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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문제라고 말하지 말아요

[특집] 편집위원 유리

들어가며: 조세희 작가를 기억한다

12월 25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의 작가 조세희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우연이더라도 기이한 일에는 기어코 의미를 부여하고 싶게 되는 법이다. 신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말한 그가 신의 탄생일에 타계했다는 것은 여전히 신의 존재를 질문하게 되는 비참한 세계에 대한 마지막 고함이었을까.


세상이 변했다. 『난쏘공』이 숨겨야 할 금서에서 ‘도시 빈민의 삶’의 이야기로 요약되는 수능 빈출 문학이 되기까지의 시간이 흘렀다. 동시에 『난쏘공』은 빈민 운동에서 여전히 인용되는 거의 유일한 문학이기도 하다. 이 부정합에 대해 우리는 앞으로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조세희의 죽음에 많은 정치인은 조의를 표한다. 동시에 어떤 정치인은 모두가 행복한 이날조차 불행할 쪽방촌 주민을 언급한다. 재수 없다. 너희가 말하는 가난은 없다.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예산안 삭감안이 통과된 것이 하루 전인 24일이다. 너희는 감히 주거 빈민의 충만한 하루를 비참한 것으로 만들지 말라.


세상은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도시가 노동인구의 주거 대책이 없어 무허가 판자촌을 암묵적으로 허용한 것도, 그런 판자촌을 억지로 밀어내서 일하는 자 누구도 들어가 살 수 없는 마천루를 세운 일도 과거의 일로 치부한다면 그럴 수 있겠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 아니지만. 그런데 이제는 국가가 직접 폭력을 안 써도 돈 없으면 더워서, 추워서 죽는 시대이다. 기후 위기라는 위기를 갑자기 떨어진 운석 때문에 온 인류와 생물종이 절멸하는 일로 생각하지는 말기를.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있다면 하루하루를 사는 것. 비루한 내일을 바라보는 비참한 오늘 위에서도 희망을, 계기를, 사랑을 함부로 포기하지 않기를. 조세희의 죽음을, 올해도 길에서 떠난 홈리스들의 죽음을, 오늘도 생떼 같은 삶과 일의 터전에서 쫓겨난 이들을 난 이렇게 기억하겠다.



8월 폭우참사  - 비 때문에 죽었다 하지 마오


끝으로 내부와 외부가 따로 없는 입체는 없는지 생각해 보자. 내부와 외부를 경계지을 수 없는 입체, 즉 뫼비우스의 입체를 상상해 보라. 우주는 무한하고 끝이 없어 내부와 외부를 구분할 수 없을 것 같다. 간단한 뫼비우스의 띠에 많은 진리가 숨어 있는 것이다 ( 『난쏘공』 中 「뫼비우스의 띠」).


우리는 문제를 해결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문제 설정에 따라 해결책도 상이해진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문제라고 말하기에 앞서 무엇을 문제라 규정하는가의 문제는 더더욱 중요해진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겠는 난망함과 조급함에 우리는 ‘그저 달리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이라도 하는 기분을 느끼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2023년 1월 초이다. 새해 초가 되면 사람들은 흔히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신년 계획을 세우곤 한다. 사실 올해부터는 개인적으로는 함부로 지난 과거를 1년이라는 단위로 묶어 평가하거나 계획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 하였다. 하지만 어떤 일은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기’도 하는 법이다. 2022년 한 해 중 잊을 수 없는 날이 있다. 8월 초, 비가 장대같이 내리던 날이었다.


ⓒ EPA


그날은 2022년 8월 8일, 월요일이었다. 모두가 분주히 출근길에 오르는 평일 서울에 내린 폭우로 10명 넘는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했다. 1907년 기상관측 이래 최대치로, 지난 115년 사이 겪어보지 못한 폭우였다. 이날 서울에만 시간당 강우량 130mm, 하루 360mm가 쏟아졌다.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기상청 서울청사에 설치된 자동기상관측장비{AWS} 측정 결과를 보면 8일부터 이날 오후 9시까지 강수량은 496.5mm에 달했다. 특히 최고 시간당 강수량은 136.5mm에 달하는 등 기상관측 이래 가장 많은 비가 내린 것으로 기록됐다.


