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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사기, 악의를 용인하는 거래

[특집 '빈곤'] 편집위원 윤석

 ‘깡통 주택’의 고의적 형태인 ‘전세 사기’가 2022년 이후 부동산 버블이 붕괴함에 따라 증가하고 있다. 전세 보증금이 주택의 실제 가치를 초과하는 상태로 거주 주택이 경매에 넘어가게 되면 세입자는 보증금의 권리에서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전세 사기는 이를 역이용하여 매매가보다 높은 가격에 전세가를 형성한 뒤 의도적으로 이를 경매에 부쳐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거나 저가의 집을 강제로 구매하도록 하는 사기 수법이다. 이 글은 전세 사기의 구조적 측면을 밝히고 전세 사기를 둘러싼 정책과 담론의 형태에 대해 비판하며 대안적인 논의 방식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를 통하여, 이 글은 전세 사기를 둘러싼 남한 부동산 구조를 ‘악의를 용인하는 구조’ 라고 정리하고자 한다.


전세 사기 다시 보기


 전세 사기는 이미 공적 및 정치적 담론의 주제가 되었다. 올해 7월 26일까지 전세 사기는 총 1,249건으로 집계되었으며, 그 피의자로 3,466명이 검거되어 367명이 구속 수사중이다.[1] 반쪽짜리 대응이라 비판받은 전세사기 피해자 지정만 해도 1,316명이니[2], 실제 피해자의 수는 그보다 훨씬 많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전세 사기 특별법」이 5월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6월 1일을 기점으로 시행되었고, 주거권 기구 민달팽이유니온 등은 까다로운 피해자 요건과 대출에 그칠 뿐 보증금 환수에 적극적 역할을 거부하는 이 법률을 규탄하며 추가적 행동이 필요하다고 성명을 내었다[3]. 피해자들의 주거에 얽힌 노동 공급의 문제, 그리고 그들의 삶의 유지에 얽힌 소비의 문제에, 그들의 가족과 직장을 비롯하여 수많은 이들이 얽혀 있다.


 혹자는 전세 사기를 ‘부동산 전세 버블 붕괴’, 혹은 ‘부동산 연쇄 파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소수의 범죄적 일탈로 사태를 명명함으로써, 부동산 버블이 소강 국면에 접어들어 전세 자금을 돌려줄 수 없게 된 환경을 지워 보려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으로 보면 2022-23년 전세 사기 국면은 2000년대 후반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동일 선상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투자 은행들이 고위험 고소득 대출 상품을 서브프라임 주택을 이용해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그 결과 수많은 지주와 세입자들이 파산하였고, 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상품을 만든 은행들의 연쇄 파산으로 이어졌다.(United States. Financial Crisis Inquiry Commission 2011)[4]


 사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전세 사기는, 똑같은 부동산 연쇄 파산이라고 쉽게 말하기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파산의 주체를 놓고 보자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채무자로서의 주거민의 파산이었는데 비해, 전세 사기는 채권자로서의 주거민의 파산이다. 또한 책임의 차원을 놓고 보자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금융 체계 차원에서 통제 불가능한 작동 끝에 투자은행과 함께 부동산을 붕괴시킨 것이라면, 전세 사기는 한층 더 저급의, 법률 차원에서 명백히 악의적인 기망을 의도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비교는 사태를 보다 거시적인 측면에서 볼 수 있게 해준다. 압축된 형태로 이야기하자면 이는 자산 시장을 중심으로 한 경기 순환의 효과이다. 단순히 말해 악의를 가진 전세 사기꾼들이 나타난 데에는 경제적 배경이 숨어 있다. 그러나 이 거시적 사태를 보다 세밀하게 살펴본다면, 이 경제적 현상이 일어나는 시장의 구조에 대해 질문할 수밖에 없다. 왜 하필 이런 형태의 전세 사기였는가? 문제가 다른 방법으로 해결될 수는 없었는가? 추상적인 거래의 장일 뿐인 시장이 실제로 작동하는 데에는, 우선 시장의 상(像)이 있어야 하고, 이를 구성하는 시장 제도가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이 제도를 실제로 구동하는 자원의 배분이 있어야 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전세 사기를 동일선상에 놓고 보는 것은 이들을 공시적 및 통시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전세 사기를 보다 구조적인 측면에서 보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전세 사기를 논하기 위해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구조성을 전세 사기에 단순히 유비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오히려 거꾸로, 전세 사기는 부동산 자산 시장을 경유하여 보다 큰 구조를 그리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전세 사기 논의의 재구성


