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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전화를 안 받아~

by 힐링아지매


한 선비가 오른손에는 곰방대를 들고 다른 손은 뒷짐을 지고 팔자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다. 문득 자신의 곰방대가 생각났다. '내 곰방대 어딨지?' 순간 왼발이 앞으로 가며 오른손이 눈에 들어온다. '어이쿠, 내 곰방대 여깃 구먼, 으흠' 이런 경우는 가벼운 건망증이다.

하지만 손을 들어 올릴 때 보이는 곰방대를 보며 '아니 이게 뭐야?' 할 때는 치매다.


치매 예방 강의를 하면서 항상 하는 이야기다. 그러면 모두가 '맞네 맞아' 하면서 박장대소를 터뜨린다.


건망증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가 무섭게 한 참 동안 수다를 떨 수가 있다.


'그거, 그거... 아~ 그거 있잖아'

'아 왜 그 사람... OO프로그램 진행하는 그 사람...'

'누구더라 저번에 만났는데... 그래서 같이 OO도 했는데... 갑자기 이름이 생각이 안 나네...

이런 소소한 이야기는 누구나 다 겪는 이야기다.


초등1학년 손녀가 현관에 무엇을 갖다 놓는다.


"OO야 그걸 왜 거기에 갖다 놔?"


"내일 학교 갈 때 가져갈 거야"


'단장님 서류 꼭 챙겨 오세요' 문자도 받고 통화도 하면서 이번엔 절대 잊을 수가 없지... 봉사가 내일인데라고 다짐했지만 어김없이 '아차~!'... 또 까먹고 부랴부랴 현장에서 이메일로 서류를 받 등 난리 부르스가 난다.


챙겨야 할 것들, 메모해야 할 일들은 언제나 생각나는 그 순간 바로 가방에 넣거나 현관에 내어 놓거나...(사실 현관에 내어 놨지만 놓고 갈 때도 많다...) 바로 메모를 하지 않으면 나중은 절대 없다.


두고 온 차 키를 가지러 갔다가 '휴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놓고 온 키 덕분에 에어컨도 끄고 방에 불도 끄고 그날 수업에 사용할 거라고 책상 위에 잘 챙겨둔 물건도 가지고 나올 수가 있었으니까


어디 뒀지 어디 뒀지?

결국 폰 신발장에 있거나 냉장고에서 찾았고 분명히 대폰을 들고 나왔는데 아무리 번호를 눌러도 신호가 가지 않더라는 이야기들...


비 오는 날 들고나간 우산은 비가 그치면 무조건 그대로 내 뇌리에서 사라진다.


갖은 채소를 찜기에 쪄서 먹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 집에는 찜기가 들어갈 만한 큰 냄비가 하나도 없다. 벌써 세 개나 태워 먹었다. 왜 항상 스스로를 과대 평가 하는지... 뭔가 고소한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할 때까지 가스불을 켜 뒀다는 사실 자체를 까맣게 잊는다. 불이 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이런 소소한 건망증 이야기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 공감하면서 박장대소를 하게 한다.



도대체 왜 전화를 안 받아




오늘 그녀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정말 새롭고 참신했고 진짜 대박이었다.


L과 K는 평소 알고 지내는 사이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고 원만하게 좋은 맺음을 하고 K는 하던 일을 계속하고 L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차장으로 향했다.


L은 나오면서 만나서 반가웠고 좋은 맺음에 기분이 좋았다는 말을 톡으로 전하려다가 자신이 폰을 놓고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아직 일이 끝나지 않은 K에게 방해되지 않으려고 K가 일을 마칠 즈음 다시 가야지 하면 잠시 차에 머물렀다.

그즈음 K도 일이 끝나면서 L이 폰을 두고 간 것을 알고는 급한 마음에 L에게 전화를 하면서 부랴 부랴 주차장 쪽으로 달렸다.


L은 K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면서 둘이 길이 엇갈렸고 서로 다시 돌아서면서 드디어 둘은 마주쳤다. 그때 K가 걱정을 듬뿍 담아서 L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도대체 왜 그렇게 전화를 안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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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의 폰은 무음 설정이 되어 있었고 K의 손에 들려있었다. 띠로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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