8월의 폭우로 확인되었던 사실은 서울시는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우에 대응할 수 있는 도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서울시는 전날 침수된 강남역 일대에 대해 “시간당 95mm(30년 빈도)의 강수량에 대응하는 방재시설을 확보 중이었다”며 “시간당 116mm가 내려 감당하기 어려운, 150년 빈도의 천재지변 성격”이라고 밝혔다. 2010년 9월 광화문 침수와 2011년 7월 우면산 산사태를 겪은 뒤 서울시는 시간당 80~90mm 수준의 강수량을 처리할 수 있도록 도심 치수 기준을 높여왔다. 그러나 100mm가 넘는 폭우가 10년 내로 또 내릴 것이라고 가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재난이 된 비는 모두의 옷깃을 적셨다. 그 말이 모두의 옷깃이 똑같이 젖었다는 말은 아니다. 폭우로 인한 개인의 피해 상황은 당일 SNS를 통해 소상히 공유된다. 누군가는 옥외 주차해두었던 값비싼 외제 차를 잃었다. 누군가는 한 시간 거리였던 퇴근길이 열 시간 거리가 되었다. 누군가는 반지하의 집으로 물이 들어와 하룻밤 만에 자신이 가진 것을 다 잃었다. 누군가는 그것이 목숨이기도 했다. 누가 더 불행했느냐를 경쟁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비로 인한 고통이 불행이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동시에 같은 재난에도 상이한 피해를 본 사람들을 보고 우리가 겪은 것이 비만이 아님을 생각해야 한다. 반지하에 거주해서, 장애인이어서, 가난해서 죽었다.


그림 설명 시작. 폭우가 쏟아지면서 서울 신림동 반지하에 살고 있던 일가족 3명이 사망했다. 그림 설명 끝. ⓒ 민중의 소리 


그러니까 ‘~라서 죽었다’라는 말은 한 치의 보탬 없는 사실인/이 된 것이다. 배달 팁으로 2만 5천 원을 낼 수 있다면 내리는 비를 배경 삼아 한 방울의 물도 몸에 묻히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는 세상의 전제는 비가 오면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이들이니. 신림동 반지하에 살았던 여성 노동자와 그의 언니, 그리고 딸의 죽음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전제였다.


추운 겨울이 지나 다시 따뜻한 봄이 와도, 바닥을 흥건히 적셨던 그 모든 물이 말라버려도 그들의 죽음을 잊을 수는 없다. 나의 따뜻한 살림살이는 사실 기후재난으로 언제든 위협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되물어야 한다.



기후위기의 대안은 달나라에 있지 않아요


    “아저씨는 평생 동안 아무 일도 안 하셨습니까?”

    “일은 안 하다니? 일을 했지. 열심히 했어. 우리 식구 모두가 열심히 일했네.”

    “그럼 무슨 나쁜 짓을 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법을 어긴 적 없으세요?”

    “없어.”

    “그렇다면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어요.”

    “기도도 올렸지.”

    “그런데, 이게 뭡니까? 뭐가 잘못된 게 분명하죠? 불공평하지 않으세요? 이제 이 죽은 땅을 떠나야 됩니다.”

    “떠나다니? 어디로?”

    “달나라로!”

    “얘들아!”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中 「우주여행」)


지섭은 열심히 일하고, 기도하고, 죄를 저지르지도 않은 이들이 괴로운 이 땅을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고, 그러니 우리는 이 땅을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떠나서 도착할 곳은 달나라라고, 그렇게 말했다. 달나라는 어디일까. 『난쏘공』의 아버지는 달과 가장 가까운 지붕 위에 올랐으나 인간이 맨몸으로 38만 5천km나 떨어져 있는 달나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기에 추락해 사망하고 만다.


폭우와 그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잊지 못한 우리는 질문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원망해야 하는 것은 비인가? 어쩌면 ‘역대급’이라는 말을 역대급으로 자주 듣게 되는 심상찮은 하늘인가? 혹은 그것을 만든 기후위기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기후위기의 주원인인 인간 그 자체인가?


기후위기가 문제라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이제 많지 않을 것이다. 현재 기후위기의 원인이 인류에게 있음을 부정하기에는, 기후위기가 이미 매일의 재난이 되었기 때문이다. 모로코와 그리스, 캐나다에서는 대형 산불로 인한 화재 사건이 발생하는가 하면, 이탈리아에서는 극심한 가뭄이, 감비아와 중국에서는 무고한 인명 피해를 불러온 홍수가 발생했다. 파키스탄은 몬순 시기 폭우로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겼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파키스탄 정부는 이번 홍수를 “심각한 기후 재앙”으로 정의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은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으나 정부의 대처 능력 및 사회 인프라 시설에 따라 그 피해는 다를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해온 지구 멸망은 운석과의 충돌처럼 단절적이었을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홍수가 나면 물에 빠져 죽을 거로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마실 물이 없어서 죽고, 화장실이 없어 수인성 질환에 집단 감염되어 죽는다. 의료 체계 자체가 타격을 입어 풍토병을 제어하는 데에 실패하여 죽는다. 우리는 이미 기후위기 한복판에 있다.