 전세 사기가 본격적으로 공중의 논의로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2022년 12월 ‘빌라왕’ 사태가 보도되면서 부터이다. 허위 매물을 많게는 수천 채 이상 갖고 있던 여러 부동산업자들이 경매를 통해 전세 자금을 돌려주지 않았다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당시의 부동산 시장 상황은 2023년 중반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바, 2022년 하반기 당시 부동산 시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 전세계적 인플레이션과 이로 인한 재정 및 통화 정책의 수정 등으로 인해 문재인 정부 시기 광풍이라 할 만한 버블을 지나 급격하게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 전까지의 부동산 광풍을 둘러싼 논의는 크게 세 가지 주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는 시장주의의 탈을 뒤집어쓴 지주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장으로, 이들은 부동산 광풍이 ‘수요와 공급’ 원리로 돌아가는 부동산 시장에 가치판단적 규제를 하여 행위자들을 선한 세입자와 악한 지주로 구별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특히 서울에서의 해법은 더 많은 주택 건설과 임대 사업 증진 뿐이라고 강변한다. 둘째로는 문재인 정부를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으로, 이들은 매매와 전세를 통틀어 소수의 악성 지주들이 부동산 시장에서 의도적으로 독점력을 행사함으로써 대중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는 주거권의 관점에서 부동산을 시장을 넘어 바라보려는 관점으로, 이들은 부동산에 얽힌 다양한 권리들을 논해 시장주의적 해법을 넘어서려 하며, 부동산 광풍의 대안으로 공용 임대 주택을 늘려 공공성의 이름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이들 세 가지 주장은 지금까지도 논의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이들 중 개인적 의도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로 접근하려는 것은 첫 번째와 세 번째이다. 한편 행정적 측면에 있어, 부동산 정책은 처음에는 적극적인 부동산 시장 개입을 통한 공공성 강화를 의도했다가, 적어도 2019년 이후에는 공급을 늘리고 임대인을 보호하려 하는 등 시장주의적 기조를 취했다고 할 수 있다.


 부동산 시장 관련 담론의 관점에서 ‘빌라왕’ 사태는 지금껏 부동산, 특히 전세 시장을 다루던 언론 및 공중의 태도에 대단히 의미심장한 기능을 한다. 얼핏 지금껏 구조적으로 보였던 문제가 마치 몇 명의 악의에 의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수천 채의 주택으로 악의적으로 세입자들에게 사기를 치는 지주들의 존재는 친자본 시장주의자들에 의해 얼토당토 않은 만화적 이야기로 치부되거나,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이들에 의해 근본적이지 못 한 주장으로 언급될 뿐, 심지어 상술한 두 번째 주장에서도 이들의 존재를 입 밖으로 꺼내거나 정책에 영향을 주지 못 했다는 것이 사실이다. 논의의 틀이 뒤집힌 것은 2022년 12월 빌라왕 보도부터이다. 납작한 논의를 공격하거나 실제로 납작한 논의를 하는 이들이 만든 ‘요상한 환상 속 동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봉준호의 2019년 영화 「기생충」의 장면을 빌려 말하자면, 어릴 적 본 지하실 유령이 실제로 튀어나와 미술치료 선생님을 죽인 꼴이다.


 논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점을 맴돌고 있다. 우선 친자본 시장주의적 논의는 여전히 전 정권의 탓을 하고 있다. 주간조선은 임대차 3법과 무분별한 전세 자금 대출이 문제로 이들이 좋은 임대사업자를 퇴출시켰다고 주장한다.[5] 전세 사기가 의도적인 기망의 의도를 가졌다는 것을 전제로 논의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논의는 논리적 건전성의 여부를 떠나 사실 아무 상관도 없는 이야기를 갖다 붙인 것에 불과하다.


 정책적 해법은 이보다는 나아 보인다. 국토교통부 정책 브리핑에 의하면 경찰 국가수사본부 · 국토교통부 · 대검찰청 3개 단위는 수사 협력 체계를 구축하여 범죄자들을 일망타진하고 있다. 윤석열 본인에 비하면 놀랍게도 일관적이다! 실제로 악의를 가진 세력이 있었다. 그리고 정부는 그 개인들을 개인에 대한 해법으로 처단한다. 책임은 이렇게 완벽히 가려진다. 어떤 책임? 행정부의 책임, 여당의 책임, 그리고 대통령의 책임. 행정부는 전 정권과 같은 인원들이고, 여당은 지금까지의 발화에 책임을 지지 않으며, 대통령은 이를 총괄하지 않는다. 굳이 전체 차원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책임은 이렇게 사라진다.


