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런사람이야
DJ DOC의 노래 ‘나 이런 사람이야’ 라는 노래를 아는가.
초등학교 때, 가사의 정확한 뜻도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저 노래방에서 신이 나고 싶을 때면 반드시 부르는 노래 중 하나였다. 신 나는 비트에 몸을 맡긴 채로 뛰놀면서 꽥꽥거리며 노래를 부를 때마다 그 나이 때 나름대로 가지는 고민과 걱정이 날아가는 것을 느꼈었다. 하지만 이 노래를 주의 깊게 들으면 굉장히 사회 비판적인 노래라는 걸 이젠 알 수 있다.
성인이 되어 한 회사의 구성원이 된 지금, 어찌 보면 ‘나 이런 사람이야’ 노래에서 나오는 가상의 ‘나’라는 인물은 우리의 롤 모델로 적합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잠깐 가사를 살펴보자.
‘그래 내가 원래 그래 그래서 뭐 어쩔래? 나 이런 사람이야.’ = 굉장한 자신감과 높은 자의식을 통해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통찰하고 있고, ‘하날 배우면 열을 깨달아 버리는 나니까’ = 일 머리와 능력도 겸비하고 있으며, ‘아닌 걸 보고 아니라고 하니까’ = 본인만의 기준이 확고하고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신념까지 겸비한 인재의 모습이다. 사회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당당한 매력에 끌려 주변엔 사람들이 넘쳐나는 소위 ‘인싸의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이 노래를 계속 듣다 보면 이런 구절이 하나 나온다.
[나한테는 관대하고, 남한테는 막대하고]
나는 이것과 정 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한테는 막대하고, 남한테는 관대하고]
‘내로 남불’ 사상이 다른 쪽으로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사람은 원래 태초부터 불완전한 존재이고, 결코 완벽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타인이 실수해도 ‘그럴 수 있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나에게 피해가 크게 오지 않는 이상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실수해서 위축된 직장 동료가 있다면 다독여주며, 상냥해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실수를 한 사람이 나라면 이야기는 180도 달라진다.
한번 실수를 하게 되면 실수한 기억이 내 안을 뱅뱅 맴돌면서 뱀처럼 똬리를 튼다. 그리곤 ‘내가 왜 그랬을까’하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책망으로 이어진다. 이 실수한 기억의 똬리는 시간이 지나면 내 안에서 자칫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연약한 초식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풀숲에 숨어 하염없이 기다리는 육식동물처럼 내가 약해질 때만을 노리곤 한다. 그리고 내가 감정적으로 약해진 순간이 오면 ‘너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찾아와서 나를 ‘한심’이라는 감정의 늪에 빠트린다. 이처럼 진드기보다 더한 존재감이 나에겐 마치 떨쳐낼 수 없는 족쇄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타인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러면 안 된다.
실수에 대한 관용과 너그러운 마음이 나에게는 해당이 안 된다는 듯 엄격한 기준을 들이밀며 스스로를 벼량끝으로 몰아세우며 괴롭히는 것이다. 타인에겐 관대한게 나한테는 안된다니. 불공정 계약이 따로 없지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내건 제약이라 따질 곳도 없다. 이러한 기준때문에 묘하게 자기비하도 강해져 남들이 하는 칭찬도 곧이곧대로 받아드리질 못하는 경우도 많다.
내가 저지른 실수를 인정도 하고, 겸허히 받아들이지만, 그걸 너무 과하게 받아들이고 실수에 관한 생각을 멈출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자책과 자기 비하로 쉽게 이어지는 점 등이 앞으로 내가 고쳐야 하는 평생의 숙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실수? 할 수도 있지.’ ‘업무? 모르면 배우면 되지’라고 당당함과 뻔뻔하게 반응하여 나 스스로 관대함을 장착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조금은 덜 피곤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