그림 설명 시작. 파키스탄은 홍수로 인해 국토의 3분의 1이상이 물에 잠겼다. 그림 설명 끝. ⓒ AFP


하지만 기후위기에 대처하기에는 이미 늦은 것 같아 절망스럽고, 체제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데에 실패할 것이라는 낙담만이 커지는 오늘이다. 이러한 절망과 낙담은 흔히 기후 종말론으로 이어진다. 혹은 산업화 이래로 쌓아온 인류의 죄에 대한 ‘자연의 복수’라고 퉁쳐버리고 바쁜 오늘을 이어 나간다(곽재식, 2022). 물론 이러한 총체적인 감정들을 근거 없는 망상이라거나 근심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지금 처한 상황이 심각한 수준으로 우려스러운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더욱 명확히 해야 한다. 기후위기를 대하는 우리의 인식은 종말론도 자연의 복수도 아니어야 한다. 기후위기는 ‘인간의 문제’이다. 인간의 문제라는 말의 뜻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현실이 있다는 것이다. 종말론이나 처벌의 차원에서 기후위기와 재난들을 접근한다면 공동의 해결 노력은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는 이미 우리에게 닥친 현실이며 우리는 숱한 생명이 실제로 급격한 기후변화 때문만이 아닌 단지 거주하는 공간이 취약해서, 돈이 없어서, 나라가 힘이 없어서 죽는다. 장기적으로 탄소배출을 0에 수렴시키기 위한 사회 전반의 변화를 빠른 속도로 해나가야겠지만 동시에 지금은 이미 변한 기후 속에서 우리가 존엄함을 지키며 살아갈 방법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5조 7천억원 삭감된 공공임대 예산 

폭우 피해 직후인 8월 10일 서울시는 지하·반지하 거주 가구를 위한 안전대책을 발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하·반지하 주택은 안전·주거환경 등 모든 측면에서 주거 취약 계층을 위협하는 후진적 주거유형으로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며 "이번만큼은 임시방편에 그치는 단기적 대안이 아니라 시민 안전을 지키고 주거 안정을 제공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참 맞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림 설명 시작. 오세훈 서울시장은 집중호우 침수 피해로 반지하주택 거주자 사망 사고가 발생한 직후인 8월 10일 반지하주택 일몰제를 전격 발표했다. 그림 설명 끝. ⓒ 연합뉴스TV


시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구체 방안은 반지하 일몰제였다. 요약하자면 반지하에서 사람이 죽었으니, 원래 비적정 주거시설인 반지하 자체를 없애자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 말에는 반지하가 꽤 괜찮은 주거 선택지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


그래도 정부가 정말 주거 취약 계층의 주거 복지에 진심이어서 반지하부터 없애자고 한 것이라 하고 넘어가자. 하지만 반지하에서 사람이 죽은 지 두 달도 안 되고 공개된 2023년 정부 예산안에서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전례 없는 규모로 삭감되었다. 정부의 의지는 허울뿐인 말(이조차도 제대로 하지 않기도 하나)이 아닌 예산이어야 한다. 예산 없이 바꿀 수 있는 행정과 절차는 없다. 그렇기에 변화한 예산은 정부의 의지를 판단할 수 있는 핵심 기준일 것이다. 자신 있게 반지하를 없애자고 말한 정부는 어디 갔을까. 최소한의 주거 복지조차 보장하지 못할 것이라면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한국에서 집은 이원적 의미이다. 사는{buy} 곳이자, 사는{live} 곳이다. 이 두 의미를 엄격하게 분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구매해야 살 수 있기 때문보다도, 각각의 행위 모두 필수적인 생존 전략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대출 비율은 104%로 OECD 1위. 대부분의 부채는 집으로 ‘깔고 앉는 돈’이 된다. 그런데 80% 이상의 주택 대출은 변동 금리이다. 금리 인상 국면에서 가계부채 대책부터 거론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안전한 집 한 채 마련하기가 보편적인 일생일대의 기획이 되는 것은 사람들의 욕심 때문이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서울 집값 상승률은 419.2%(2022년 기준)를 기록했다. 서울 중에서도 집값 인상이 특히 극적인 강남권만 따로 보면 700% 이상 인상된 곳도 있다. 임금 인상은 결코 집값 상승을 따라갈 수 없다. 또 다른 문제는 생애주기 상 강제된 노년의 빈곤이다. 노인 빈곤율이 다소 완화되어 올해는 30%대로 떨어졌다고 하나, 76세 이상을 보면 아예 50%가 넘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애초에 OECD 평균이 10%대임을 고려하면 한국은 노동임금을 확보할 수 없는 순간부터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이는 기본적인 복지의 미비를 방증한다. 이런 상황에서 거주할 수 있는 동시에, 지속적인 자산 금액 상승을 기대할 수 있고, 결정적인 순간 매각 혹은 순환 투자를 통해 자신의 노인 시기 복지를 자체적으로 보장해줄 집 한 채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은 단순한 투기 의지가 아니다. 애초에 따박따박 오르는 자산 소득은 미비한 복지에 대한 개발 시대의 약속이므로.