 논의는 여기서부터 재구성되어야 한다. 전세 사기는 그 악의에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악한의 무책임 뒤에는 책임을 회피한 수많은 이들이 제도 뒤에 숨어 있다. 그리고 그들이 방기한 책임은 전세 사기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떠넘겨진 책임들을 다시 떠넘길 이를 찾고 있다. 전세 사기는 악의의 문제로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초등적 악의를 가지고도 지금까지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도록 하는 구조의 문제이다.


전세라는 사금융, 세입자를 불평등으로 집어삼키다 


 전세 제도는 사실 임대 제도처럼 보이는 외양과 달리, 실제로는 금융 체계의 일부로서 다중의 채권 관계 속에 세입자를 끼워 넣는 제도이다. 전세 사기를 둘러싼 책임 관계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이 가장된 관계에서 시작해야 한다. 사실 전세는 남한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제도로서, 그 외양은 임대를 가장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주택을 담보로 하는 사금융의 형태이다. 전세가 임대라면 세입자는 지주에게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도리어 거액의 ‘보증금’을 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세기 해외파 남한 경제학도들의 주요 논문 소재는 남한에만 존재하는 이 기묘한 제도였다. 그러나 이 보증금을 대출금으로 이해하면, 세입자-지주의 가장된 관계는 사실은 채권자-채무자의 관계로서, 그 과정에서 주택은 주거를 위해 실제로 사용될 뿐 사실은 일종의 담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금융 체계의 채권-채무 사다리에서 전세는 은행-세입자라는 또다른 채권-채무 관계를 형성한다. 사실 주택 자금이 없어 전세 시장에 뛰어드는 세입자가 도리어 채권자가 되는 것은 매우 이상해 보인다. 더구나 남한의 사금융은 1963년 8·3 조치로 고리대금업이 분쇄되며 근대적 금융 체계로 일소되었기에 전세가 사금융의 변형이라는 것 또한 황당하게 들린다. 그러나 전세 자금이 처음부터 목돈이 아니라 대부분 은행 대출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은행-세입자의 채권-채무 관계는 다시 세입자-지주의 채권-채무 관계로 이어진다. 전세 제도는 그러므로, 은행-세입자-지주의 고리를 이뤄 세입자를 중간에 낀 은행과 지주 간의 금융거래 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중의 채권 관계는 그 무게가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은행-세입자 간 관계에서 성실한 금융 거래의 의무는 채무자인 세입자에게 있는데, 똑같은 채권-채무 관계인 세입자-지주 관계에서 그 의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세입자가 다시 을[乙]이 되기 때문이다. 같은 채권-채무 관계인데, 세입자는 주거권은 고사하고 ‘채권’이라는 권리마저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것이다.


 언뜻 다가오지 않는 이 관계는 전세 주택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다. 전세 주택이 대출의 담보라는 것을 주목하면, 그 전세금의 배당은 당연히 가장 직접적인 채권자인 세입자에게 넘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주 또한 대출의 담보로서 주택을 금융 기관에 내놓은바, 세입자와 은행은 전세금의 향방을 두고 권리의 우선순위를 다투게 된다. 현행 민법 체계는 부동산 물권에 대하여, 그 전세금은 은행에 먼저 배당된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양측으로 의무만을 지는 거래인 것이다. 금융 거래는 언제나 위험을 동반하고, 담보는 그 보충물로 기능한다. 그런데 이 거래에 의하면 은행과 지주의 위험은 언제나 세입자에게 전가되게 되어 있다. 세입자는 한 마디로 위험의 총알받이가 된다.


 전세 제도는 거래 당사자를 분산해 불평등을 은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 배당 순위는 그 자체로는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어쨌든 은행도 지주와의 관계에서는 채권자이고, 지주가 집을 마련하고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은행과의 거래가 있었기 때문이니 말이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의 불균등 구조와 맞물릴 때, 전세 제도는 매우 기묘한 형태가 된다. 세입자-지주 관계가 기존 부동산 등 자산 분배에 구속되면 이야기는 확 달라진다. 지난 30년간 남한 부동산은 상위 5%의 보유 면적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상위 10% 및 25%가 보유 면적이 상승하는 형태를 보여준다. 남한 부동산은 1989년 상위 5%가 전체 개인소유 토지 중 65.2%를, 10%가 76.9%를, 상위 25% 가 90.8%를 보유한다. 국토교통부에 의하면 2017년 이 수치는 각각 61.9%, 77.1%, 93.8%로 이어진다.[6] 30년에 걸쳐 상위 25%가 이 거래에서 이익을 볼 수 있으니 은행 자본과 연합하면 그 밑의 아우성을 짓누르는 것은 너무도 쉽다.


