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는 것에 익숙해 지는 법
살짝 창피한 고백을 해보자면 회사에서 나의 별명이 하나 있는데, 바로 “운동 찍먹파”다.
아시다시피 “찍먹“은 탕수육의 소스를 부어서 먹는 사람과, 먹을 때마다 소스에 찍어서 먹는 사람. 이 두 파가 탕수육을 둘러싼 논쟁을 시작하면서 비롯된 말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한 ‘찍먹’은 음식을 맛보기 전 소스를 살짝 찍어서 간을 보듯, 어떤 일을 결정하기 전 테스트 시간을 갖는다는 의미가 들어간 말이다.
이 ”운동 찍먹파“는 문자 그대로 여러 운동을 단기간에 다 경험해보고, 금방 그만두는 습관에서 비롯된 말인데, 회사 분들이랑 가끔 운동에 관련해서 이야길 하다가, 내가 하고 있는 종목이 금방금방 바뀌는 걸 눈치를 챈 대리님께서 지어준 별명이다.
부끄럽지만, 솔직히 저 말을 부정하긴 어렵다. 오히려 나라는 사람을 이만큼 잘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싶다. 성인이 되고 배운 운동을 나열해보자면 클라이밍, 러닝, 발레, 헬스, 수영 등 많은 종목을 경험해봤지만, 성인 되고 배운 킥복싱 3개월을 제외하곤, 그리 오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호기심이 가는 운동은 많았지만, 막상 경험해보고 안 맞는 것 같거나, 재능이 없다는 걸 안 순간 바로 흥미가 떨어져 그만두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이에 대해 따로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최근 내가 왜 이런 성향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가 의외의 해답을 찾게 되었다.
나는 운동이 싫은 게 아니라, ‘못하는 것’에 ‘창피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었다.
물론 운동을 처음 해보는 사람은 당연히 못 할 수도, 헤맬 수도 있다. 초반부터 잘하는 운동을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다. 물론 열심히 하다 보면 실력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것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찌들어버린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못하는’ 건 ‘창피한’ 거라고 인식이 자리 잡혀 버렸다. 이 때문에,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기 쉽지 않고, 못하는 걸 못한다고 말하는 게 쉽지 않은 어정쩡한 어른이 되었다.
한번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그 운동에 대한 호감은 당연히 매우 낮아질 수밖에 없다. 운동을 가는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지며, 내가 가진 ‘회피’ 성향도 맞물려 결국 이런저런 핑계로 삼아서 지금껏 계속 운동을 쉽게 포기했던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우연히 해본 운동에 재능을 느끼고, 가르쳐주는 강사님이 감탄하며, ‘재능이 있다. 왜 이제 배우러 왔느냐.’ 하고 말해주는 그런 극적인 상황만 꿈꾸는 걸 수도 있다.
아니면 차라리 창피함이란 감정을 모르는 나이일 때 운동을 꾸준히 해서 습관을 길렀어야 했는데.
이제와서 그러지 못했던 것이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부터라도 못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