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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아 Aug 30. 2022

도레미파솔라시도

예술의 도시 비엔나


The Kiss, Gustav Klimt (1907)

"내게는 특이한 점이 아무것도 없다. 나는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그림을 그리는 화가일 뿐이다."

-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


오스트리아는 수많은 예술가를 배출한 나라다. '키스'라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송어'를 작곡한 슈베르트까지. 미술과 음악 모두 역사가 깊어, 길을 걷노라면 바람마저 박자를 타며 흐르는 듯 하다. 거기다 착륙직전 하늘에서 내려다 본 수도 비엔나의 전경은 엽서 한장을 넓다랗게 펼쳐놓은 듯 했다. 함께 비행했던 기장님도 "너무 아름다워서 집중하기가 어려웠네요."하며 머쓱해할 정도였으니까.

호텔에서 바라본 바깥풍경

비엔나에선 무얼 할까. 여느 유럽처럼 오래된 골목을 거닐다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 들어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누려볼까. 한쪽 손에 턱을 괴고 한동안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음악과 미술의 도시라는 수식어가 뇌리에 휙 스쳤다. 어디 전시회나 음악회를 볼 데가 있나 싶어 검색을 해보니, 운 좋게도 벨베데레 궁전에서 시대의 흐름에 따른 미술 작품 전시를, 까를 성당에서 현악 4중주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래, 이거야!

화창한 비엔나의 거리

호텔에서 트램으로 20 남짓한 거리에 자리한 벨베데레 궁전. 건축된지는 300년이 넘었고, 정교한 건축과 그를 둘러싼 아름다운 정원이 눈을 뗄수 없게 만들었다. 온라인 예매덕에 복잡한 티켓부스를 가볍게 통과하고 상궁으로 들어서니, 큼직한 그림들이 이곳저곳 걸려있었다. 그리고 '궁전'이라는 이름답게 높다란 층고에  하나하나가 크고 널찍했다.

트렘길_Vienna, Austria
벨베데레 궁전_Vienna, Austria

전시회를 다니는 걸 좋아하지만, 사실 잘 알지는 못한다. 그저 그림을 가까이 살피며 느끼는 섬세한 터치와 멀리서 바라볼 때 생동감을 좋아할 뿐이다. 하지만 클라우드 모네, 빈센트 반 고흐, 에곤 실레처럼 익숙한 작가들과 유명한 그림들을 마주하니 반가운 마음에 걸음이 자꾸자꾸 멈춘다. 뿐만 아니라 궁전의 장식들과 화려한 벽화가 정말 잘어울어져 홀로 조용히 웅장해진다.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

전시를 다 보고 정원도 한 바퀴 돌고 나니 두시간 반정도 흘러있었다. 궁전 앞 노상카페에서 비엔나 커피(휘핑크림이 올라간 비엔나식 커피) 한잔을 맛있게 마셨지만 여전히 허기졌다. 까를 성당으로 가는 길에 식당이 있으면 제일 먼저 보이는데로 들어서기로 마음을 먹고 뚜벅뚜벅 또 걸어본다. 얼마가지 않아 "Schnitzel(슈니첼, 기름에 튀겨낸 고기요리)"이라 적힌 식당을 발견했다. 배고픈 마음에 슈니첼, 웨지감자, 비프칠리까지 주문하고는 의자 뒤로 몸을 쭉 젖혔다.

식전빵, 비프칠리, 감자샐러드, 슈니첼(위에서부터)

가게 주인이 요리에 서빙, 저녁엔 공연까지 도맡아하는 식이라 음식이 나오기까지 시간은 좀 걸리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 맛은 충분히 기다릴 가치가 있었으니 합격. 사이다를 주문했는데 생수에 레몬즙을 타더니 건강에는 이게 더 좋다며 건네는 뻔뻔함도 유쾌했다. 든든하게 충분히 먹었으니, 저녁에 한시간 반정도의 공연은 나른하게 즐길 수 있을듯 했다.

비엔나의 거리

40분 일찍 도착했지만 까를 성당 앞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댔다. 좌석은 총 세구역으로 나뉘어있었고 나는 두번째로 비싼 가격에 구역2를 예매했다. 하지만 첫 곡이 시작되자마자 후회가 큰파도로 몰아쳤다. 무조건, 무조건 앞이 좋겠구나! 물론 성당의 울림이 소리를 완성시켜줬지만, 연주자들의 열정과 에너지를 될수 있으면 눈 마주칠수 있는 거리에서 보는게 더욱 뜻 깊을테니까.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와 콘트라베이스. 그들의 숨소리와 발굴림마저 음악의 일부가 되었다. 비발디의 '사계'부터 엘가의 '사랑의 인사'까지. 꽤 친한 곡들이 눈 앞에서 소리로 만들어지는걸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또다시 이 감회는 나를 어릴 적으로 인도해주었다. 아기때부터 클래식 라디오를 매일 틀어두던 우리 엄마. 엄마가 함께 있었다면 이 곡은 무엇이고, 저 곡은 누가 작곡한 거라 하나하나 알려줬을텐데. 꼭 모시고 이 감동을 그대로 전해드려야지 하고 다짐한다.

까를 성당 내부_Vienna, Austria

마치고 나오니 이미 해는 넘어가 있다. 돌아가는 트램에서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하루를 되짚어본다. 무엇이 오늘을 특별하게 만들었을까. 클림트는 자신이 특이한 점이 아무것도 없고 그저 그림을 그리는 화가일 뿐이라 했다. 그렇다면 특별한 건 무엇일까.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것? 더 특출난 것? 어쩌면 나를 진정으로 돋보이게 하는건, 내가 아무것도 다를게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일수도. 그리하여 이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한번뿐인 삶을 조금 느리게 살아감에 그 반짝임이 있을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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