 전세 제도는 이 양극화된 자산 분포를 거쳐 주택 담보 금융 거래상의 제도화된 페널티가 정당화되는 기제이다. 이중의 채권 거래에서 위험 책임은 한 쪽으로 집중된다. 세입자는 채무자로서 의무를 지는 동시에 채권자로서 위험 책임을 짊어질 것을 감수하고 시작해야 한다. 상황이 이러니 이런 불공정한 거래를 떠안아야 하는 세입자는 처음부터 은행과의 거래에서조차 불이익을 안고 시작할 수밖에 없다. 한쪽에만 의무를 다중으로 부과하는 이런 거래는, 시장을 믿는다면 성립될 수가 없다. 자본주의적 시장 제도는 기존 분배 상태에 의해 좌우되고, 불공정 거래는 몇 단계의 마술 쇼를 거쳐 원래 그런 것으로 포장된다.


 여기서 처음에 언급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의 비교로 돌아가보자. 언뜻 반대로 보이는 이 두 사건은, 사실 두 사건 모두 이전부터 축적된 강한 불평등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실체를 찾을 수 있다. 채권-채무 관계로 환원하였을 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피해자는 채무자였고 전세 사기에서 피해자는 채권자이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주거 빈민들로 하여금 모기지 대출에 의존하여 생계를 꾸릴 수밖에 없도록 하는 불평등 구조를 전제했고, 전세 사기는 자산 격차로 인해 불공정 거래를 용납하게 하는 구조를 전제했다. 한 마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전세 사기 대란은, 채권-채무 관계에 가려져 있는, 부동산 분배를 매개로 하여 중간자에게 위험을 떠넘긴 사건이다. 시장주의자들은 불평등은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자산 불평등은 거래의 기본이 되는 신뢰를 무너뜨린다. 불평등을 통해서만 빈곤의 진정한 측면이 드러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단지 가치판단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지탱하는 신뢰 자체가 상대적 빈곤 속에서도 금새 허상임을 드러내면서 증명된다. 지금의 전세 사기는 전세 제도 속에 숨겨진 불평등을 논함으로써 그 진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전세사기의 시작: 정책적 전세 버블


  이 단락에서는 현 전세 사기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분석으로서, 전세 사기가 본격적으로 자행되기 시작하는 2021년까지 전세 시장의 상황을 구성한 사건들을 통시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전세 사기의 필요 조건은 크게 두 가지, 즉 때로 매매가를 상회하는 높은 전세가와, 사기에의 유인을 충분히 제공하는 높은 지대를 들 수 있다. 따라서 전세 사기의 배경으로, 이 글은 남한 부동산 시장의 과열에서부터 통시적 회고를 시작한다.


 남한 부동산 시장의 과열은 크게 두 시점, 한 해 서울 아파트 가격이 56.58% 상승한 2017년과, CoViD-19 기간 동안 또 한 번 급등한 2020-21년을 그 기점으로 한다. 문재인 정부는 토지공개념을 운위하며 강력한 부동산 규제를 시행하려 하는 듯 하였으나, 2017년 초반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후퇴하는 양상만을 보일 뿐이었다. 이 시기 부동산 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은 정책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으니, 2015년 초이노믹스로 LTV(주택 가격 중 대출금의 비율)와 DTI(월 소득 대비 월별 원리금 상환 비율) 규제가 대폭 완화된데다, CoViD-19 시기의 지대 상승이 팬데믹 대응 재정 지출이 부동산을 위시한 금융 시장으로 쏠린 바 있다. 2017-22년의 끝을 모르는 주택 가격 상승의 시대는 CoViD-19 팬데믹이 끝나고 동시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공급망에 타격을 주는 2022년에서야 진정이 된다. 전세 사기가 일어나는 것은 공교롭게도 부동산 시장의 과열의 종결과 궤를 같이 한다.


 전세 시장 과열은 2017년부터 시작된 민간임대사업자 특혜에서 시작한다. 유래 없는 집값 폭등이 도마에 오른 2017년 12월 13일, 문재인 정부의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정책」을 발표한다.[7] 김현미 장관은 “오는 2020년까지 민간 등록임대주택 200만가구를 확보해 공적임대주택 200만가구와 함께 공적 규제가 적용되는 안정적인 임대주택 400만가구를 공급하겠다”라고 밝혔다.[8] 그 시작은 민간임대사업자 범위의 확대로서, 박근혜 정권 당시 임대사업자의 범위가 3호 이상이었음에 반해, 文 정권에서부터는 1호 이상으로 바뀌게 된다. 이는 당시 부동산 정책의 반대자들이 집값 폭등의 원인으로 공급 부족을 지목한 것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응으로서, 지주에게 혜택을 주어 시장에 임대 주택 공급이 원활해질 것이라는 의도였다.