이런 맥락에서 주거권은 ‘낙오된 소수’를 위한 복지, 혹은 나의 미래 대책 말아먹는 거짓말로 여겨질 소지가 다분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주거권에 대한 제안은 우리의 성장 방식 자체를 바꾸기를 요구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인구가 줄고 있으니 막연히 집값이 하락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으나 서울로의 집중 자체를 저지할 수 없는 국면에서 서울 집값 상승과 주거 기준 하락 자체는 더욱 오랜 시간 지속될 것이다.


올해에도 부동산은 한국 경제의 핵심 변수이다. 작년 8월 공개된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공급 확대, 그리고 규제 완화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계획의 토대는 ‘현재 집값이 오르고 있다’는 전제였다. ‘집값은 끌어내리지 않되 세금은 내려주겠지’ 기대하는 다주택자와 ‘나를 상대적 빈자로 만든 문재인 정부를 용서할 수 없다’고 분노한 무주택자, 두 정반대 부류의 지지자들이 윤석열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지난 6월부터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지수 변동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파트 미분양은 1월 기준 7만 5000호에 이르는데 매달 1만 호씩 증가 중이다. 고금리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올해의 부동산 시장도 침체가 예상되나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대선 시기와 큰 틀에서 변화가 없다는 점은 문제가 있으며 우려스럽다.


집값이 내리면 막연히 다주택자의 손실을 생각하겠으나 오히려 숨통이 죄어오는 것은 주거 취약계층이다. 금리가 올랐고 연료비, 전기요금 상승에 주거비 부담은 상승했기 때문이다. 집값이 내렸다는 것이지, 전월세 비용이 내렸다는 것은 아니다. 실질 임금이 오히려 하락한 현재 상황에서 먹고 사는 일은 더욱 팍팍해진다. 반지하 일몰제가 얼마나 바보 같은 선언이었는지 우리는 이렇게 되돌아본다. 


올해도 여름에는 비가 올 것이고, 무척 더울 것이고, 우리가 알았던 날씨에 대한 상식이 무참히도 의미 없어지는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돈이 없는 사람은 집이 없어 때문에 죽겠지. 그런데도 살기 위해 집을 사고{buy}, 사는{live} 것의 간극을 좁히지 않는다면 그것은 삶에 대한 배반이다.



내놔라 공공임대!

주거권 단체들은 2022년 가을 진행된 기후정의행진(9.24 진행), 세계 주거의 날 주거권대행진(10.01 진행), 빈곤철폐의 날 퍼레이드(10.15 진행)를 묶어 모두 주거권 집회라 규정하였다. 주거권 단체의 이러한 시도는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기후운동과의 적극적 연계를 구상하며 나온 결과이다.


가을의 운동회들을 마치고, 10월 20일 주거권단체들은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단’을 구성하고 국회 앞을 점거하여 농성장을 만든다. 앞서 언급한 대로, 폭우 참사 이후 주거 취약계층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겠노라 발표했던 정부는 약속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공공임대주택 관련 예산 약 5조 7천억 원이 무더기 삭감하였다. 사라진 것은 단지 예산이 아닌, 생존권과 주거권이었다. 이에 적극적으로  만들어진 연대체의 이름이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단’이었다. 농성단이 요구한 것은  공공임대주택 예산과 주거복지 예산을 ’22년 예산 이상으로 대폭 증액하라는 것.


