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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리생각 Sep 16. 2021

셜록홈즈를 즐겨읽던 소년의 40년 후 글쓰기

중년아재가 글 쓰는 이유는 뭘까?

재택근무를 하러 집 앞 스타벅스에 간다. 


갑자기 드는 생각. 나는 왜 요즈음 이렇게 글을 쓸까? 아무도 시키는 사람 없는데 말이다. 누가 읽어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런 글들이 모여서 책이 될성 싶지도 않은데 말이다. 왜일까?


어릴적 어머니께서 세계 문학전집을 큰 맘먹고 사주셨다. 우리 남매들을 위해서. 그런데, 거의 나 혼자 그 책들을 다 읽은 것 같다. 동서문화사 세계 문학전집. 지금 검색을 해보니 최초의 와이드 컬러판 50권짜리 문학전집이다. 지금 기억해보면 성인용 소설도 끼어 있었다. 차텔레이부인의 사랑, 단테의 신곡 같은 소설 말이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읽으면 그 감성에 가끔씩 책장을 닫고 상상을 하기도 했었다. 나도 몇살이 지나 청년이 되면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1892년 셜록홈즈 삽화

그래도 어릴적 가장 많이 읽고 좋아했던 것은 셜록 홈즈 시리즈다. 


설날 용돈을 받으면 동네 책방에 달려가서 하나씩 하나씩 사곤 했다. 바스커빌가의 개, 공포의 계곡 같은 장편이 떠오른다. 모르몬 교라는 것을 셜록 홈즈 시리즈를 통해 알게 되었었다. 그리고 다시 모르몬 교를 들은 건 그로부터 십수년 이후다. 바스커빌가의 개를 읽으면서 그 황소만큼 큰 시커먼 개를 상상한다. 해리포터가 소설로 나온 후, 영화화 되었지만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로서는 온전히 나의 머리만으로 모든 장면을 상상해 가며 숨을 죽이며 셜록홈즈를 만났었다.


지금도 그 장면 장면이 머리속에 떠오른다. 활자가 아닌, 영상으로 말이다. 


참 신기한 일이다. 소설을 읽었는데, 내 머리속의 기억은 셜록홈즈와 왓슨이 서로 얘기를 주고 받는 마차안이 기억이 난다. 셜록 홈즈를 찾아온 낯선 사내를 잠깐 보면서, 그 사람이 군인 출신이고 인도를 다녀왔으며, 힘이 세고, 지팡이를 사용한다는 것을 왓슨에게 얘기해 주는 장면이 떠오른다. 신기한 일이다.


대학엘 가서는 방황을 많이 했다. 내가 고작 이런 거 배우러 대학엘 왔나 하는 생각들을 많이 했었다. 

자연스럽게 책을 다시 찾게 되었다. 거의 매일 나는 대학도서관에서 책과 씨름을 했다. 읽고 읽고 또 읽었다. 돈이 조금 생기면 당시 종로서점에 가서 책 사는 것이 취미였다. 넉넉치 않은 형편이었기 때문에, 책을 사는 것은 신중했다. 신기한 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읽는데, 내가 산 책은 그냥 집에 꽂혀 있다. 언제든지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내일 읽지 뭐.


내 머리속의 뉴런들이 지금 껏 내가 본 모든 책들의 잔상을 가지고 있을까?


아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가끔씩 불현듯 어릴적 기억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갈 때가 있다. 마찬가지로 '수레바퀴 밑에서'를 초등학교 5학년 때 읽으면서 이해가 되질 않아 이상해 했던 기억이 난다. 한참 후에 그 소설은 초등학생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으니 말이다. 


지금 나는 아마도 내가 읽은 수많은 책들의 활자들을 다시금 쏟아내는지 모른다.


가끔씩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내 손이 글을 쓰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내 손은 나의 저 수조개의 뉴런들이 활성화되어 무의식적으로 글을 만들어 내는 지도 모른다. 물론 지난 수십년간의 활자들을 조합해서 말이다.알베르 까뮈, 헤르만헤세, 톨스토이, 코난 도일, 단테, 헤밍웨이, 펄벅, 존 스타인벡, 귀스타프 블로베르, 찰스 디킨스, 나다니엘 호손, 발자크,  데이비드 로렌스, 루쉰, 제임스 조이스 등등. 


대문호들의 문장, 그분들의 표현, 그분들의 단어가 내 기억에 차곡차곡 쌓여서 오늘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언젠가 내 글이 책이 되어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그들의 기억의 한켠에 나의 글이 남아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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