 토지자본 친화 정책은 시장을 안정화하기는 고사하고 더욱 과열시켰다. 1주택자가 임대시장에 민간임대사업자로 뛰어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자신의 주택을 임대하여 주고 그  세금과 원 자금을 합쳐 더 좋은 주택으로 이사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이미 초이노믹스는 LTV 및 DTI 규제 완화를 통해 이를 용이하게 하였다. 더구나 민간임대사업자는 투기지역에서조차 무제한 담보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2018년 한 해, 한 주택당 80%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주택 하나로 다섯 주택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지주에게 혜택을 베풀면 지주는 은전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다음 해인 2018년 민간임대사업자는 148,000명 늘었고 등록임대주택은 1,508,000대 증가한다. 이전까지 최대 증가분이 각각 64,000,명 980,000대였음을 생각하면 터무니 없는 수치였다.[9] 기존에 갖고 있던 주택이 등록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이들이 지주를 꿈꾸며 시장에 뛰어든 것이었고,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없는 문제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김현미 장관이 약속한 ‘공적 규제’에 무색하게도 민간 임대 사업자에게는 건강보험료 감면의 특혜까지 주어진다.[10] 여기서 우리는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병원비’를 카드빚으로 납부하다가 ‘공과금’이 연체된 사건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사회 복지는 예산이 없다고 주장하며 삭감되었지만, 동시에 임대사업자에게는 건강보험료 감면이 주어진다. 조세와 재정은 국가 경제의 기반을 설계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빈곤은 성장을 통해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장을 위해 ‘의도적으로 방치’되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2019년부터 이미 부동산 시장은 거품으로 가득 찼고, 2020-21 CoViD-19 시기 재정 지출이 부동산으로 쏠리며 거품은 가득 차기 시작한다. 이 시기동안 민간임대주택자는 종합부동산세 면제를 통해, 8년 임대시 80% 면제, 4년 임대 시 40% 면제 혜택이 주어진다. 부동산 시장의 옹호자들은 종합부동산세가 부동산 시장을 경색시켰다고 주장하지만, 앞선 민간임대사업자 특혜와 비교하면 이 주장은 매우 이상한 주장이 된다. 공교롭게도 ‘빌라왕’이 적발된 2022년은 CoViD-19가 가라앉으며 주택 시장이 침체되기 시작한 시기인 동시에, 임대주택 임대 4년차가 되는 시기였다.


전세 사기 대응 정책은 어떻게 악의를 용인하는가


 지금까지 본 수많은 정책적 개입들은 그 필연적 결과로 전세 사기를 낳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 첫 단락에서 보았듯이, 윤석열 정부에 의하면 전세 사기는 철저히 개인적인 문제이다. 전세 사기는 특별 검사 제도나 제도 개선 등이 아니라 검찰력을 통해 용의자들을 처단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 윤석열의 전가의 보도인 압수 수색은 그 화려한 상징이 된다. 전세 사기는 어디까지나 사기꾼의 문제이며 사기꾼을 일망타진하면 되는 문제인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국토교통부와 주택도시공사 또한 "전세사기 대처 방안"을 공개적으로 내놓고 있다. 이들의 자세를 보건대 전세 사기는 정책적 개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 방안만 충실히 따르면 개인적 노력으로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전세 사기는 사기꾼 개인 때문이고 해결책은 개인들이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며, 공적 영역이 할 일은 나쁜 개인을 검찰력으로 징벌하는 것이다.


 이러니 「전세 사기 특별법」이 반쪽짜리로 입법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본회의를 통과한 특별법에 의하면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피해자로서 보상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보조금 차원에서 저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어디까지나 대출에 불과하고, 10년 뒤에는 이 돈을 갚아야 하는 것이다. 10년 뒤 돌려받을 돈이 10년 뒤 없어지는 돈으로 바뀐 것이다. 만일 전세 자금이 부채로 형성된 것이라면 이 대출은 단지 옮겨타기에 불과하게 된다. 더구나 여기서 입주 전 피해자들은 여러 이유를 거쳐 배제된다.


 재정은 정책적 논의의 장에서 좋은 빌미가 된다. 2023년 4월 28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제405회 02차 전체 회의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집단 사기를 왜 국가가 대납해야 합니까?”라고 몰아붙이며 심상정 의원이 대표발의한 「임대보증금미반환주택 임차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안」 에 대해서도 ‘재정이 부족한데 그 많은 피해자들을 어떻게 다 구제하느냐’는 논조로 답한 바 있다.[11] 이 논리는 두 가지 의미에서 모순이다.


