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행 고속열차에 앉아 눈을 감았다. 평일이지만 열차는 만석이었고 열차의 칸과 칸을 잇는 통로까지 차마 예매를 하지 못한 사람들이 들어차 애매한 표정과 포즈를 취한 채 엉거주춤 서 있어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작은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지방으로 내려가는 열차이니만큼 고향 방문이 목적인 사람들이 대부분인 듯하였다. 그도 그럴게, 희미하게 상기되어 있는 여행객들의 모습이 아니라, 피곤에 절여져 진 공허한 기운들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운에 온도가 있다면 너무나 추워서 찜질방의 얼음동굴방을 연상케 하고, 그 공허한 기운은 밀도가 아주 높아 숨을 막히게 하였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실제로 숨이 막혔다.
상상을 하면 안 될 것을.. 무릎에 놓여있던 숄더백을 열어 ‘비상용’이라 적혀있는 손바닥만 한 지퍼백을 열어 미색의 원형 타블릿을 입에 털어 넣었다. 다시금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의식의 세계로 돌아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보았다.
이 사람들은 서울에서 바쁘게 지내다가 한적한 지방의 소도시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고 밥벌이를 위한 어지러운 순간과 쉼의 시작이 중첩되는 지점인 열차 내에서 시차적응을 위한 잠시동안의 방전상태에 돌입하여 공허한 눈빛을 비춘다. 시계의 태엽을 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방금 느낀 불편감은 어디에서 온 것이란 말인가. 그것을 분명 느꼈는데. 상상으로 만들어 낸 기운이 아니었다. 실제로 숨이 막혔고,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 귀향에 불편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고작 2박 3일 다녀오는 것인데도, 나는 열차가 출발하기도 전에 ‘비상용’ 약을 꺼내었다. 꽤 괜찮은 집밥이 있고 귀찮은 집안일에서 회피할 수 도 있지만, 안락한 곳은 아니었다. 이것만은 분명하다. 열차 내 사람들의 기운과 망상들로도 충분히 비상상태가 되는 나에게, 귀향이란 내전이 진행되고 있는 제한지역에 방패 없이 맨몸으로 들어가는 것과 유사한 의미로 다가왔다.
3일 후면 어떤 모습으로 돌아오게 될지 생각했다. 눈물을 머금은 눈을 가지고 돌아올 수도,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마음의 멍을 가지고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아무렇지 않다고는 하지만, 문득문득 원인 모를 통증을 주는 편두통을 받아올 수도 있다.
나는, 다시 이곳으로 올 수 있을까
지금의 내가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상처받는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다.
나는, 다시 이곳으로 올 수 있을까
열차 문이 닫히고 고속철도는 지하터널 속으로 들어가 검정만 남은 차창에 내가 비추었다.
그곳에는 열차를 타고 이곳으로 돌아오는 내 모습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