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듀페미 취미에세이 #1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
글쎄요- 하고 넘기려니 취미 하나 없는 사람 같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특기가 무엇이냐 취미가 무엇이냐 묻길래, 입시 때는 겨우 자기소개서에 한 줄짜리 거짓말을 지어 썼다. 다시 받은 이력서, 비어있는 특기란 옆 나란히 비어있는 취미란. 미안하다, 쓸 게 없다.
특기도 모르겠는데 취미까지 물으니 이것저것 남들이 하는 운동 하나, 영화 한 편, 독서도 살짝. 비어있는 취미란에 집어넣기엔 시간 들고 돈 드는 취미는 너무 무거워, 가볍고 만만한 애들로 모자라지 않게 채웠다. 그렇게 글쎄요- 보다는 나은 사람이라는 안도의 한숨을 던진다.
솔직히 취미는 밤새 게임하기, 누워서 유튜브 보기 정도면 됐지 운동이니 독서니, 먹고사는 것만 해도 힘에 겨운 인생, 만사가 귀찮다. 내게 운동은 살자고 하는 일이요, 독서는 못난 어른이지 않고자 하는 일이다. 바쁜 와중에 비싼 영화 한 편, 봐야 할 것만 힘을 내서 본다. 매 분매초 힘내서 사는 생에서 즐겁자고 유쾌하자고 하는 취미가 뭐 그리 어렵고 힘든지- 인스타그램 취미생활 따라가려다 사람 잡겠다!
그래도 친구를 만나든 연애를 하든, 면접에서조차 묻는 그놈의 취미, 없으면 없는 대로 난감하다.
그렇게 이제는 내 취미가 무엇이냐고 세상만사 관심 많은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다!
“취미가 뭔데요?”
“제 취미요?”
“아니, 취미가 대체 뭐냐고요?”
남의 취미는 궁금해하고 나의 취미는 어려워하면서, 정작 취미가 대체 뭔지 생각해본 적 없는 우리. 얼렁뚱땅 취미론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학부 시절 깐깐 교수님께서 그러셨다. “개념을 제대로 정리해야 나머지가 보이지.” 그래, 그럼 먼저 취미에 대해 정리해보자. 분명 적절한 기준과 범주를 정하기만 한다면 취미는 그곳에 있다.
취미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먼저 정해보자. 사전적으로 취미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다. 여기에서 전문성과 유희성이 그 기준으로 도출된다. 또한 일회로 그치는 일을 취미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주기성 역시 중요한 기준이 된다. 더하여, 세상과 교차점이 전혀 없는 일이 취미가 되긴 어렵다. 사회성도 기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전문성과 유희성, 주기성, 사회성의 4가지 기준이 생겼다.
이에 따라 그 범주를 나눠보자. 점차 취미란 것의 정체가 내 연구로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취미는 일이 아니다. 그 말인즉슨, 아마추어여야 취미이고 즐겨야 취미다. 이렇게 전문성과 유희성은 반비례 관계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정도의 전문성을 가질 때 취미가 아니게 되는가. 때로는 취미를 업으로 삼는 덕업일치의 경우도 있지 않나? 다들 어린 시절 숱하게 경험한 바 있을 것이다. 취미를 묻는 어른에게 어린 나는 “저는 축구가 좋아요.”라고 순수하게 대답했었다.
현답 뒤 돌아오는 우문, “그래, 축구선수가 꿈이니?”
그때 확실하게 말해줬어야 했다. “제 ‘취미’는 축구인데, 하는 것보다 보는 것을 좋아하고, 축구 경기 시청이나 축구 게임을 즐기며, 공과는 사이가 멀어서 드리블 하나 제대로 못합니다. 저는 적절한 시점에 회사를 매각하여 큰돈을 버는 스타트업 대표가 되어 남은 여생 그 돈으로 축구를 취미로 즐기고자 합니다. 그러는 어르신께서는 어린 시절의 취미를 업으로 삼고 계신지요.”
유독 우리 사회는 취미를 편하게 내버려 두지 못하고 자꾸 전문성과 결탁시키려 하는 못된 역사를 걸어왔다. 피아노를 연습하는 아이를 보며 콩쿠르 대회를 입에 담고, 태권도에 소질이 있는 아이를 보며 올림픽을 상상한다. 나 역시도 살아오며 다양한 취미를 주입당했지만, 전문성을 요구받았을 때 그 취미를 즐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다소 높은 전문성의 취미, 즉 덕업일치의 사례도 분명히 존재한다. 다들 한 마디씩 덧붙일 것이다.
“취미로 돈도 벌고, 얼마나 좋아.”
“나도 근사한 취미를 골라서 열심히 해야겠어. 혹시 알아?”
얼렁뚱땅 취미론에 따르면, 두구두구 분석 결과, 해답은 ‘헛소리’ 하지 말라는 거다. 전문성과 유희성은 반비례 관계일 거라고 언급했었다. 아마 덕업일치를 이룬 이에게 그 일은 더 이상 취미가 아닐 거다, 일이지. 어떤 취미가 전문성을 조금씩 취득해나가면서 그 유희성을 잃어가는 과정은 애초에 어떤 일을 전문적으로 시작한 것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길일 것이다. 이미 그 과정에서 유희성을 잃은 그것은 더 이상 취미가 아닐 것이기에, 요구받는 전문성 수준을 달성하지 못하면 일도 잃고 취미도 잃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유희성은 곧 흥미이다. 흥미는 많은 일의 시작점이 된다. 취미가 자주 바뀌는 것 역시 취미가 유희성을, 흥미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 아닐까. 자라나는 아이에게 덕업일치의 서사를 강요하는 것은 아이로부터 흥미를 빼앗아가는 잔인한 짓이다. 그 아이가 자라며 가질 수 있는 수많은 시작에서 그 흥미가 온전하길 지켜보며 응원해주는 것, 그것이 얼렁뚱땅 취미론에서 추천하는 유해하지 않은 취미의 서사다.
