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광안리 바다
지금 당신 손에는 무엇이 있나?
질문을 바꿔 볼까?
오늘 하루 우리 손에서 가장 많이 , 오래 머물다 간 것은 무엇일까?
좀 전까지 나중에도 심지어 지금도 우리 손에 머물고 있거나 아주 가까운 곳에서 함께 하는 것?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것?
나의 경우 샤워를 하는 짧은 시간조차 놓지 못할 때가 있다. 시간을 알차게 사용한다는 착각을 하면서...
손이 하는 일은 아주 다양하고 많다. 아기 때부터 손가락을 입에 넣고 젖병을 잡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자라면서는 책을 읽고 친구들과 떡볶이도 먹고 버스와 지하철의 손잡이도 잡는다. 입을 가리고 웃기도 하고 흐르는 눈물과 땀을 닦는 것도 손이다. 눈을 비비고 몸을 씻고 요리하고 밥을 먹고 예쁘게 단장도 하고 악수도 하고 박수를 치는 것도 손이다. 글을 쓰고 악기를 연주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도 손이다. 기도를 하고 오만 가지 생각과 감정들을 표현할 때, 무엇을 가리킬 때, 위험을 알릴 때도 손을 사용한다. 습관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때론 의식적으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의 손은 많은 것을 만지고 느끼고 견디는 경험을 한다.
아침 6시에서 7시 사이 눈을 뜨자마자 세수도 하지 않은 채로 눈곱만 떼고 집을 나선다. 운동을 싫어하거나 걷기를 힘들어하지는 않는다. 그 무엇보다 결심하기 힘든 일은 업무가 없을 때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어떤 이는 갑갑해서 눈만 뜨면 나간다는데 나는 그 반대다. 특별한 이슈가 없으면 집에 있는 것이 가장 편하고 좋다. 그런 내가 무조건 매일 밖으로 나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 7월부터 시작한 교정 재활 치료에서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운동 처방, 최소 하루 40분 이상 걷기다. 일이다 생각하고 나서면 되는데... '일은 아니잖아' 하면서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어버리고 하루를 마무리할 때면 '내일을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나가야지' 하면서 나와의 타협을 반복한다. 그만큼 어렵다. 그래서 스스로 내린 처방, '눈뜨자마자 무조건 나가자, 가장 하기 힘든 일을 먼저 해치우기로 하자.'
더운 여름엔 날씨 탓을 했고 손녀를 돌봐야 한다며 시간이 없다는 핑계도 댔지만 결국 운동을 하지 않는 시간만큼 교정 치료의 시간도 길어지고 비용 지출도 많아지는데 왜? 안 하냐고... 제발 좀 하라고 다그친다. 여러 가지 생각 끝에 찾은 방법, 매일 아침 나의 첫 일정을 변경하기로 했다.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경전 필사와 기도 대신... 집 밖으로 나가기로 정했다.
유레카~ 그렇게 바뀐 아침 루틴은 한 달이 되어 간다.
집을 나서서 주택가를 20분 정도 걷다 보면 광안리 바닷가에 도착한다. 그 시간은 언제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광안리의 아침을 알차게 누리고 있다. 달리는 사람들,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 바닷가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 바다 수영과 패들 보드를 즐기는 사람들, 파도에 밀려온 해초류를 채집하는 사람들, 트럭의 과일과 채소를 사고파는 사람들, 스피커로 '재첩국 사이소'를 외치는 재첩국 장사까지...
두 손을 꼭 잡고 발맞춰 걷는 커플, 다이어트를 위해 달리기를 하는 것 같은 청년, 이미 충분히 멋진 청춘들, 달리는 품이 특이해서 눈에 담았던 청년은 항상 옷통을 벗고 달렸는데 오늘은 옷을 입고 달리고 있다. 일흔은 넘어 보이는 남자 어르신은 거친 호흡으로 달리고, 운동 기구에서 서로 반갑게 안부를 주고받는 할머니들의 웃음소리가 좋다. 힘껏 달리는 사람과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달리다 걷다 하는 사람들, 아들, 딸과 함께 달리는 사람들 그 틈에서 천천히 걷고 있는 나, 광안리의 아침은 조용한 움직임으로 깨어 있다.
관절 보호 밴드, 선캡, 자외선 차단 마스크, 선글라스, 워치, 이어폰 그리고 물병... 그리고... 달리는 사람도 걷는 사람도 강아지 줄을 잡고 가는 사람도 모래사장을 맨발로 걷는 사람들도 모두가 하나 같이 손에 쥐고 허리에 차고 목에 매고 있는 그것은 바로 스마트폰.
그래서? 그게 뭐?
굳이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되는 사소한 장면에 시선이 머물고 볼 때마다 혼자 궁금해한다. 각자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을 알고 싶다. 나처럼 운동 기록을 체크하기 위해 들고 있는 사람은 누구이며, 기다리는 통화가 있는 사람은 몇 이나 될까? 나이 든 부모님에게 생길지 모를 비상연락 때문인 사람도 있을까? 얼마나 중요하기에 이른 아침 운동을 나오면서 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고 다들 저렇게 꼭 쥐고 매고 차고 있을까? 어쩌면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습관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필수품처럼 들고 나오는 것은 아닐까?
폰이 고장 나서 반나절을 폰 없이 보낸 적이 있다. 심한 길치인 나는 지도를 볼 수 없는 것이 가장 불편했다. 반면 내비게이션의 안내 없이 운전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도 있다. 귀만 열어두고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지만 그날은 달랐다. 나의 레이더는 온통 도로의 표지판과 거리의 신호등에 집중했고 온몸의 감각은 긴장과 불안함의 절정에 있다는 것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처음엔 뭔가 어색하고 허전하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찝찝함까지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여유로워지고 주위가 조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각종 알림을 무음으로 설정했지만 확인을 위해 수시로 패턴을 풀었고 소리가 나게 설정하면 알림이 울릴 때마다 모든 행동에 일단 멈춤이 생겼었다. 하지만 반나절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평소보다 더 길게 느껴지면서 평온하다는 느낌도 있었다. 물론 그 평온함은 다음날 아침을 끝으로 폰을 초기화시키면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반나절의 평온이었지만 많은 생각을 했다. 폰이 없다면... 각종 sns를 하지 않는다면... 카톡을 하지 않는다면... 그러면 나는 타인과 단절되나? 외톨이가 되는 건가? 보이스피싱, 해킹, 개인정보 유출, 이 모든 일들이 스마트폰에 깔린 앱과 가입한 사이트를 통해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런 일들을 두려워하면서도 갖은 방법으로 나를 더 알리기 위해 온갖 곳에 스스로 정보를 업로드하고 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무엇이 더 중요한 걸까?
복잡해진 세상만큼 편리함을 주는 스마트폰을 손에서 잠시 내려놓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면 어떨까? 매일 보는 파란 하늘과 모래사장에 밀려오는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이면 어떨까? 누군가의 sns에 올라온 사진 한 장과 글이 생각난다. 사진 속에는 모두가 폰을 보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한 사람만 고개를 들어 노란 나비를 경이롭게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다. 그 아래에 '고개를 드는 사람만이 나비를 볼 수 있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우리도 고개를 들어 하늘과 바람과 구름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더 오랫동안 보면 어떨까?
내일은 아침 운동 나갈 때 폰을 두고 나가봐야겠다.
발바닥이 닿는 땅에, 뺨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과 햇살에 마음을 다해 집중해 봐야겠다.
걷기 운동을 할 때 만이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