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다가가 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월세 놓음]
방값이 말도 안 되게 저렴했다. 내가 갖고 있는 돈으로도 충분했다.
누가 볼세라 종이를 뜯어냈다. 뒤로 물러나서 2층 단독주택을 올려다보았다. 집이 크고 방도 많아 보였다. 게다가 마당까지 있었다.
엄마가 말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라고. 이렇게 큰 집에서 월세를 싸게 내놓은 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담장 너머 나무가 앙상해 보였다. 날씨 때문인지 몰라도 귀신 나올 것처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께름칙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돈이 없으니 환경에 맞출 수밖에.
종이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차갑게 느껴지는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이은성입니다.
“안녕하세요. 월세 놓는다고 하셔서 연락드렸는데요.”
-지금 바쁘니까 이따 저녁때 집에 들러요.
“저녁때 언제요?”
-아홉 시쯤?
“그렇게 늦게요?”
-일이 바빠서 그래요. 집 앞에 와서 벨을 누르든지 전화를 걸든지 해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따가 찾아뵙…….”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다. 얼마나 바쁜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몰라도 매너는 꽝이었다. 솔직히 그 엄마의 그 아들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때 느닷없이 문이 열렸다. 아이는 검도복으로 갈아입고 내가 걸어왔던 길로 쏜살같이 뛰어가버렸다.
정말 이 집에서 살아도 될까?
갈등했지만 대안이 없었다. 부디 페널티처럼 부과될 조건이 아이가 아니기만 바랄 뿐이었다.
*
누구에게나 예감이라는 것이 있다. 특히나 불안한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한테는 더욱 예민하게 작용하는 본능적인 촉. 나에게 유달리 발달한 감각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내가 그 아이를 맡게 될 확률이 높았다. 일 때문에 바쁜 엄마. 돌봐줄 사람 없는 아이. 상황은 너무 뻔했으니까. 다만 악조건에서 내가 버틸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약속 시간에 다시 집 앞으로 찾아갔다. 집주인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설마 그 사이 다른 사람과 계약을 한 건 아니겠지?
불안한 마음에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낮에 연락했던 사람인데요. 전화를 안 받으셔서 문자 남깁니다. 지금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10분 넘게 답장이 오지 않았다. 걱정되는 마음에 집을 보니 2층 창가에 불이 켜져 있었다. 커튼 사이로 훔쳐보고 있던 그림자가 옆으로 후다닥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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