 첫째, 윤석열 정부의 기조는 어디까지나 전세 사기 범죄자 본인에게 사법적 절차를 거치는 것으로 전세 사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법 대책에는 당연히 사기로 인해 생긴 차익을 회수하는 것이 포함된다. 낙관적인 상상으로 전세 사기 자금을 모두 환수하는 데에 성공한다면 재정 문제는 신경쓸 필요도 없다. 재원은 사기꾼에게 받아내면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모든 돈을 돌려받는 것은 불가능하고, 특히 고금리로 인한 자산 시장 냉각의 시대에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탕진이 아니라 투자를 했더라도 이미 날아갔을 것이다. 윤 정부도 이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세 사기가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문제이니 사법적 처리를 하면 된다는 윤 정부의 시책은 모순에 부딪힌다.


 둘째, 재정적 한계가 문제라는 주장은, 그 재정 정책을 통해 이뤄내고자 하는 거래 질서의 안정성을 생각하면 더욱 헛된 문제 제기에 불과하다. 사실 앞서 말한 개인적 책임으로의 전가도 권리의 우선 순위를 따지자면 어떤 경우에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때도 있기 마련이다. 전체 차원의 질서가 개인에게 배분되는 것을 권리라고 한다. 그렇다면 모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고, 전체적 질서에 맞게 어느 권리의 편을 들고 어느 권리의 편은 포기하는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포기하는 권리가 거래 신뢰와 관련되어 있다는 데 있다.  전세 사기는 결국 사기의 일종이고, 사기는 신뢰에 관한 문제이다.  은행-지주 간 금융 거래에 중간자를 끼워 위험을 몰아주겠다는 것이 대체 어떤 신뢰를 보장할 수 있는지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더구나 이것이 '전세' 사기라는 데에서 문제는 더더욱 심각해진다. 민법의 체계상 부동산 물권은 진의의 보호가 외양적 신뢰의 보호를 압도한다. 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 거래에 있어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의무보다 그 사기를 차후에라도 교정할 책임이 더욱 앞선다는 것이다. 이처럼 구조적 대책을 거부하고 개인적 층위의 문제임을 강조하며 사법적 대책을 사용하려거든, 피해자 개인의 물권을 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 우리 민법은 이를 거래의 규칙으로 정했고 이에 기반해 거래 질서를 꾸려 왔다. 이는 검찰 출신 윤 정부도 익히 알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정부 시책과 특별법은 이러한 거래 원칙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외양의 신뢰가 우선시되려면 상법이 개입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체 어떤 세입자가 가정집을 장사하려고 빌렸겠는가? 여기서 잠시 앞서 말한 ‘민간임대사업자’를 부동산업자로 간주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수많은 1주택자들이 주택 한 채를 팔기 위해 ‘민간임대사업자’를 자처했을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 점을 생각한다면 이것을 상거래라고 볼 수 있을지를 고려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전세 사기 범죄자가 부동산 '업자' 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서 법리적 해석은 철저히 방기된다. 이 검찰 정권은 권력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권력을 휘두른다.


 신뢰는 철저히 포기되고 방치되었다. 그리고 신뢰에 기반해 움직이는 제도들 또한 방치되었다. 전세 사기 대책 거부는 신뢰의 포기일 뿐이나, 허울 좋게도 재정 건전성을 위시하여 정당성을 움켜쥐고 있다. 화폐는 거래를 위한 매체이고, 거래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거래 신뢰는 시장을 구성하는 제도들의 작동을 통해 보장된다. 이 제도들은 경제 체계 내의 재정 지출을 통해 달성된다. 재정 건전성도 결국 통화의 신용을 위한 것이다. 아무리 국고가 많아도 그 화폐가 거래 수단으로 쓰일 만큼 신용이 떨어지면 재정건전성이 아무리 좋아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재정 문제를 들먹이며 신뢰의 훼손을 방치하고 정당화하는 것은 재정건전성 달성을 통해 이루려는 진짜 목표를 방기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현 전세 사기 대책은 개인적 책임을 강조하며 시작했지만, 결국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환경 자체의 질서를 심각하게 뒤흔드는 방안일 수밖에 없다.


전세 사기는 ‘어떻게’ 구조적인가?


