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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집결지 재개발: 여기에도 사람이 있다

[특집 '빈곤'] 편집위원 숙영


여성인권 지킴이


지난 5월,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윤석열 정부 여성가족부 1년 기자회견’이 열렸다. 전국 609개의 시민단체가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위한 범시민사회 전국행동’을 꾸렸고,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에 맞춰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했다. 참여자들은 보라색 피켓을 들고 윤석열 정부를 규탄했다. 같은 날인 5월 16일, 경기도 파주시의 작은 동네에서도 기자회견이 열렸다. 파주시 파주읍 연풍리 대추벌, 흔히 ‘용주골’이라고 불리는 이곳을 파주시가 재개발을 위해 강제로 폐쇄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림 1]. 《파주시 대추벌(속칭 용주골) 재개발, 여성 종사자 위협하는 탄압을 멈춰라!》 기자회견의 모습. 그림 설명 끝. ⓒ이용남


파주시는 용주골의 사람들을 내쫓고 그곳을 아무것도 없는 빈 땅으로 만든 다음 고작 아파트를 세울 것이다. 어떤 정의롭거나 결연한 대의 같은 게 끼어들 틈 같은 건 전혀 없다. 단지 고층 아파트를 세워 돈을 벌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치우고 밀고 세우는 게 끝인 이 과정에 엄청난 대의 같은 것을 부여하려는 어색한 말들이 나돈다. 용주골이 성매매 집결지라는 이유 때문이다. 용주골을 폐쇄하든, 다른 어딘가를 강제 철거하든 아파트로 채워진 모습으로 귀결되는 건 매한가지지만 전자에는 유독 온갖 대의들이 달라붙는다.

[그림 2, 3, 4]. 왼쪽 위부터 ‘청량리 588’이 폐쇄된 이후 세워진 ‘청량리역 롯데캐슬SKY-L65’ 아파트, 용산역 집결지가 폐쇄된 이후 세워진 ‘래미안 용산 더 센트럴’ 아파트와 ‘용산 푸르지오 써밋’ 아파트. 모두 초고층 빌딩들이다. ⓒ롯데건설, ⓒ현대건설, ⓒ대우건설


강제폐쇄를 결정한 이후 파주시는 ‘성매매 근절’을 이야기하며 용주골 성노동자들에 대한 단속의 수위를 높였다. 공권력을 투입하여 CCTV와 감시초소를 설치하고자 했고, 매주 화요일에는 ‘여성이 행복한 길’, 줄여서 ‘여행길’ 행사를 진행했다. 여행길 행사는 용주골 골목 곳곳을 무리 지어 행진하며 이곳에서 생활하는 성노동자들을 구경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들은 ‘여성인권 지킴이’라는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고 한 손에는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보라색의 풍선을 들고서 걸었다. 이는 무언가를 분명하게 침해하는 움직임이었다. 무언가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인권 침해와 노동권 침해라는 표현으로는 이것을 모두 담아낼 수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창녀’는 언제든 쫓겨나도 되는 존재로 여겨지고 이들을 쫓아내는 일에는 언제나 대의명분이 들러붙는 상황에 인권 침해나 노동권 침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명백하고 뚜렷해 보일 수는 있지만 충분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림 5] 용주골에 붙어있던 ‘청소년 출입금지’ 현수막. 그림 설명 끝. ⓒ숙영


기자회견이 끝나고 여행길 행사에 항의하는 1인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연대자들과 함께 업소들이 모여있는 골목으로 향했다. ‘청소년 출입금지’ 현수막을 지나고 들어선 한낮의 용주골은 고요하고 한적했다. 그러나 여기저기 걸려있는 현수막과 거기에 적힌 빼곡한 글자들은 용주골에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시끄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연대자들은 피켓을 들고서, 그리고 용주골의 성노동자들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여행길 행렬과 마주할 순간을 기다렸다. 그동안 여행길 참여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계속 상상했다. 우리가 ‘성노동자도 여성이다’, ‘성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라’와 같은 문구를 소리 높여 외치면 이들도 우리만큼 큰 목소리로 무언가 말할까? 째려보고 밀치고 욕을 하려나? 내 상상 속에서 여행길 참여자들은 잔뜩 화가 나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막상 마주한 이들은 조용했다. 길 끝자락에 모여있던 성노동자와 연대자들을 맞닥뜨린 여행길 참여자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왔던 길로 다시 발걸음을 돌릴 뿐이었다. 