주거는 권리라는 것, 그리하여 필요한 것은 공공임대라는 사실을 모든 방법을 이용해 외치는 시간들이었다. 69일간의 농성 이후 예산안이 통과되면서 농성은 마무리되게 된다. 증액된 6,630억 전액이 전세 임대(융자)였다는 것은 분명 한계적이나, 주거에 대한 보편적 권리 쟁취라는 관점에서 남겨야 하는 것은 투쟁 과정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림 설명 시작. 2022년 12월 24일 진행된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단’ 해단식의 모습이다. 그림 설명 끝. ⓒ 빈곤사회연대                          

    

오늘(24일, 새벽), 국회에서 2023년도 정부 예산안이 통과되었다. 시민들의 절박한 민생예산은 윤석열 대통령의 몽니와 여당의 대통령 바라기 앞에 결실을 맺지 못했다. 국회 권한인 예산안 의결권은 대통령의 잘못된 고집 앞에 무력해졌다.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고시원 화재 참사와 반지하 수재 참사가 연이어 발생했지만, 집답지 못한 집이 삶을 삼키는 비극을 막기 위한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대폭 삭감됐다. 정부가 제출한 5조 6천8백억 삭감안에서 6천6백30억원만 찔끔 증액되었을 뿐, 결국 올해 대비 5조원이 삭감된 채 통과되었다.

 

“공공임대주택은 선(善)이 아니다”라며 재벌과 다주택자 세금 깎아주는 게 약자를 위하는 것인냥 말하는 대통령의 부자 편향과 약자 외면이, 최악의 예산안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국회가 처리한 ‘부자동행, 약자 외면’ 예산안의 가장 큰 책임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다.

 

69일간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 저지를 위해 국회 앞에서 철야농성을 진행한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단>은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공공임대주택 예산삭감을 고집한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강력히 규탄한다. 또한 ‘공공임대주택 예산, 전액 복구하겠다’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정부·여당에 끌려다닌 더불어민주당의 무력함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2023년을 주거권의 새해로 열기 위한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단>의 69일간의 농성은 빼앗긴 내년도 공공임대주택 예산 5조 7천억을 복원하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우리는 실패하지 않았다. 기득권 권력에 맞서 꺾이지 않고 싸운 우리의 69일간의 투쟁은 하루 하루가 승리의 날들이었다. 고대광실 국회 앞에 작은 천막 농성장 설치가 가당키나 하냐며 득달같이 달려든 공권력의 폭력에 온몸으로 맞서 가난한 우리의 영원한 집을 쟁취하기 위한 천막집을 세운 첫날부터 우리는 승리했다.

 

반짝이는 금배지를 달고 공공임대 예산엔 관심도 없이 집부자 감세를 논의하던 국회의 테이블에 공공임대주택 예산이 쟁점이 되게 만든 우리가 승리했다. 농성장을 단 하룻밤도 비울 수 없다며 영하의 맹추위에도 농성장을 지킨 우리가 승리했다.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장’을 주거권의 길을 여는 시대의 푯대로 지켜낸 이들이 다른 누구도 아닌, 쪽방·고시원·반지하 세입자들이었고 거리 홈리스와 임대주택 대기자였으며 청년과 세입자 당사자들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승리했다. “지긋지긋한 것들, 이제는 집도 달라고 하네”라는 집을 권리로 인식하지 못하는 비아냥에도 국회 본청 앞을 가득 채워 “내놔라! 공공임대!”를 당당하게 외친 우리가 승리했다.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방문한 대통령을 향해, ‘정부 예산안 싫어대회’로 맞선 우리가 승리했다. 국회를 등지고 108배를 올리고,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몸을 대며 오체투지를 하면서도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며 활짝 웃었던 우리가 승리했다. 절망적인 국회의 예산안 논의 상황에도, 국회 정문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희망을 만들어간 우리가 승리했다. 꺾이지 않고 싸우며 전진한 우리가 승리했고, 아집과 무력의 민낯을 보여준 저들이 패배했다.


오늘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단>의 국회 앞 농성은 여기서 멈춘다. 농성을 해단할 뿐, 주거권을 향한 우리의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지키고자 했던 것이 그까짓 5조 7천억이 아니었기에, 우리의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더 많은 시민과 함께 우리의 삶과 미래를 위한 길, 주거권의 길을 만들어 갈 것이다.


즐겁게 싸운 69일간의 기억, 모두가 함께 만든 감동적인 날들을 간직하며 공공임대주택 확대와 주거권을 향한 싸움을 더 크고 더 힘차게 열어갈 것이다. 69일간의 승리보다 더 큰 승리를 우리는 반드시 쟁취할 것이다. 부동산이 아닌 주거권 쟁취, 꺾이지 않은 우리가 마침내 이긴다!



편집위원 유리 / beisolated62@gmail.com



참고문헌

단행본

곽재식 (2022).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어크로스.

기사 및 온라인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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