 개인적 선택지를 넘어 그 환경 자체를 뒤집을 것을 요구하는 구조적 해법은, 현 전세 사기 정국에서는 거래 환경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윤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과 매우 정확히 일치하게 된다. 이러한 이해를 통해 우리는 전세 사기의 전선을 새로이 구축할 수 있는 이론적 자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구조적 문제라는 레토릭의 본래 의미를 보다 엄밀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사실 구조적이라는 단어는 범용적으로 쓰이는 만큼 그 뜻 또한 모호하다. 구조적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개인적이라는 단어의 반대말로 쓰이고, 개인적 문제로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뜻이다. 이 용법은 집단적 행동의 촉구 대신 개인에게 주어진 선택지 자체를 문제 삼을 것을 요구한다.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이루어지는 장 자체에 답이 없으니 아예 답안지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전세 사기는 제도적 대책을 필요로 한다. 이를 관리하는 정치 체계는 공중의 여론을 그 환경으로 삼는다. 일반적으로는 대중적 여론을 움직이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이를 다수의 문제로 설명하는 것은 충분히 건전한 논의이다. 그러나 전세 사기가 그들을 조직화하여 집단적 행동으로 나감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지 확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물론 전세 사기는 집단적 문제가 맞다. 실제로 그 피해 규모와 피해자의 수도 가십거리로 넘길 만한 수준이 아니다. 어찌 되었든 정치 체계에 의제로 올라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전세 사기 문제가 그 피해자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온전히 보전하고 끝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적어도 현재의 상황에 비춰보았을 때 몹시 난망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전세 사기 문제에서 이해관계자들은 대중적인 만큼이나 불균질하다. 구조적 문제를 피상적으로 접근하면 단순히 구조를 집단으로 환원해, 인민 다수가 문제를 겪는다는 것을 입증하고 그리고 해결책으로서 대중 동원을 요구하면 된다. 그러나 전세 사기 문제에는 구조적 피해자들만큼의 힘을 가진 구조적 수혜자들이 있다. 전세 사기의 피해자들은 세입자들이지만, 그 수혜자들은 지금까지 부동산 광풍을 기회 삼아 적응해온 다수의 중산층이다. 앞서 살펴본 지난 30년간의 부동산 자산 분배에 따르면, 적어도 인구의 10%-25%를 적으로 돌리고 전선을 그어야 한다. 이 정도의 인구를 버리고 시작해야 하는 싸움에서는, 도무지 다수적 여론을 장악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막막한 상황이다.


 그러니 전세 사기 국면에서 오늘날 윤석열 정부는 여론을 신경쓰기는 커녕 오히려 묵살하거나 적반하장으로 허위의 대립을 만들어 갈등 상황 자체를 유야무야 넘기는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비단 전세 사기만이 아니다. 다수성으로 싸우자고 퉁치기에는, 우리는 4.14 · 9.23 기후 재난 대응 행진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윤석열 정부 동안 일어난 수많은 대중적 참사들과 노동 탄압을 기억하고 있다. 대중적 역량을 결합해야 한다는 수사와 달리, 윤석열 정부에서 대중 운동은 한 번도 승리를 경험한 적이 없다. 상황이 이러하니 전세 사기 특별법이 온갖 아집을 거쳐 졸속으로 통과된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전세 사기는 분명히 구조적인 문제이다. 이 말을 입에 담기 위해 굳이 제도 하나하나를 주문처럼 입에 담아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이 구조적 문제를 곧바로 집단적 문제로 환원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마찬가지로 이 구조적 문제를 단순히 자본주의의 부수적 병리 현상이라고 함부로 치부할 수는 없다. 오히려 전세 사기의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전선 너머의 수많은 이들이 그 구조의 수혜자라는 것을 짚어야 한다.


결론을 대신하여


 가슴이 뚫려 절망에 빠진 수많은 피해자들 못지 않게, 남의 가슴을 뚫어낸 기쁨에 몰래 웃는 수많은 수혜자들이 있다. 그들이 수혜자가 된 구조는, 그간의 수혜를 정산할 시간에 그 위험과 대가를 불평등의 피해자에게 전가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구조, 악의를 용인하는 구조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세 사기는 두 가지 차원에서 악의를 가진 구조라 할 수 있다. 직접적으로 보자면 전세 사기는 ‘깡통 전세’의 의도적 형태이다. 전세 사기는 악의적 기망으로, 부동산 자산 버블과 이와 함께 하는 전세 버블이 붕괴하는 국면에 의도적으로 그 대가를 세입자에게 떠넘긴 것이다. 전세 사기가 명시적으로 일어난 것은 2022년으로, 인플레이션과 함께 자산 시장은 쇠락하기 시작했고, 거의 의도적으로 보이는 수준의 전세 시장 과열과, 역시 과열되었지만 자산 시장의 쇠락으로 인해 몰락하기 시작한 매매가의 차액이 드러나기 시작한 때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이 사기에는 애당초 신뢰를 배반하고 위험을 떠넘길 수 있도록 설계된 제도가 있으며, 그 제도를 지탱해온 자산 분배 구조가 있다. 공교롭게도 전세 제도의 특성상 그 위험은 세입자에게 전가되기 매우 쉬운 상태였고, 구조적 문제는 의도적 개인들이 범죄를 양산하는 데에 강력한 영감을 주고야 만다. 그러므로 전세 사기의 가해자는 단순히 법률적 사기 범죄자에 그칠 수 없다. 오히려 전세 사기가 국가적인 문제로 비화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분배 구조의 수혜자들이 그 구조를 지탱했기 때문이다.