이런 광경은 슬프지만 익숙한 것이다. 지난해 학교 본관 앞에서 청소·주차·경비 노동자들이 점심시간마다 모여 열었던 집회의 모습이 떠올랐다. 구호를 외치다 잠깐 멈출 때면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은 것처럼 고요해졌고 나는 무언가 어색하고 머쓱한 느낌에 주변을 두리번거려야 했다. 고요함은 마치 아무도 이 일에 관련도 책임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어딘가의 집회나 문화제에 갈 때마다 이런 종류의 느낌이 불쑥 나타난다. 기시감이 느껴질 만큼 얼마간 익숙하지만 절대로 익숙해질 수 없는 감각이다. 소리치는 사람들과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것들 사이에 만들어지는 괴리는 언제나 멋쩍고 고통스럽다. 

[그림 6, 7] 여행길 행사를 규탄하는 1인 시위에 참여한 연대자가 여행길 행렬을 따라잡으며 항의하고 있다. 그림 설명 끝. ⓒ이용남


용주골에서 느꼈던 것은 더 강렬했다. 연대자들은 피켓을 들고 뛰어가 여행길 행렬을 따라잡으며 이들에게 소리치며 항의했지만, 여행길 참여자들은 연대자들과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이들은 침묵했지만,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같이 소리를 지르고 아수라장을 만들고 대치하는 대신, 이들은 자신들이 걸치고 온 페미니즘의 상징이나 문구로만 말하기를 택했다. 성노동자들이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을 말하는 순간, ‘여성이 행복한 길’, ‘여성인권 지킴이’ 같은 말이나 보라색 풍선 같은 것들은 스스로가 사실 얼마나 공허하고 빈곤한지 쉽게 들킬 수밖에 없다. 여행길 참여자들은 그 순간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이로 인해 말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상상의 존재로만 남게 된 것은 용주골의 성노동자들뿐만이 아니었다. 성노동자들이 용주골에서의 구체적인 삶, 노동, 관계에 대해 말할 수 없었던 것처럼,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길 참여자들이 이것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 역시 용주골로 자신을 이끈 삶의 맥락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그날 용주골에 있었던 사람들은 아마도 서로를 영영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분명 여행길 참여자들에게도 비극이다. 그들에게는 이것이 비극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림 8] 파주시장이 참여한 4월 18일 여행길 행사의 모습이다. 그림 설명 끝. ⓒ이용남


파주시장은 ‘정상적’인 시민들을 적극적으로 동원하고 성노동자들을 바깥으로 치워냈다. 그리고 결연함에 찬 어조로 “미래 세대에게 부끄러운 역사를 물려주지 않겠다”라고 말했다.[1]

 미군의 기지촌으로 시작하여 70여 년간 파주시 지역경제의 일부분을 담당해 온 용주골의 역사에서 갑자기 발을 빼면서 아무런 책임도, 관련도 없는 것처럼 구는 것이다. 용역을 동원해 집결지를 때려 부수고 성노동자의 역사를 없는 것으로 만들어야만 도래할 수 있는 미래라면 그것은 하나도 새롭지 않다. 미래를 거창한 유토피아로 상상하고 호명하는 방식은 현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퇴로를 마련해 내고, 누군가의 삶을 미래라는 대의를 위해 희생해도 되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나 파주시장만이 특별하게 악랄하거나 나쁜 것은 아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장들이 그랬듯 자신의 역할을 평범하게 수행했을 뿐이다. 이미 많은 지자체장들이 노란 조끼와 어깨띠 같은 것을 걸친 주민들을 동원해 그 지역의 집결지를 돌아다녔다. “유해업소 근절, 주민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따위의 현수막 앞에서 진지하게 주먹을 내밀며 단체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 후에는 집결지를 치워버리고 그 자리에 매끈하고 거대한 고층건물을 세웠다. 그렇다고 이 지자체장들만 특별하게 악랄하거나 나쁜 것도 아니다. 파주시장이나 여타 지자체장들은 모두 지극히 평범하다. 많은 사람이 집결지를 보고 ‘평범하게’ 불쾌함을 느낀다. 밀집되고 낙후되어 위험한 것인지 혹은 위험으로 여겨져서 밀집되고 낙후된 것인지 뒤섞인 채로 집결지는 일상적으로 온갖 부도덕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오염’된 ‘창녀’들과 이들의 ‘오염’된 공간을 부수는 일은 아주 쉽고 가뿐하게 당위적이고 도덕적인 명분을 획득한다. 이러한 공간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고 번듯한 고층주거시설을 세우면 도시환경 개선이라는 가시적인 성과가 따라올 것은 자명하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개발이익까지 담보된 채다. 따라서 집결지 폐쇄는 언제나 남는 장사가 된다. ‘창녀’ 혐오, 그리고 단순히 창녀 혐오라는 말로는 모두 주워 담을 수 없는 복잡한 토양 위에서 집결지 폐쇄는 남는 장사가 되는 것이다. 