취미의 서사 중에는 또 하나의 유해한 서사가 존재한다. 바로 'SNS'다.
“SNS가 왜?”
당연히 SNS 자체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자신의 취미를 SNS에 업로드하는 일은 스스로를 표현하고 만족하는 데에 더할 나위 없는 멋진 일이다. 자신의 취미생활을 기록하는 SNS 채널을 운영하는 사람도 많고, 특히 취미 모임이나 사람들과 함께하는 취미생활은 SNS에서 적극적으로 업로드되고 공유된다.
모임은 기본적으로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되고, 특정 주기를 정해 만나게 되므로, SNS에서 인증하거나 공유하는 방식으로 이를 즐기기도 한다. 여기에서 살펴볼 수 있는 취미의 기준이 바로 사회성과 주기성이다.
이 취미생활을 혼자서 감당해낼 자신이 없거나, 여럿이서 할 때 더 좋을 수도 있고, 꾸준히 자주 하기 위해 모임에 가입하곤 한다. 또한 취미생활을 멋지게 잘하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대견해서, 나는 이렇게 여러 사람들과 이렇게 꾸준하게 건강하고 유쾌한 취미생활을 즐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SNS에 취미생활을 공유하기도 한다.
타인이 봐주는 나의 취미생활 혹은 타인과 함께하여 그가 보증하는 나의 취미생활은 마치 곧 내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지표처럼 여겨지기도 해서, 누군가는 어느 새부터 취미를 즐기고자 취미를 하는 것이 아닌 모임에 나가고자 취미를 하고, SNS에 인증하고자 취미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인싸 감성의 꾸준한 부지런함이 가득한 취미들이 누군가의 타임라인을 가득 채우곤 한다.
그렇다면 인싸 감성의 꾸준한 취미만 취미일까. 당연히 아니다. 같이 하는 취미? 오히려 혼자서 하는 취미 정말 많다. 혼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취미도 분명히 있다. 꾸준해야 취미? 그러면 1년에 한 번 할까 말까인 취미는 취미가 아닐까? 1년에 한 번 하는 취미생활을 한다고 하면, 게으른 사람 취급을 당하게 될까? 나는 1년 여름에 딱 한두 번 정도 물놀이를 하러 가는 취미가 있다. 그 이상은 너무 잦고, 아예 안 가면 서운하다. 꾸준하지 않아도 취미가 된다.
어느새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취미생활을, 보여줄 수 있는 취미와 보여줄 수 없는 취미로 나누고 있지는 않은가. 마치 허락된 취미와 허락되지 않은 취미가 존재하는 것처럼, 누군가가 물어볼 때 대답으로 적절한 취미를 정해놓고 살고 있지는 않는가.
취미는 나와 닮아있다. 그도 그럴 것이, 취미는 내가 살아온 역사에 기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역사에서 결핍이 된 요소들, 내가 추구하는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 소중한 나의 취미로 굳어진다. 그렇기에 내가 가진 취미들은, 어떤 것은 사람들과 가깝고 또 어떤 것은 내 내면과 더 가깝기도 하다. 또 어떤 취미는 1년에 한 번 생각날 따름이고, 어떤 취미는 강박처럼 손이 가기도 한다. 내가 기분이 좋을 때 신나서 하는 취미와 우울할 때 기분을 전환하고자 하는 취미는 분명 다르다. 그 무엇 하나 내 취미가 아닌 것이 없다.
더 이상 취미를 전문성과 유희성과 사회성과 주기성에 비추어, 덕업일치를 이룰 수 있는 유익한 취미라거나 세상에 보여주기 적절한 사회적인 취미라거나 하는 식으로 나누지 않겠다. 내가 가진 모든 취미를 가장 내밀한 것부터 가장 바깥에 있는 것들까지. 그 무엇 하나 내 취미가 아닌 것이 없다.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얼렁뚱땅 취미론은 말한다. 연구에 실패했다!
“취미가 대체 뭔데?”
얼렁뚱땅 취미론에 따르면, 그 분석 결과, 취미는 ‘네 맘대로 하고 싶은 거 알아서 하는 거’다. 취미의 해방이다. 전문적이든 아니든, 재밌든 덜 재밌든, 사람들과 만나든 안 만나든, 꾸준하든 아니든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 당신이 취미라고 생각하는 그 무엇이든 당신과 닮아있는 소중한 취미 맘껏 해라!
그럼 모두 행복한 취미 하시길! 아듀-
Edited by. 웅이
풋볼 매니저 바이에른 뮌헨 감독 경력 10년 차, 아직도 아끼던 선수가 떠날 땐 눈물이 도는 과몰입 취미인.
워커홀릭 사회인이 중간중간 일하듯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취미라고 자부하는 FM을 세상이 허락할 때까지-
바이에른 뮌헨 만세! 함께한 그래듀페미와 지루에게 사랑과 감사를 \\( > _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