생하듯 창의적 발상이 요구되는 심도 깊은 작업이기도 합니다. 나는 주로 시를 쓸 때 별자리적 글쓰기를 하고 산문은 먼저 구상하고 차곡차곡 쌓아가는 건축적 글쓰기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글쓰기가 마음에 드시나요?
오늘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어는 ‘싱숭생숭’, ‘어영부영‘입니다. 봄꽃들이 한꺼번에 피어서 바람이 불 때마다 꽃가루를 뿌리는데 이런 호사를 누리니 마음이 싱숭생숭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내일은 비소식이 있고 이러다 어영부영 봄을 놓칠까 찰칵찰칵 사진을 찍는데 꽃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열 살쯤 어려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