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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화물연대가 아니라 약속을 어긴 정부이다

[자보] 고대문화 편집위원회

화물연대의 정당한 투쟁에 연대하자



“불법과 범죄를 기반으로 한 쟁의행위에는 끝까지 법적 책임을 묻겠다”

“조직적으로 불법과 폭력을 행사하는 세력”

“북한의 핵 위협과 마찬가지”


지난 11월 24일 총파업에 돌입한 화물연대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남긴 말들이다. 이 말들만 놓고 보면 이들이 정말 사악한 집단처럼 보인다. 하지만 옆에 부착된 다른 자보들의 내용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 화물노동자들은 하루에 3~5시간의 쪽잠만을 자고 일주일에 하루도 제대로 쉴까 말까한 노동환경에 놓여있는 우리의 동료 시민들이다.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했어)?

누가 그렇게 힘든 일을 하라고 했냐고, 돈 많이 벌고 싶어서 무리하게 일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화물노동자들의 ‘특수한’ 고용 형태를 알게 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화물노동자들은 ‘특수’고용노동자로서 자영업자로 분류되나 실제로는 화주[1]로부터 받는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또한 회사에서 차량을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값비싼 화물 차량과 영업용 번호판을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몇십 년짜리 할부의 노예가 되어 일을 멈출 수 없게 된다. 명목상은 ‘사장님’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화주와 할부에 묶여 있어 과로가 강요되는 것이다. 지난 23일 나온 시사IN 기사 「화물차를 쉬게하라」는 화물기사 김원식 씨의 하루를 보여준다. 9월의 어느 날, 정오에 일을 시작한 그는 다음 날 오전까지 트럭으로 전국을 누비며 연쇄적인 상하차 업무를 다섯 건 수행하고, 겨우 두세 시간의 휴식을 가진 후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보며 과연 당신은 '누칼협'을 말할 수 있는가.



안전운임제를 도입하라

이러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화물연대가 도입을 요구하는 것은 안전운임제이다. 안전운임제는 최저임금제도와 유사한 것으로 노동법상 ‘근로자’로서 받는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는 화물노동자들이 받는 운임의 하한선을 국가가 보장해주는 제도이다. 이 안전운임은 최저임금과 유사하게 노사정이 함께하는 위원회를 통해 유류비, 인건비 등을 고려해 결정된다. 안전운임이 보장될 경우 화물노동자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무리한 스케줄을소화하지 않아도 할부금을 갚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화물연대는 2002년 설립 이후 줄곧 안전운임제 도입을 주장하였으나 실제로 도입된 것은 문재인 정부 시기인 지난 2018년이다. 단 3년간 시험적용을 먼저 하고 그 뒤로 별도의 조치가 없으면 소멸된다는 일몰조항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그 범위 역시 전체 화물이 아닌 컨테이너와 시멘트에 한정되었다. 개정된 법이 2020년 1월부터 시행되었기에 올해 말이면 안전운임제가 자동으로 소멸할 위기에 처하자 다시 화물연대가 투쟁에 나섰고, 그것이 지난 6월 있었던 화물연대 파업의 이유였다. 그리고 당시 정부에서는 안전운임제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대상 품목도 확대할 것을 약속하며 교섭이 타결된 바 있다. 하지만 그 이후 정부는 말을 바꿔 일몰제 폐지가 아닌 안전운임제 3년 연장 카드를 꺼내 들었으며, 적용 품목 확대는 아예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5개월 만에 화물연대는 다시 파업에 나섰다. 화물노동자들의 생계와 목숨이 걸린 약속을 정부가 지키지 않아서 벌어진 파업인 것이다. 



진짜 칼들고 협박한 정부

정부는 지속적으로 화물연대의 요구를 무시하며 이 파업이 ‘불법’임을 말하고 있다. 그 근거는 화물노동자들이 노조법상 ‘근로자’에 부합하지 않는 ‘자영업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정부는 파업 5일 차인 지난 29일 정부는 화물노동자 중 시멘트 분야를 대상으로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업무개시명령은 그야말로 ‘강제로’ 일을 시키는 것으로 ‘정당한 사유 없이’ 이에 응하지 않을시 운행정지·자격정지 등 행정처분과 3년 이하 징역, 3천만원 이하 벌금 등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는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으로 위협이 되어 파업 초반 10% 밑으로 떨어졌던 시멘트 출하량은 6일 기준 90% 가까이로 회복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이 노동자가 아닌 ‘사장님’이라 노조 활동은 불법이라더니, 이 ‘사장님’들에게 국가가 법의 칼날로 협박을 한 것이다. 정부 주장처럼 이들이 ‘사장님’이라면 이들은 회사나 정부에 의해 강제로 노동해서는 안 될 것이고,[2] 이들이 노동자가 맞다면 이들의 파업은 정당하다.



화물노동자의 안전은 우리 모두의 안전

업무개시명령과 더불어 정부는 아예 안전운임제 3년 연장조차 없던 일이 될 수 있다며 화물노동자들을 협박하고 있고, 국민적 여론 역시 안 좋아지고 있다. 온갖 말실수와 헛발질로 인해 20%까지 추락했던 대통령 지지율은 화물연대에 대한 강경 대응을 계기로 40% 넘게 상승한 상황이다.[3]하지만 이는 일부 조합원들의 폭력적 행동, 그리고 거대한 손실액만이 자극적으로 보도된 결과일 뿐, 현재 사태의 궁극적 원인은 화물노동자들의 살인적인 근무 환경, 그리고 그를 개선하겠다던 약속을 철회한 정부에 있음은 자명하다. 또한 안전운임제를 확대하지 않아 화물노동자들이 과로에 시달리며 졸음운전을 하다가 일어나는 사고에 대해 불법 파업 운운하는 정부는아무런 대안이 없다.[4] 우리와 같은 도로를 공유하며 모든 곳으로 물류를 나르는 화물노동자들의 안전은 곧 우리의 안전이다.


파업의 동력이 줄어들자 건설노조와 서비스연맹 등 다른 노조에서 동조 파업에 나서고 있다. 이들 역시 대다수가 특수고용노동자들로서 화물연대와 마찬가지로 법적으로 노조로 인정받지 못해 ‘불법파업’ 딱지를 견뎌야 하는 이들이다. 노동시장이 복잡화·이중화되며 기존 노동법이 보호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화물연대의 이번 투쟁은 현실에 비해 협소하게 규정된 권리를 확대해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화물연대의 파업이 비단 화물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다. 제대로 된 환경에서 일할 권리, 노조할 권리를 위해 연대하자.



2022년 12월 8일

고대문화 편집위원회


[1] 화물을 운송하고자 하는 운송서비스의 수요자.

[2]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강제노동은 위헌이자 대한민국이 지난해 체결한 국제노동기구 협약 29호(강제노동) 위반의 소지가 다분하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가 정면으로 법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3] 尹대통령 지지율 5개월만에 40% 돌파…파업 강경 대응 영향 (2022.12.08.). 매일신문..

[4] 법이 시행된 지난 2년 동안 화물차량 교통사고는 줄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으나 안전운임제는 전체 화물차량 중 6.4%에만 시행되었기에 그 효과가 없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우며, 전체 차량에 적용한 이후 사고가 줄어든 해외 사례가 여럿 존재한다. 무엇보다 컨테이너, 시멘트 분야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훨씬 나아진 것은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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