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고 사랑은 변한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묻는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사랑은 변한다. 사랑 자체가 마음에 달려있는데 변하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을까. 유지태의 저 대사는 순수하다 못해 순진할 지경이다. 사랑의 절대성을 믿지 말 것. 사랑이 가르쳐주는 첫 번째 교훈이다.
그럼 변하는 사랑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는 변해버린 사랑을 뒤로한 채 새로운 사람을 찾아 나선다. 처음의 설레고 떨리고 풋풋한 사랑을 이어가고 싶어서다. 이들은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고 믿는다. 유통기한 지난 음식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듯 사랑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새로운 사랑'도 결국은 빛이 바랜다.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는 권태감에 못 이겨 남편을 떠나 다른 사람을 맞이한 주인공 마고의 모습을 비춘다. 그리고 그 사람도 권태로운 일상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그럼 이제 뭘 해야 할까? 또다시 바람을 펴야 하나? 아니면 누군가에게 정착해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할 때쯤 나오는 말은 대충 다음과 같다. 남자 친구(혹은 여자 친구)의 사랑이 예전 같지 않은 것 같다, 사랑이 식은 것 같다, 이젠 더 이상 설레는 감정이 없다, 권태기가 온 것 같다 등등. 권태 앞에서 사람은 대개 자신의 감정을 앞세워 상대에게 요구한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건 오직 너인 것처럼. 자신은 이미 할 만큼 했다고 말하면서.
사실 상대방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약 서로에게 책임의 화살을 돌린다면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니 그 끝이 좋을 리 없다.
사랑의 두 번째 교훈은 이거다. 변해가는 사랑에 맞춰 관계를 변화시킬 것. 관계가 깊어지면 분비되는 호르몬이 달라진다. 불타오르는 감정은 사그라든다. 이 순간에 '권태기'라는 꼬리표를 붙이면 그 기간은 골칫덩어리가 된다. '사랑이 변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처음에는 이 익숙해짐이 낯설다. 잘 넘기면 그 낯섦이 익숙해진다. 사랑이 더 무르익어간다.
그렇다고 둘 사이를 방치해서는 안된다. 익숙함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계속 시도해야 한다. 사랑을 다시 돌려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굴러가게 만들기 위해. 이는 양 당사자에게 모두 요구되는 책임이다. 자기는 드러누워 있으면서 상대방에게만 큰소리를 치면 안 된다. 관계는 기울어지는 순간 왜곡된다. 왜곡된 관계는 내재된 모순 탓에 붕괴될 위험에 처한다. 사랑도 결국은 균형의 문제다.
봄이 온다. 벚꽃도 온다. 벚꽃은 짧게 피고 진다. 마치 순간적으로 피어나는 강렬한 사랑의 경험과 같다. 그 찰나의 아름다움을 잡아내기 위해 사람들은 열심히 셔터를 누르겠지. 하지만 난 알고 있다. 내년에도 벚꽃은 돌아온다는 걸. 벚꽃과 벚꽃 사이에도 수많은 꽃이 만개한다는 걸. 사랑에는 빈 공간이 없다. 텅 빈 내면만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