 이 악의 속에서 신뢰는 최종적으로 파산한다. 자유 시장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고 떠들지만, 한 단계만 내려가면 분배에서 밀려나는 순간 언제든지 배신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 폭로는 수많은 수혜자들 앞에 의미도 없다. 혹자들은 전세 사기를 아니라 부동산 연쇄 파산이라고 불러야 한다고도 말한다. 전세 사기는 의도를 가진 몇 명이 만든 부분적 범죄라는 인상을 주니,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 글은 이 ‘구조’가 무엇인지 다시 논하기 위해 쓰였다.


 이 구조는, 불평등의 피해자들에게 다시 위험을 전가하는 구조이다. 현재로서 운동을 다시 기획해야 한다면, 전선은 무책임한 위험 전가에 맞서 ‘신뢰’를 요구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시장 제도 바깥에 이를 직조하는 주거가 존재하는 이상, 주거권을 침해받는 모든 이들은 이 요구의 당사자일 수밖에 없다. 이 요구는 거래 하나하나에서 관계를 평등히 재정립할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그 너머에 있는 구조를 의심하고 감히 공론의 전선에서 함께 갈 이를 찾아 연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요구는 구조화된 불평등 속에서의 직접적 일탈인 동시에, 사회적 체계들 밑에 두루 숨어 있는 근본적 영역을 건드리는 요구이다.



편집위원 윤석|soci.yunseok.jeong@gmail.com


[1] 국토교통부·경찰청·대검찰청 (2023.07.26). 범정부 전세사기 특별단속 기간 연말까지 연장.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 국토교통부 (2023.07.26).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 피해자 1,316명 결정.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

[3]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 (2023.05.25). [성명] 전세사기 특별법 통과에 부쳐 - 왜 우리는 최악과 차악을 선택지로 떠안는가.

[4] United States. Financial Crisis Inquiry Commission (2011). The financial crisis inquiry report : final report of the National Commission on the Causes of the Financial and Economic Crisis in the United States Authorized ed., 1st ed. Public Affairs.

[5] 김원중 (2023.04.28). 文 정부가 뿌린 전세사기 씨앗 4가지. 조선일보.

[6] 통계청 (각 년). 주택소유통계.

[7] 국토교통부 (2017.12.13). 임대주택등록 활성화방안.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

[8] 이성화 (2017.12.13). 세금·건보료 감면 확대 ‘당근’…임대사업자 등록 ‘유인’. 경향신문.

[9] 국토교통부 (각 년), 「국토교통통계연보」.

[10] Ibid. (2017).

[11]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제405회 02차 전체 회의. 제21대 국회 국회교통위원회 전체회의 회의록, p.16-p.25.



참고 문헌


보고서 등

국토교통부·경찰청·대검찰청 (2023.07.26). 범정부 전세사기 특별단속 기간 연말까지 연장.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Retrieved from https://www.korea.kr/briefing/pressReleaseView.do?newsId=156582072

국토교통부 (2017.12.13). 임대주택등록 활성화방안.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 Retrieved from https://www.korea.kr/briefing/policyBriefingView.do?newsId=156243135

국토교통부 (2023.07.26).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 피해자 1,316명 결정.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 Retrieved from https://www.korea.kr/briefing/pressReleaseView.do?newsId=156582531

국토교통부 (각 년), 국토교통통계연보.

통계청 (각 년). 주택소유통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제405회 02차 전체 회의. 제21대 국회 국회교통위원회 전체회의 회의록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 (2023.05.25). [성명] 전세사기 특별법 통과에 부쳐 - 왜 우리는 최악과 차악을 선택지로 떠안는가. Retrieved from https://docs.google.com/document/d/1vNz3wdGT87FdRs_ZgBXtP8H9qm_Vu40ncbAMJN-Rn_M/edit

United States. Financial Crisis Inquiry Commission (2011). The financial crisis inquiry report : final report of the National Commission on the Causes of the Financial and Economic Crisis in the United States. Authorized ed., 1st ed. Public Affairs.


신문 기사

김원중 (2023.04.28). 文 정부가 뿌린 전세사기 씨앗 4가지. 조선일보, Retrieved from http://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26027

이성화 (2017.12.13). 세금·건보료 감면 확대 ‘당근’…임대사업자 등록 ‘유인’. 경향신문. Retrieved from https://m.khan.co.kr/economy/real_estate/article/201712132207005?utm_source=urlCopy&utm_medium=social&utm_campaign=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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