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문덴, 거대한 자연을 마주하다
예상보다 빨리 만난 두번째 오스트리아. 이번은 각오부터 달랐다. 바로 비엔나에서 더 멀리 나가볼 계획을 세웠기 때문. 대부분의 관광객은 비엔나, 잘츠부르크, 할슈타트 이렇게 세 도시를 탐방한다. 하지만 내가 택한 도시는 '그문덴'. 어쩌다 알게 된 곳이지만 우연히 본 딱 한장의 사진이 내 맘을 매료시켜버렸다.
가볍게 표현했지만 사실 무모한 도전이었다. 데이터 없는 휴대폰은 그저 카메라일뿐이고 인기 여행지처럼 정보가 풍부한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못할것 없단 마음으로 왕복 5시간의 기차길에 올라서본다. 기차역까지 버스로 딱 5분이지만 20분간 걸어가기로 택했다. 이른 아침 가슴 가득히 들이마시는 공기는 깨끗하다. 하늘 곳곳에 놓인 뭉게구름은 뜨거운 여름볕을 가려주고, 덕분에 길 어느곳에서도 발걸음은 여유롭다.
기차역은 헷갈리지 않도록 알림판과 표지판이 잘되어있었다. 자동 매표기로 표를 야심차게 끊고 플랫폼에 들어서니 수요일 이른 시간임에도 몇몇 사람들이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시간정도 갔을까. 한번 더 환승한 후에 하차 안내방송을 하나하나 쫑긋이 들었다. 역마다 이름이 생각보다 비슷해서 간만에 듣기시험을 보는 느낌이 쏠쏠하다. 'Gmunden'이라는 단어가 들리자마자 풀어놨던 짐을 주섬주섬 챙긴다. 여기서 끝이 아닌게 함정. 트램으로 한번 더 갈아탄 후 드디어 케이블카를 탈 수있는 곳에 내렸다. 정말 머나먼 길 찾아왔구나, 혼자 중얼거린다.
그문덴은 웅장할만큼 거대한 호수와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산꼭대기로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가 한눈에 그 전경을 바라보니 내 심장박동이 쿵 쿵 하고 배경음악처럼 깔렸다. 이국적이라는 느낌은 풍경때문인지,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한국인 관광객은 커녕 동양인 자체가 나뿐이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정성스레 나를 감싸안아주는 하늘과 길다란 나무 사이사이를 지나온 시원한 바람은 지구별의 특권을 맘껏 누리게 해준다.
트라운제(Traunsee_그문덴에 있는 호수 이름)를 둘러싼 산책 다리를 걷다보니 나무전망대가 나왔다. 위로 둥글게 뻗은 특이한 구조를 둘러둘러 올라가면 눈 앞은 산이었다가 마을이었다가 다시 호수였다가 한다. 보는 맛이 굉장했다. 그문덴의 아름다움은 큰 사진기를 들고 온 사람, 유모차를 끌고 온 가족, 강아지를 데려온 커플까지 자꾸 걸음을 멈추게 했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서 이번엔 트라운제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섰다. 호수에 뛰어들며 물놀이 하는 사람들을 보니 몸이 근질근질했다. 얼마나 청량할까. 조금이라도 시원함을 같이 느끼려고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에 초코 머핀을 들고서 호수 앞 벤치에 앉았다. 호수의 규모에 물결은 꽤나 찰랑였고 지저귀는 새들은 파도소리 따라 하모니를 이루었다.
해가 지기 전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왔던길을 똑같이 따라 걷는다. 또다시 두시간 반동안 홀로 고군분투하려니 잠시 핑했지만 창밖의 빨간 지붕들과 초록 벌판을 멍하니 보고 있으니 금새 종착역에 도착했다. 내리기 전 오늘 찍어뒀던 사진들을 한번 확인해본다. 다시금 물밀듯 찾아오는 대자연의 위엄. 그문덴, 그 평화로움 속에 잘 쉬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