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래듀페미 Aug 09. 2021

들어가며 : 왓츠유얼하비?

그래듀페미 취미에세이 #0


“취미가 뭐예요?”
What’s your Hobby? 
타일러가 알려주는 진짜 영어 들어갑니다
What do you do for fun?

- 리얼클래스 광고에서     


한국인만 자주 쓰는 영어 문장의 순위를 매기면 저 문장은 몇 위쯤에 위치할까? 영어 수업에서 ‘What’s your hobby?’를 배운 한국인들은 이 문장을 외국인과의 스몰토크에 활용하기 위해 기억 속에 꼭꼭 넣어둔다. 그러니 타일러의 광고에 “내가 지금까지 알던 영어에 배신당했다!”는 식으로 조금 당황스러운 기분이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이다. 


What’s your hobby?라는 문장은 아예 틀린 말도 아니고, 생활영어에서 등장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타일러의 강조 마냥 왓츠유얼하비가 가짜 영어까지는 아닌 셈이다. 다만 우리는 왜 교육과정에서 ‘What’s your hobby?’만을 배우고 ‘What do you do for fun?’과 같은 문장은 배우지 못했을까. 우리나라 교육과정이 hobby라는 단어를 선택한 배경에는 무엇이 있었던 걸까?


취미를 물어보는 사람, 상황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처음 만났다거나, 조금 데면데면한 사이에 분위기를 풀려는 목적으로 물어보기도 하지만, 직장 상사나 교수처럼 비교적 부담스러운 상대방이 물어보기도 한다. 이럴 때 취미는 뭔가 ‘그럴듯한 명사’로 대답되어야 한다. 


“자네는 취미가 뭔가?”

“침대에 누워 방귀 뀌면서 트위터 하는 겁니다”

라고 대답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자네는 취미가 뭔가?”

“한 달에 한 번씩 클라이밍을 가고, 독서는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직장 상사가 ‘아 역시 MZ세대는 다르구먼! 90년생이 정말 오고 있는 건감 허허’ 같은 말도 해주고 직장 생활이 편하게 굴러가지 않겠냐는 것이다.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대답의 형태는 명사로 고정된다. “취미가 뭐예요?” “영화 감상이요.” 위의 질문 대신 “쉴 때 뭐 해요?”라고 물어보면, “어, 요리해먹기도 하고, 심심하면 영화 보고?” 같은 식으로 대답이 바뀐다. 취미를 명사로 물을 때 취미는 마치 완결된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상상되곤 한다. 1년에 책을 몇 권 읽었는지, 얼마나 높은 산을 올랐는지, 몇 번의 파도를 넘었는지. 정량적인 성취가 취미의 질을 결정한다. 하지만 취미의 질? 이라니. 재미로 하는 일에 질을 따질 필요는 왜 있는 것인지, 누군가는 묻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취미는 하나의 스펙, 성취, 자기 계발로 이해되곤 한다.


한국에서 입시를 거쳐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된다는 것은 자본주의와 능력주의의 강력한 결합 시스템 안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낸다는 것이다. 이 시스템 안에서 한국인의 모든 행위는 자본, 혹은 스펙으로 환원될 위험에 처해있다. 책을 읽는 사람도, 그 사람을 보는 타인도, 독서 행위가 자기소개서를 채우기 위한 것인지, 빈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싶은 것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청소년기에 부모님이나 선생님 혹은 주변인들이 책을 읽는 행위를 칭찬할 때 (애초에 취미를 왜 칭찬한단 말인지?) 그 속내에 ‘네가 입시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구나’와 같은 마음이 있음을 숨기고, 청소년은 그 얄팍한 기대를 읽어내기 마련이다. 입시, 능력주의로 인해 소위 자기 계발적 취미와 일탈적 취미는 구분된다. 아이돌을 덕질하는 행위, 게임을 하는 행위는 일탈적 취미로 분류되고, 본업인 공부나 업무를 위해 잠깐 충전하는 시간으로 이해된다. ‘잠깐의 ○○은 오히려 공부에 좋아요’ 같은 말을 통해 일탈적 취미는 공부를 위한 보조적 수단으로만 기능한다. 일탈을 할 거면 아예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유도를 하고 싶으면 유도선수를 해, 게임을 할 거면 프로게이머를 해. 이 말을 바꿔 말하면, 천재가 될 거 아니면 공부나 하라는 것이다. 청소년기 때부터 한국 사람들은 제대로 취미를 즐길 수 있는 환경에서 완전히 배제된 채로 성장한다. 공부와 직접적인 연결점이 없는 취미는 일탈, 공부와 조금이나마 연결점이 있는 취미는 스펙, 자기 계발로 소구된다. 우리는 한 번도 취미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보거나 상상해볼 수 있는 기회 없이 자라왔다. 


SNS와 자기브랜드의 시대에서 취미는 또 다른 어려움에 처해있다. 인스타그램의 좋아요가 자본으로 직결되는 환경 속에서 취미는 ‘나’라는 브랜드의 부가가치를 상승시키는 무형의 자산이다. 인플루언서들이 특이한 활동을 SNS에 전시하고 여러 연예인들이 직업 체험을 하는 유튜브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취미는 돈이 된다. 시장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취미를 배양해주려 한다.(“취미 없는 당신, 잘못 살고 있는 겁니다”, 중앙일보, 2018.1. https://news.joins.com/article/22253870) 취미는 반드시 가져야 하는 무언가, 나의 시민성에 더해져야 할 소양, 대단히 자랑할만한 것으로 상상된다. 


하지만 즐거움은 강요 안에 있지 않다. 즐거움은 자랑 뒤에 오지 않는다. 나만의 규칙과 역사로 뭉쳐진 돌덩이를 말끔하게 디스플레이된 취미의 쇼윈도로 던질 때 나의 흔적이 남겨지고, 한국사회의 단단한 관습에 금이 간다. 즐거움은 아마 금이 간 그 틈 안에 있을 것이다. 그 틈을 향해 움직이는 사람들은 늘 존재해왔다. 취미가 스펙과 자본으로 환원되고, SNS에 전시되어 좋아요를 빨아들이는 풍경을 뒤로한 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보여줄 필요 없는 자기만의 즐거움은 어느새 일상 속에서 반복되고 있다. 다시 떠올려보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없던 청소년 시기에도 우리는 우리의 즐거움을 그 안에서 키워나갔다. 왓츠유얼하비?라는 질문은 나의 취미를 획일화시키기도 했지만 동시에 다른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계기로 작동하기도 했다. 언제나 위기와 기회는 같이 오는 법이니까. 


그래듀페미는 이제 막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선생님과 부모님의 잔소리 바깥에서, 나만의 즐거움을 찾아보기로 결심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좋아한다는 행위, 열중한다는 행위는 무엇일까? 자기소개서에 써넣을 답으로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직접 물을 때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취미’라는 말을 머릿속에 넣은 채 굴리면 어떤 질문을 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즐거움과 재미의 형질은 사람마다 어떻게 다른가? 어떻게 물어봐도 틀린 답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다시 한번 물어보기로 한다. 이번만큼은 부끄러움 없이, 제대로!


“왓츠유얼하비?”





Edited by. 창석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에서 일하며, 주로 글을 쓴다. 생산성이 누락된 시간을 선망하는 동시에 불길해하는 워커홀릭... 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

bellamy all rights reserved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