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리아 Aug 01. 2022

아프리카에서 기린 밥주기

케냐에서 마주한 야생



북반구에서만 살던 내게 7월은 언제나 여름이었다. 매미가 내내 노래하는. 또한 아프리카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항상 드넓은 초원을 덮은 후끈한 열기였다. 하지만 이 오래된 생각들은 케냐에서 보기좋게 부서졌다.


꽤 오래전부터 아프리카를 향한 아득한 로망이 있었던 것 같다. 언제부터 였을까. 꼬마 시절만 해도 다섯번은 넘게 본 라이온킹 때문인가. 그래서인지 나이로비를 간다는 스케줄표를 보자마자 내 가슴엔 둥둥 북소리가 울렸다. 목적지에 따라 옷을 갖추는 편이라, 오늘을 위해 고른 옷은 분홍색 화려한 전통문양이 빼곡히 수놓인 상하세트. 거기에 공항에서 오는 길에 조금 쌀랑했던 공기가 맘에 걸려 녹색 숄도 어깨에 턱 걸치고선 호텔을 나선다. 시작이 좋아. 케냐에서의 첫 목적지는 바로 기린센터.

기린센터의 표지판_Nairobi, Kenya

기린센터에서는 방문객들이 실제로 많은 기린들과 만나 밥을 주며 교감할 수 있다. 입장료는 한화로 약 2만원을 웃도는 가격. 조금 비싼듯 했지만, 이 돈은 야생동물의 보호를 위해 기금처럼 쓰인다고 한다. 건들건들하지만 상냥했던 가이드에게서 받은 먹이는 말린 풀을 뭉쳐놓은 것처럼 생겼었다.

기린센터에서 만난 기린들

드디어 기린과의 실물 영접! 실제로 정말 가까이에서 마주한 기린들은 아기부터 어른까지 거대하다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았다. 흥분한 관광객들은 기린들을 향해 손바닥을 쭉 내밀고 먹이를 다 받아먹을때까지 동동걸음 친다. 센터는 광활한 대지를 끼고 있지만 관광객에게 허용된 곳은 먹이를 줄 수 있게 만들어둔 작은 쉼터와 다리 뿐이다. 기린들은 아주 여유로웠고, 자세히보니 저마다 무늬의 모양도 색깔도 다 다르다. "저 친구는 가장 나이가 많고 아주 느긋한 성격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는 조심하세요. 대단한 박치기 선수니까요." 성격조차 다양한 기린들을 보고 있으니 내가 정말 아프리카에 있구나, 다시금 실감이 난다.

아프리카에서 기린 밥주기_Nairobi, Kenya

기린과의 헤어짐을 뒤로하고 두번째 목적지로 향한다. 원래는 코끼리 고아원을 방문하려했지만, 이미 두달정도 꽉찬 예약 때문에 포기. 하지만 친절한 택시 기사님은 동물들을 만나기에 좋은 곳이 있다며 우리를 또 다른 곳으로 인도했다. 그 곳은 야생에서 위험에 처하거나 무리에서 동떨어진 동물들을 보호하고 있는 또다른 센터였다. 게다가 정말 좋았던 건, 밀착형 가이드가 우리를 내내 안내해준다는 것!


수많은 새들부터 시작해서 원숭이, 뱀, 악어, 하이에나 그리고 대망의 사자들까지. 야생의 펄떡거림에 풍덩 빠질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끌었던 건 사자와 하이에나. 어릴적부터 사람의 품에 자라서 그런지 가이드의 손길에 우리집 강아지처럼 귀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는 모습이 편안했다.

보호소의 하이에나_Nairobi, Kenya

우리가 도착한 오후 3시부터는 식사시간이었다. 오늘 아프리카 동물들 밥먹는거 하나는 제대로 보는구나. 아무리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다해도 야생은 역시 야생. 사육사는 큼지막한 생고기를 사자와 하이에나에게 던져주었다. "지금 주는 건 소입니다. 염소나 양을 급여하기도 해요." 잠시잠깐 고양이처럼 귀엽다고 생각했던 내가 민망해지는 순간이다. 다큐멘터리에서만 보던 무시무시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자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몇걸음 물러났다.

밥 먹는 사자들

이 때만해도 가장 기억에 남는걸 이야기하라고 하면 기린, 사자, 하이에나 중에 뭐라고 답할지 고민했을 것 같다. 큼직하고 대부분이 "우와~"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예상과 달랐다. 생각지못한 나이로비의 겨울 공기에 계속 어깨 위 숄을 여몄던 것처럼.


사자를 만나기 직전, 가이드는 어디론가 슥 가더니 손바닥 위에 무언가를 얹고 돌아왔다. "이 아이는 정말 순해요. 사람이 하는대로 가만히 있어요. 얌전하고, 착한데 아주 오래산답니다." 아기 거북이였다. 그것도 흔히 생각하는 바다거북이가 아니라 육지에 사는 땅거북이. 가이드의 말처럼 순하디 순해서 발을 쓰다듬어도 눈만 꿈뻑꿈뻑하며 가만히 있었다. 거북이가 보여주는 평화로움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했다. 저항하지 않고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등껍질만큼 강하고 단단해 보였달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돌아오는 차에서도 그 작은 거북이의 눈빛이 마음에 크게 아른거렸다.

웃음 많고 정 많은 사람들로 가득한 케냐의 나이로비. 눈 앞에서 네셔널 지오그래픽의 장면들을 직접 보니 그 느낌은 확실히 새롭고 흥미롭다. 차를 타고 가다보면 운좋은 날 도로 옆 초원에 얼룩말도 볼 수 있는 곳. 다음엔 꼭 코끼리 고아원도 가봐야지. 나의 버킷리스트는 지워지는게 아니라 또다시 채워진다.

Giraffe Center_Nairobi, Kenya
이전 08화 사람 살기 참 좋은 동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