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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Mar 17. 2022

나는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한다'라고 해서 사랑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 사랑해?"라는 너의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하게 된다. "사랑해."라며 내뱉은 말 한마디에는 더 큰 의문을 품는다. 사랑해야 하는, 또 사랑받아야 하는 대상은 명확하다. 적어도 이 대화의 맥락 속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정말로 너를 사랑하는지는 모르겠다. 애초에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기는 하는 걸까? 보통 여기까지 이르면 대답에 딜레이가 생긴다. 그 찰나의 망설임만큼 나의 사랑은 의심받는다. 내게서 사랑의 증거를 치열하게 찾아내던 너의 마음에는 상처 하나가 남겠지. 어떤 말로도 되돌릴 수 없는 생채기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일까? 어떻게 보면 황당한 질문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하지만 적어도 내겐 그게 당연하지 않다. 사랑에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는, 그런 '이성적인' 마음에서 말하는 게 아니다. 사랑의 감정은 머리보다는 가슴 쪽에서 더 강하게 뿜어져 나온다. 사랑을 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그저 사랑한다는 결과가 모든 과정을 정당화한다.


다만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 정말로 사랑인지 몰라서, 그래서 망설였을 뿐이다. 애초에 헷갈린다면 사랑이 아닌 거라고, 그렇게 단정 지을 수는 있다. 그게 복잡 미묘한 감정을 이해하기에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니까. 사실 여느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흔하게 등장하는 장면이다. 흔들리는 한 사람, 그리고 그런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연인.


자신의 마음이 사랑인지 아닌지도 모른다니. 그럼 사랑하지 않는 걸까? 그런 정의라면 적어도 내게 사랑은 없다. 그렇게 난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왜냐면 사랑에 관해 도무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고, 또 수없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 대한 사랑에도 자신이 없는데 타인은 오죽할까? 사랑은 떠났다가 돌아오고, 분명하다가도 흐려진다. 지고지순하게 뿌리를 내린 소나무 같은 존재가 아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봄에만 반짝 폈다가 흩날리는 벚꽃에 더 가깝다.


이런 심정을 솔직하게 토로하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사랑을 신성한 무언가로 여기는 이에게 이런 질문은 신성모독 그 자체니까. 우린 사랑하는 걸까? 난 너를 사랑하는 걸까? 당장 사랑하는 연인에게 가서 이런 말을 해보라. 헤어지기 직전까지 갈 수도 있다. 사랑의 낭만성만을 믿는 이와의 관계는 그래서 어렵다. 이들에게 사랑은 누구도 밟아서는 안 되는 새하얀 눈밭과 같다. 발자국 하나라도 찍히면 곤란하다.






명시적인 사랑의 대상이 없는 상태라면 어떨까? 지금의 내가 그렇다. 지나가는 고양이에게는 무한한 애정이 싹트지만 그건 일방적인 호감에 불과하다. 적어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상대방과의 교감이 있어야 한다. 고양이는 다가가면 눈치를 보며 도망가기 바쁘다.


그럼 가족은? 친구는? 혹은 나 자신은?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어? 분명 누군가는 몰아붙이겠지. 그래서 사랑을 고백하는 일보다 사랑이 없음을 고백하는 일이 훨씬 어렵다. 그럼 가족에 대한, 친구에 대한, 또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은 사랑일까? 적어도 가족 간에는 성립 가능한 개념이다. 다만 앞서 언급했다시피 가족에 대한 사랑도 왔다 갔다 움직인다. 혈연으로 이어져 있을 뿐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될 수도 있다. 또 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사랑해야 한다는 건 폭력이다.


친구도 마찬가지다. 사랑보다 조금은 가벼운 단어로 우정이 있다. 그런데 이 우정조차 생겼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나 자신에 대한 사랑 또한 그러하다. 다만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명멸을 거듭하는 상태 그 자체를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은 그 자체로 영원하지도, 지속될 수도 없다. 사랑에 대한 허들을 그렇게나 높여버린다면 결국은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맞는 말이다. 사랑을 너무 완벽한 대상으로 그릴 이유는 없다. 머리 아픈 과정 없이도 충만한 사랑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사랑에 대해 걸고넘어지는 건 내가 특이한 탓도 있겠지(당연함에 의문을 제기하는 건 글쟁이의 숙명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만큼 사랑을 찾아 헤매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실 사랑에 대한 확신까지도 필요 없다. 그저 단서만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족하다. 처음부터 불타오르지 않아도 좋다. 꼭 일관되지 않아도 된다. 그런 '완벽하리만치 낭만적인' 사랑은 애초에 믿지 않는다. 다만 사랑의 불꽃을 일으키는데 오랜 시간과 에너지가 드는 나에게는 중요한 문제다. 평생을 같이 살아가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도 이렇게나 힘에 부치는데 말이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을 보면 참으로 신기하다. 성격의 차이도 있을 테고, 상황의 차이도 있겠지만 말이다. 저 당시에는 정말로 사랑의 감정이 한껏 차올라서 입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문장이겠지. 하지만 한껏 예민한 나로서는 쉽게 뱉을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문제다. 널리 퍼져있는 '연애 이론'(예. 애인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해야 할 10가지)에 따르면 사랑은 항상 표현해야 하는 관용구니까.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몰라요. 그러니까 많이 말해줘야 돼요.


맞다.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 그런데 반대도 성립한다. 모르면 표현할 수 없다. 모르는데도 표현하면 그건 일종의 거짓말이다. 단순히 도덕적인 차원에서의 거짓말이 아니라,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한 거짓말이다. 일종의 빈말이랄까. 알맹이가 담기지 않은 말은 공허하게 허공을 떠돈다. 물론 공허한 말에도 나름의 의미는 있다. 그걸 모르는 게 아니다. 알고서 하는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나라는 사람, 참 까다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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