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없다. 기력도 없다.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이 있다.
주인공 둘은 '고도'라는 존재를 기다린다.
고도가 누구냐고?
모른다.
일단 고도를 기다린다.
나무에 목을 매달 궁리를 하기도 하고
의미 없이 그저 기다리기만 한다
그 사이 몇몇 등장인물들이 지나가고
또다시 고도를 기다린다.
이게 무슨 소리냐 싶을 때쯤
작품이 끝나고
이게 전부다.
이렇게 고도를 기다리면서 작품은 끝이 난다.
예전에 이 작품에 대한 감상과 해석은
이렇게 인간은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무언가를
기다리며 살아가는구나
그 고도는 행복이거나 신이거나
아니면 우리가 그리는 어떤 것이겠지.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작품이 점점 진하고 선명하게 느껴진다.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 뭐라도 즐겁게 살면 될 텐데
왜 저렇게 고도만 기다리고 있지?
그게 지나고 보니 지금까지의 나였다.
언젠가는 이렇게 살겠지
언젠가는 여행을 다니며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음악을 감상하고
좋은 것들을 음미하며 살겠지.
물론 일상에서의 작은 힐링들은 있었지만
나는 항상 무언가를 기다리며 살아온 것 같다.
그게 뭔지도 정의하지 못하고
그냥 막연히 좋은 삶, 편안한 삶.
고도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의 고도가 뭔지 알고 있을까
어쩌면 이미 와있거나,
우리가 찾아가면 있는 고도를
끝없이 그리며
삶이라는 시간을 고도를
기다리는 시간으로 보내는 건 아닐까.
그렇지만 고도를 찾아갈 기력도 용기도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모두가 이렇게 고도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고도를 기다리는 중인데
어떻게 그 자리를 떠서 찾아간단 말인가.
몇몇 사람이 고도를 찾은듯해 보였지만
누군가는 찾아 나서다 더 멀어지는 것 같아도 보인다.
머물기에는 답답하고
떠나기에는 자신도 기력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