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힘으로 해볼게

by 다경린

“서로 사랑하는 기적은 없어.”

엄마가 말했다.

“그건 말 그대로 기적이야.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그러니까 너도 괜히 헛바람 들어서 사랑이니 뭐니 찾을 생각 말고 적당히 현실적인 남자 만나서 대충 산다고 생각해. 알았어?”

지겨워.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아, 왜 대답이 없어? 엄마 말 알아들었냐니까.”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같은 얘기를 들어왔던 탓에 진절머리가 났다.

“알았어. 서로 사랑하는 일은 없어. 그건 기적 같은 일이야. 나한테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이제 됐어? 속이 시원해?”

그렇게 원했던 답을 들었으면서도 떨떠름해하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답답하고 화가 났다. 엄마는 본인 인생이 그랬다고 내 인생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지.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는 아빠와 이혼했다. 아빠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고도 몇 년 간 놓지 못해 끌려다니다가 겨우 갈라섰다. 상처받은 엄마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본인 감정을 화풀이하듯 딸인 나한테 전가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모녀 지간의 골이 깊어져 더 이상 관계를 회복하기 어려워지기 전에 독립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엄마한테 말했다.

“나 독립해서 혼자 살아볼게.”

“그래. 잘 생각했어. 너도 이제 네 인생 알아서 살아야지.”

인연을 끊을 수 없다면 심리적인 거리라도 둬 보자고 생각했다. 그럼 좀 나아질까 싶어서.

엄마는 걱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반색했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여자애 혼자서 살 생각을 하나며 보통의 엄마들이 하는 걱정을 기대했다가 실망했다.

“내가 나가서 살겠다는데 안 말려?”

“왜 말려? 다 커서 제힘으로 살아보겠다는데 오히려 잘했다고 칭찬을 해야지.”

“엄마는 내가 걱정도 안 돼? 그러다 덜컥…….”

“덜컥 뭐, 남자 만나서 애라도 만들까 봐 걱정 안 되냐고?”

성인이 되었으니까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엄마는 왜 그런 쪽으로만 생각해.”

엄마의 생각이 현실적이어서 뜨끔한 마음에 되레 큰소리를 쳤다. 그런 내게 엄마가 일렀다.

“너도 이제 다 컸어. 어엿한 성인이야. 외로우면 누구든 만나서 사귈 수도 있고 연애할 수 있어. 대신 엄마가 한 말 잊지 않았지? 적당히 현실적인 남자를 만나. 모름지기 평범한 가정에서 유복하게 자란 사람이 최고야. 가정환경이 불우하면 상처가 많아서 안 돼.”

“엄마…… 그거 나한테 해당하는 얘기잖아. 그럼 상대방도 나 같은 사람 만나기 싫을 텐데,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해.”

엄마는 실컷 떠들어놓고 아차 싶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사과는 없었다.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기대할 수 없는 일로 더 이상 상처받기 싫었다.

“됐으니까 돈이나 보태줘요.”

“내가 돈이 어딨어?”

“엄마 돈 없는 거 나도 알아. 그래도 너무 맨몸으로 내보내면 계모 같잖아.”

“얘는 말을 해도. 얼마면 되는데?”

“두 달 치만. 그다음은 내 힘으로 어떻게든 해볼게.”

“누구 딸인지 생활력 하나는 강하네. 우리 딸 잘할 거야. 엄마는 그렇게 믿어.”

엄마는 왜 하필 그런 데서 믿음을 갖는지. 내 발로 나오기로 했지만 등 떠밀려 나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이제부터 혼자 살아가야 한다. 가정환경이 불우해서 상처가 많든, 상처를 보듬어줄 사람이 없든 알아서 헤쳐나가야만 한다. 그러다 외로워서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그가 주는 사랑에 덜컥 몸을 주고 아이를 가질 수도 있는 나이였다. 엄마 뜻대로 살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되는 나이라는 것이다. 그건 내게 자유와 동시에 선택에 대한 결과를 책임져야만 하는 막중한 의무감으로 다가왔다.

일단 연애는 고사하고 내가 나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되도록 본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무작정 부동산에 찾아갔다. 50대 중반 중개인 남자는 나를 위아래로 훑으면서 하찮게 보는 듯했다. 내가 제시한 금액으로는 터무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아가씨, 이 돈으로는 반지하도 구하기 힘들어요.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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