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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아 Aug 10. 2022

사람 살기 참 좋은 동네

굿모닝 멜버른



엄마는 어렸을 적 나에게 큼직한 곰인형을 사주셨다. 아니, 사실은 작은 곰인형이다. 하지만 7살 나에게는 한 품에 가득 안기는 크기였기 때문에 친구로 지내기에 충분했다. 얼마나 좋아했던지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야 그 인형에 대한 애착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름은 곰순이. 심히 한국적이지만 실제로는 호주에서 산넘고 물건너 날아왔다. 엄마가 일 때문에 몇 주간 호주에서 지내다 돌아올 때, 언니에겐 캥거루인형, 나에겐 곰인형을 사주신거다. 지금 우리집 대장 푸들믹스 보리처럼 까만 눈과 갈색 털을 가졌었다. 하지만 짐가방에서 이리 끼이고 저리 치여 얼굴과 몸 곳곳이 아무리 펴도 안될만큼 심하게 구겨져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어린 시절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곰순이. 그래서인지 막연하게 호주가 좋았다. 그리고 궁금했다. 커가면서 이 기억들도 희멀겋게 잊고 살았는데, 예상치못한 때에 호주에 가게되었다. 그것도 멜버른, 고즈넉하고 상냥한 도시로.

멜버른의 거리

비행은 왕복 30시간. 체류시간도 30시간. 언뜻봐도 굉장히 피곤한 스케줄이었지만 호주를 깊이 들이마시고 싶은 마음은  무엇과도 바꿀  없다. 호텔 근처에 괜찮은 순두부집이 있다길래 배부터 채우기위해 걸음을 재촉. 결과는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해외에서 한식을 먹을  나의 기준은 '현지화 되지 않은 '이다. 현지화 될수록 우리만의 칼칼함과 감칠맛,  깊이가  해진달까. 고춧가루 팍팍 넣고  끓인 순두부 찌개를 얼큰하게 먹고나니, 왠지 환영받은 기분이다.

햄 순두부찌개_DOOBOO_Melbourne

멜버른은 이른 아침 가게나 식당이 문을 열고, 해가 지기  닫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 아침 7 오픈, 오후 5시 이전 마감인 식이다.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나니 지난  순두부찌개만 먹고 후닥 들어와 잠을 청하기를 잘했다고 느껴졌다. 오늘은 많이 걸을 예정이라 개나리색 운동화의 끈도 바짝 조여준다. 게다가  곳의 7 말은 10도를 웃돌기 때문에  도툼한 점퍼 속에 부드러운 극세사 셔츠도 껴입고 거리로 나섰다.

아몬드 크루아상_LUNE, Melbourne

덜컹거리는 트램소리, 살짝살짝 파고드는 한기, 깨끗한 아침 햇살. 푹 녹아들기에 충분했다. 첫 일정은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크루아상 집 방문하기. 이른 아침이라 재고가 떨어지기 전에 운좋게 하나를 살수 있었다. 그것도 길게 줄을 서 20분은 기다려야했지만 그 맛에는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멜버른은 또한 다채로운 브런치 요리로 유명하다. 워낙에 먹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 타입이라 카페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머릿속에 메뉴가 정해져있었다. 월요일 오전 9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이미 사람들은 매장안에 가득했고, 나는 밖을 바라 볼 수 있는 1인석에 자리했다.

콘 칠리 와플_BRICK LANE, Melbourne
멜버른의 골목

느긋하지만 알차게 아침을 보내다니,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 뿐만 아니라  공간에,  사람들과 섞여있다는 것도  몫으로 행복감을 . 식사를 마치고 골목 골목을 지나  도로를 따라 쭈욱 내려갔다. 멜버른을 가로지르고 있는 야라강을 따라 산책하기 위해! 한국에서 지낼 때는 보리와 매일 길을 걷고 함께 나무와 흙냄새를 맡았다.  때문인지 해외로 나오면   있는대로 산책하려 하는 편이다. 은은하게 흐르는 강줄기와 또롱또롱하게 노래하는 새들. 아무리 바쁘고 생각이 많은 사람도  곳에선 잠시 평화로이 머물  있을  같았다. 그대로 멍하니 있다, 강둑의 모래 위에 아빠와 엄마 이름 사이 하트를 새겨본다. 나중에 사진을 찍어 보내주면 여기서도 놓치지 않고 떠올렸다고 얘기해   있으니까.

야라강_Melbourne, Australia
야라강에서 바라본 멜버른 시내

야라강 근처에는 러닝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현지인들이 많다. 지나가며 씨익 미소를 보내주거나 "굿모닝!"이라고 에너지를 보내주는 사람들. 함께 따라 웃으며 "굿모닝!"하고 건네본다. 호텔에 돌아가기 , 아기자기한 카페에서 플랫화이트(에스프레소에 뜨거운 우유를 부은 커피) 한잔 테이크 아웃. 근처 기념품 가게에선 캥거루 인형을 하나 골라 엄마를 위한 서프라이즈도 준비해본다. 드디어 만난 호주, 반가운만큼 한켠으론 몽글하다.

기념품 가게에 전시된 인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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