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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눈 Sep 29. 2021

모두에게 거짓말을 하는 최악의 선택

첫사랑을 만난다면(12_소설)

흔들리지 말자고 다짐하며 남자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빠 우리 거제도 갈래?'
‘여름이 거제도 가고 싶어? 알겠어. 내가 오늘 밤새서라도 이틀 치 공부 다 해놓을게. 나도 오랜만에 같이 여행 가고 싶다. 그럼 이번 주 금요일에 수업 마치고 당일치기로 갈까?’     


거제도 명소를 찾아보니 여행을 가지도 않았는데 마음이 환기되고 모든 일이 이치에 맞는 방향으로 해결될 것 같았다.          



그때 문자 메시지 알람음이 울렸다. 유현이었다. 


‘여름아. 내일 점심 같이 먹을래?’

    

 그의 문자를 보고 내일은 바쁘다고 둘러대며 거절했다. 

이후로도 유현이는 계속 문자가 왔다. 그의 일상이 궁금했지만 애써 다잡은 마음이 흔들릴 것 같아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바쁘다는 핑계가 아니라 연락하지 말자고 거절하는 게 옳았지만 그가 상처 받을까 두려웠다. 아니, 사실은 그와의 관계가 완전히 끝날까 봐 두려웠다. 



다음날에도 유현이는 나를 걱정하는 문자를 계속 보냈다. 연락이 되지 않으니 걱정된다는, 무슨 일이 있냐는 문자였다.  


   

계속 문자에 답장하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때 유현이에게 메일을 보낸 게 떠올랐다. 메일을 보내면 적당한 거리로 천천히 멀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유현아, 나 핸드폰이 고장 났어. 그래서 메일 보내. 메일 주소를 알고 있어서 다행이야. 학교는 어때?'

        

한 시간 뒤,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걱정했소. 혹시 날 피하는 건지, 아님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부담 갖지 말고 그냥 친하고 편한 친구로 지냈으면 좋겠구려.’     


강변 산책로를 걸으며 나눴던 말투에 웃음이 났다.     


‘말투가 또 왜 그렇소.ㅋㅋㄱ 사극 말투 정말 너무 웃기오. 그런 거 아니니 걱정 마시오. 핸드폰을 물에 빠트려서 그렇소. 핸드폰 고치면 연락하리다.’               


메일을 하며 천천히 멀어지려 했던 계획과 달리, 메일을 핸드폰으로 보낼 수 있었기에 나와 유현이는 하루에도 몇 통씩 메일을 주고받았다. 머리로는 그와 멀어져야 하는 걸 알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그를 향한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점심으로 먹은 음식과 카페 아르바이트하며 만든 도라에몽 라떼 아트 사진을 보내주었다. 그의 룸메이트와 찍은 엽기적인 모습의 사진도 있었다. 커다란 검은색 헤드셋을 끼고 물안경을 낀 채 노래 부르는 사진이었다. 가식 없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를 보면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 당시 내 마음은 모순 투성이었다.     



선우 오빠를 사랑하지 않는 마음과 옆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

혜지에게 의지하는 마음과 내 모든 것을 보여주긴 불안한 마음 

유현이를 밀어내고 싶은 마음과 그에 대해 더 깊게 알고 싶은 마음    


 

그래서 나는 모두에게 거짓말을 하는 최악의 선택을 했다.      


남자 친구에겐 사랑이 없으면서 사랑하는 척 여행을 가자고 하고,


혜지에겐 유현이의 존재는 말했으나 어떤 사람인 지 어느 정도로 마음이 큰 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현이에겐 수많은 거짓말을 했다. 내가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짓말, 남자 친구가 없다는 거짓말, 핸드폰이 고장 났다는 거짓말, 바쁘다는 거짓말.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연락할 3명에게 모두 솔직하지 못했다.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모두 거짓말을 하게 되자 마음이 무거웠다. 그 누구에게도 솔직하지 못하는 내가 괴물같이 느껴졌다.  


   

내가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이건 모두를 실망시키는 일이야. 조금씩 정리하자. 거짓말을 거짓말이 아니게 만들면 되는 거야. 유현이는 그냥 친구로 지내고 선우 오빠를 사랑하면 되는 거야.


     

나는 내 마음에 솔직한 것보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가 중요했다. 

내 마음 가는 대로 유현이에게 고백하면 선우 오빠와 혜지가 실망할 것은 물론, 우리 관계를 아는 학과 사람들이 나를 욕할 것이 뻔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만 한편으로 내 마음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어서 유현이와 거짓 투성이인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금요일이 되어 거제도로 향했다. 오랜만에 가는 여행이라 선우 오빠는 들뜬 듯 보였다. 바람의 언덕은 혜지의 말대로 한 폭의 사진처럼 아름다웠다.    

 


“여름아, 우리 풍차 앞에서 사진 찍자. 저기요, 사진 좀 찍어주실래요?”


우리는 관광객에게 사진을 부탁하고 의자에 앉아 포즈를 취했다. 그 순간 나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내 눈은 허공을 향하는 게 느껴졌다. 다른 생각을 하면 눈이 자연스럽게 위쪽을 바라보게 된다고 하던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유현이와 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을 여러 장 찍은 후, 유명한 밀면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고양이가 많은 카페에 갔다.   

  

“여름아, 이 카페 정말 예쁘다. 나 시험 합격하고 너 졸업하면 우리 결혼할까? 이 카페처럼 인테리어 하면 정말 좋겠다. 밝은 원목 가구로 따뜻한 느낌이 나도록. 너 좋아하는 커피 머신도 사고, 고양이도 기르면 좋겠어.” 

그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선우 오빠는 취업하고 나서 결혼하자는 말을 자주 했다. 21살인 내겐 먼 이야기 같았지만, 26살인 그는 조금씩 미래 계획을 세우고 있는 듯했다. 결혼은 너무 먼 미래라 상상이 안됐지만,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는 선우 오빠를 보면 참 다정하고 가정적인 신랑이자 아빠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하신 카페라떼와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사장님이 주신 카페라떼엔 이 카페 캐릭터인 귀여운 고양이가 그려져 있었다. 어제 유현이가 연습했다며 보여준 도라에몽 카페라떼가 떠올랐다. 선우 오빠와 여행하는 중간에도 그의 얼굴이 왜 이리 자주 떠오르는지.          



띠리링-

혜지의 전화였다.


    

“여름아, 지금 전화 가능해?”


“응. 오빠랑 저녁 먹고 카페 왔어. 네 말대로 거제도 오니까 좋네.”


“그랬구나. 여름아, 일단 밖으로 나와 볼래? 선우 선배 없는 곳으로.”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혜지의 목소리가 다급해 보여서 잠시 일어나 카페 밖 벤치에 앉아서 전화를 받았다.


     

“여름아, 놀라지 말고 잘 들어. 내가 실수를 한 것 같아…. 오늘 남자 친구랑 네가 일하는 카페에 빙수 먹으러 갔거든? 근데 거기 아르바이트생이 여름이 친구 아니냐면서 아는 척을 하는 거야. 그러더니 나한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너한테는 꼭 비밀로 해달라고 하더라.”

     

“… 뭘 물어봤어?”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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