성매매 집결지와 재개발


성매매 집결지 폐쇄, 그 복잡한 토양의 켜켜이 쌓인 지층을 들여다보자. 이는 집결지 폐쇄와 재개발의 역사가 창녀 낙인, 그리고 자본주의적 공간 생산의 논리와 얽힌 채로 도시개발의 역사 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다. 두꺼운 지층의 가장 아랫부분은 박정희 정권 시기 만들어졌다. 박정희 정권은 1961년 5·16 쿠데타 직후 ‘사회질서를 바로잡겠다’고 선언했다. ‘사회질서의 수립’은 정상성에 부합하지 않는 취약한 개개인– 도시빈민, 장애인 등을 ‘사회악’으로 호명하여, 이들을 바깥으로 쫓아내거나 ‘보호’라는 명목으로 강제로 시설에 수용하여 교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사회악’들은 쫓겨나면서 죽고 감금된 채 죽었다. ‘창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1961년 6월부터 서울과 경기를 중심으로 ‘요보호여자시설’이라는 이름의 ‘창녀’ 감금시설이 설치되었고, 11월에는 시설의 법적 근거가 되는 ‘윤락행위 등 방지법(이하 윤방법)’이 뒤늦게 제정되었다.[2] 윤방법의 제정을 통해 박정희 정부는 성매매를 공식적으로 불법화했다. 그러나 윤방법 제정이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인 1962년 6월, 정부는 전국의 성매매 집결지와 기지촌 중 104개 지역을 ‘특정지역’으로 선정해 운영하게 했다. 특정지역은 성매매가 묵인되는 공간이었다.[3]


종로3가(이하 종삼)의 성매매 집결지는 공권력이 투입되어 강제적으로 폐쇄된 최초의 집결지다. 당시 서울시의 조사에 의하면 종삼 일대에는 총 1,788명의 성노동자가 있었다. 상당히 큰 규모였으나 특정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아니었다. 1968년 10월 5일부터 일주일 동안, 종로구청 직원 230명과 200명의 경찰이 종삼 일대를 샅샅이 뒤져 성노동자들을 잡아들였다. 이는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김현옥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그 결과 종삼 집결지는 완전히 폐쇄되었다. 그곳에서 일하고 생활하던 여성들은 요보호여자시설로 끌려가거나 다른 지역의 집결지로 이주하여 생계를 이어 나갔고, 미아리와 천호동 일대에는 새로운 집결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편 김현옥은 숭남동과 도동 일대, 양동 일대의 집결지에 대해서도 동일한 방식의 ‘소탕 작전’을 전개해 해당 집결지를 폐쇄하거나 크게 축소시켰다.[4]


김현옥이 집결지를 폭력적으로 폐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창녀’가 ‘사회악’이기 때문이었다. 국가는 기지촌과 성매매 집결지를 통해 수많은 외화를 벌어들였고, 불안정한 전후 상황에서 한미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성노동자 여성의 몸을 적극적인 수단으로 삼았다. 그런데도 ‘창녀’는 사회악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위에서 언급된 집결지들은 무엇보다 무허가 판잣집들이었기 때문에 폐쇄될 수 있었다.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여성들, 전쟁 ‘미망인’, 그리고 또 다른 각자만의 이유로 필요한 자원을 얻을 수 없었던 여성들은 판잣집을 세우고 덧붙이면서 만들어진 집결지에 모였다. 그리고 이들의 일터이자 삶터에는 ‘무허가 불량주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집결지를 폐쇄할 수 있었던 법적 근거는 ‘창녀’를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되었던 윤방법이 아니라, ‘불량 지구 개량’을 명시했던 ‘도시계획법’에 있었다. 


