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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쌱 Jan 02. 2024

프롤로그. 내가 완벽주의자라고?

이런 내가 완벽주의자 일리 없어!

[새쌱씨, 이거 한번 해볼래요?]

시작은 회사에서 가장 친한 Y언니가 사내 메신저로 전달해준 링크였다.


[오호...무엇인가요?]

[오늘 외부강사님이 오셔서 교육한 내용이었다는데, 재밌어 보여서 새쌱이도 함 해보라구ㅋㅋ]


Y언니와 나는 같은 층에서 근무하면서 친해진 사이였는데, 내가 층을 옮기고 나서도 매일 메신저를 할 만큼 회사 내에선 둘도 없는 친한 언니였다. 재밌었던 일화들이 생길 때마다 메신저로 수다도 떨고, 가끔 SNS에 유행인 테스트를 공유하면서 지루한 회사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몇 안 되는 고마운 존재였다.


이번에 공유해준 테스트는 [완벽주의 성향 테스트]라는 제목의 링크였는데, 24문항으로 이루어진 테스트라는 소개 글이 보여, 시간도 오래 안 걸릴 것 같았다.


[바로 해보고 알려드릴게용ㅋㅋㅋㅋ굿(엄지척)]




문제는 비교적 간단했고, 답변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에서 '매우 그렇다'까지의 구간에서 본인이 생각하는 대로 선택하면 되는 거였다. 이러한 조사법을 리커드 척도라고 그러던가. 사회복지 수업 때 얼핏 들었던 기억이 났다. 머릿속으로 이런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손은 마우스를 움직이며 거침없이 눌러갔다. 생각보다 내 안에서 극명하게 나뉘는 질문이 많아서 그런지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기에 5분도 안돼서 제출을 눌러 결과를 받아볼 수 있었다.


"당신의 완벽주의 성향은 76%입니다.“


결과를 누르자마자 본 건 위의 문구와 함께 내가 어떠한 부분에서 완벽주의 성향이 높은지 한눈에 볼 수 있게끔 오각형 그래프로 나와 있었다. 내가 가장 높은 건 ‘실수에 대한 지나친 염려’였고, 그 외에 ‘높은 성취 기준’, ‘철저한 정리 정돈 습관’, ‘부모의 높은 기대’, ‘행동에 대한 의심’ 등은 골고루 분포되어 있었다. 어디 하나 치우쳐져 있지 않고 예쁜 오각형 비율로 나와 있는 결과에도 솔직히 별로 놀랍진 않았다.


우리가 누구인가. 한국인 아닌가. 사회에선 언제나 완벽한 인재상의 모습을 원하고, 가정에선 완벽한 아내, 남편, 엄마, 아빠의 모습을 추구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이런 나라에 태어났으니 기본적으로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는 건 당연지사. 76%의 숫자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애매한 숫자라고 생각했다.


[저는 76%가 나오네요 ㅋㅋㅋ 별로 안 높은 듯~]

[엥 엄청나게 높은데요? 난 56% 나왔는데]

[???]


대수롭지 않게 결과를 공유했는데, 회사 언니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내가 매우 높게 나온 거라면서 60~70%까지가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는 거고, 젊은 사람이 72% 이상이면 완벽주의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고 했다.


인생 피곤하게 살고 있는 거였다며 Y언니에게 농담처럼 말했지만, 머릿속이 살짝 복잡해졌다.

아니 높을 거면 아예 높던지, 76%가 나오다니...정말 애매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완벽주의자의 삶은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성공한 CEO, 수완 좋은 사업가,
회사에서 촉망받는 인재들이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구글에 검색해보니,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부정적 측면으로 발휘될 경우, 자신의 잣대에서 시원찮은 성과를 내면 자기비하를 서슴지 않거나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 자기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개인적 결함의 수용을 거부하는 자기 지향적 성향을 가질 수도 있다고.


내가 자주 겪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다 적혀있었다. 새삼스럽게 곰곰이 생각해보니 뭐 하나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재능도 따로 없지만, 이상하게 기준만 높아서 힘들었던 적이 많았는데 이게 다 내 안에 있던 완벽주의자 성향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자존감이 유난히 낮은 것도, 자기 비하에서 비롯된건 아니었을까...?

갑자기 사는데 스트레스만 왕창 받았던 게 억울하고 손해 본 것만 같았다.


나는 완벽주의자라기엔 모든 게 다 어설프기만 한 사람이다. 
아마 앞으로도 그러겠지.

가져다 붙이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앞으로 나는 과거에 내가 겪었던 경험들, 생각들을 정리해보면서 내가 가진 이 '어설픈 완벽주의자'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물론 아마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돌아보면서 쓰는 회고록에 가까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가볍게 쓰는 글들이 누군가에겐 ‘저도 그런 적 있어요’ 하는 공감을 이끌어 낸다면 나에겐 너무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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