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조건이 있어

by 다경린

집에 혼자 있는데 낯선 사람이 찾아와서 그렇게 행동했는지도 모른다. 아이한테 내 모습이 보이지 않게 담장 앞에 쪼그려 앉았다. 20분쯤 지나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가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전화를 받고 안심했다. 다행히 방이 나간 건 아닌 것 같았다.

조금만 기다리라던 집주인은 30분이 지나서야 차를 끌고 나타났다. 그녀에게서 술 냄새가 났다.

“집 보러 왔죠? 들어와요.”

사람을 불러놓고 한참이나 기다리게 했으면서 사과 한마디 없었다. 게다가 음주 운전까지. 망설이다가 여자를 따라갔다.

대문을 열자 넓은 마당이 나타났다. 마당 한편에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낮에 봤던 나무는 밤이 되자 더 으스스해 보였다.

밖에서 보던 것처럼 집이 크고 넓었다. 필요한 건 전부 갖춘 것 같은데도 비어 있는 느낌이었다. 어째선지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앉아요.”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기다렸다. 아줌마는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마셨다. 그리고 돌아와서 맞은편에 앉았다. 상당히 미인이었지만 눈빛이 차가웠다. 독한 향수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용건만 간단히 할게요. 월세는 거기 적힌 그대로고 아가씨가 사용할 방은 2층이에요.”

“2층 어디…….”

“통째로 줄 테니까 편하게 써요.”

파격 제안에 깜짝 놀랐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우리 애를 좀 봐줬으면 좋겠는데.”

역시나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인데 애가 순해요. 학교 끝나고 학원 가기 전에 간식만 챙겨주면 돼요. 간단히 숙제 정도 봐주면 고맙고.”

아줌마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엄마인 자신도 못해서 다른 사람한테 부탁하는 마당에 그런 태도는 옳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그건 안 될 것 같아요. 저는 집을 구하러 온 거지 아이를 돌보려는 게 아니라서요.”

“내가 사정이 있어서 그래요. 부탁 좀 할게요.”

“부탁이라니요. 그건 말이 안 되죠. 세입자한테 그런 부탁을 하는 집주인이 어디 있어요.”

아이한테 간식을 챙겨주고 숙제를 봐달라는 건 그냥 보모 역할을 하라는 거였다. 게다가 순하다고 표현한 아이는 낮에 신발주머니를 흉기처럼 돌리고 있었다. 이전 세입자들도 같은 이유로 계약을 거부했거나 파기했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어수룩해 보여도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쉽게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는지. 오히려 돈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닌지.

“말이 안 되는 건 나도 마찬가지 아닌가? 솔직히 그 돈으로 이런 집 구할 수나 있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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