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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스 홍 Feb 02. 2023

詩에게로 또다시

여시고개 지나 사랑재 넘어 심심산골에 농사도 짓고 시도 짓는 할머니 일곱 분이 살고 계신다.

눈이 소곤소곤 오는 날 할머니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이제는 눈이 와도 설레지 않고 보고 싶은 얼굴도 희미하지만 그렁그렁 번지는  유년의 기억과 젊은 날의 어머니, 아버지, 형제, 떠난 남편이 그리워 젖은 눈으로 눈을 바라본다. 그리고 시를 쓴다.


눈이 사뿐사뿐 오네

시아버지 시어머니 어려와서

사뿐사뿐 걸어오네


‘꺄아아악!’ 시부모 어려운 마음을 눈이 사뿐사뿐 오는 모습에 투영한 이 메타포 팡팡 터지는 시가 나를 미치도록 환호하게 한다.

위 시는 전남 곡성 서봉마을에 사는 할머니들의 시 그림책 <눈이 사뿐사뿐 오네>에 수록된 시'눈'이다. 일곱 분 할머니가 동시와 그림책으로 한글을 배우고 시를 쓰고 직접 그림도 그린 첫 번째 시 그림책이다.

어떤 트롯 오디션에서는 가수의 노래가 마음에 들면 장미꽃을 마구 던져 마음을 표현하는데 나도 시인 김막동, 김점순, 박점례, 안기임, 양양금, 윤금순, 최영자 할머니들을 만나면 장미꽃을 한아름 뿌려드리고 열렬히 박수를 쳐드리고 싶다.


한때 나는 시인을 꿈꾸며 시를 썼다. 여러 공모전에 도전했지만 매번 아무 소식이 없어 실망하며 나의 재능 없음을 실감했다. 그렇게 나의 시심은 식물처럼 시들어갔고 시도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런 나에게 곡성 할머니들의 시와 그림은  애써 시를 잊었던 마음을 휘젓고, 다시 시를 향한 그리움에 빠지게 했다.


요즘 나는 정기적으로 만나는 그림책 동아리 선생님들과 순서를 정해 매일 시를 필사해서 카페에 올린다.

아침마다 종달새마냥 날라다 주는 시를 먹고 나는 날마다 살이 오른다. 날개를 다듬고 날아오를 준비를 한다.


어떤 시는 긴 세월을 통과 해아만 비로소 태어나는 시가 있다.

곡성 할머니들의 시가 그렇다. 별처럼 총총 빛나지는 않지만 달처럼 환한 빛을 은은하게 풀어놓는다.


눈이 펄펄 내릴 때

친구들하고 눈사람도 만들며 재미있었다.

엄마 아빠는 빨리 오라고 한디

춥다고 빨리 오라고 한디

친구하고 놀다가

해가 꼴딱 넘어가 버렸다.

엄마가 야단을 치면

할머니가 엄마를 야단쳤다.


실컷 놀다 늦어 엄마에게 혼날 찰나에 짠! 하고 나타나 상황을 역전시키는 할머니. 영원한 내편 할머니를 그린 이 시는 어린아이의 장난기와 리듬감으로 넘친다. 그림을 보면 할머니가 엄마를 야단치는 소리가 생동감 있게 들려 키득키득 웃음이 나온다. 이 책에 여러 그림 중 나의 원픽 그림이다.



또, 처마마다 뚝뚝 달려있던 고드름을 똑똑 따서 먹는 할머니, 먼저 이별한 남편이 보고 싶어 달이 서러운 할머니, 또 딸로 태어나 어메의 눈물과 한숨이 된 할머니이야기는 눈이 푹푹 내리는 겨울밤 밤새 들어도 물리지 않는다.

아득히 먼 곡성 마을 일곱 할머니들의 시는 나를 살랑살랑 설레게 하여 자꾸 시를 쓰고 싶게 흔든다.




언젠가 지하철을 타려고 급하게 뛰었지만 아슬하게 놓치고 털썩 벤치에 앉았는데 스크린 도어의 시가 눈에 들어왔다. 한 줄 한 줄 읽어 내리는데 갑자기 눈물이 한 줄 흘러내렸다. 시는 다시 쓰지 않으려고 했건만 지하철은 놓치고 시를 잡고 말았다.

인생은 알 수도 돌아갈 수도 없으니 무언가를 놓치는 게 결코 나쁜 만은 아니다. 이제 나는 지하철을 탈 때면 잠시 멈춰 꽃을 보듯 시를 본다.

그리고 다시 시를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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