한국 사회의 도시개발은 사회질서 확립이라는 명목으로 빈민, ‘창녀’와 같은 무허가 불량주택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이지 않게 만들어 버리는 데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삶을 꾸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후 ‘개발 정권 – 건설 재벌 – 토호세력’의 개발동맹체제[5]가 구축되면서는 도시개발의 양상이 조금 달라진다.[6] 집권의 정당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은 주거난에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7] 중동에서 대거 철수한 건설사들이 당장 새로운 일거리를 필요로 하던 시점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눈에 들어온 곳은 도심에서 쫓겨난 이들이 정착하면서 조성된 도시 외곽의 집단 주거지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새로운 정착촌들이 1980년대에 들어서며 지하철 개통 등의 변화를 겪으면서 좋은 입지를 가진 지역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8] 쫓겨났던 무허가 가옥주들은 이번에는 세입자의 신분으로 또다시 쫓겨나야 했다.[9]

[그림 9] 1987년, 서울 상계동에서 ‘용역깡패’들이 천막집을 강제철거하는 모습. 상계동은 60년대 중반에 서울 도심에서 쫓겨난 무허가 가옥주들이 터를 이주하여 정착했던 지역이다. 세입자의 신분으로 다시 쫓겨나게 된 도시 빈민들은 명동성당에서 농성하며 6월 항쟁에 참여했다. 그림 설명 끝. ⓒ민주화기념사업회


이들이 쫓겨난 자리에는 값비싼 중·대형 아파트들이 세워졌다. 정부가 건폐율, 용적률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판자촌에 있던 주택 수의 두 배 정도의 고층 아파트가 세워질 수 있었다. 이는 엄청난 개발이익을 의미했다.[10] 이를 통해 정부, 그리고 개발동맹체제는 중요한 지지자들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개발이익의 직접적인 수혜자[11] 그 이상을 아우르는 넓은 지지기반은 다르게 말하자면 ‘부동산 신화’였고, ‘재개발 열풍’이었다. 신화니, 열풍이니 하는 것들은 단순히 탐욕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언제든지 닥칠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할 수 있었던 방법이 사적인 수단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12] IMF 경제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부동산 금융화가 전개되고 경제적 불안이 커지면서, 자가 소유권의 확보와 행사는 더욱더 중요한 생존전략이 되었다.[13]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집은 주거 공간이나 생활 공간을 넘어, 잠재적인 경제적 이익을 의미하고 동시에 거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자 안전망이다. 모두가 자신의 생존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집값이 오르면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갈 곳이 없어진다거나 재개발은 원주민을 내쫓는 일이라거나 하는 것들은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가 되어갔다.


성매매 집결지 역시 재개발 열풍의 영향권 속에 있었다. 여성운동의 ‘성과’라고 불리는 성매매특별법(성특법)이 통과된 2004년 이후에 집결지 폐쇄와 재개발에 속도가 붙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또한 분명한 점은 성특법 제정과 시행 이전부터 집결지 폐쇄와 재개발이 도시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계획되어 있었다는 것이다.[14] 이명박이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이후, 뉴타운이라는 이름의 재개발 사업이 많은 사람의 욕망을 엮어내면서 열풍을 만들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집결지 대부분은 유동 인구가 많은 교통의 요지, 즉 ‘금싸라기 땅’에 자리 잡고 있을 뿐 아니라 오랫동안 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지대가 낮기 때문에 개발이익이 큰 지역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배경에서 용산, 청량리, 영등포, 미아리(하월곡동) 등의 지역부터 유망한 재개발 사업 대상지로 떠오른 것은 당연했다. 무엇보다 현재 강제 폐쇄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용주골의 경우 성특법이 막 시행되기 시작했을 시기에는 폐쇄 대상으로 거론되지 않았다. 이는 당시만 해도 파주에서도 가장 낙후한 지역이기에 재개발 여건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15]


또한 눈여겨봐야 할 점은, 성특법이 집결지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님에도 그 시행 과정에서 집결지 폐쇄 사업만 유독 사회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이다.[16] 이는 뉴타운 사업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집결지 폐쇄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와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지점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집결지를 부순 이후의 모습을 제멋대로 상상하고 욕망했다. 어떤 사람들은 성매매가 근절되고 ‘여성인권’이 증진된 사회를 상상하면서 그 과정에서 ‘여성’으로서 자신의 목소리가 사회적 움직임에 반영되는 정치적 효능감 같은 것을 기대했다. 그리고 다른 대부분의 사람은 깨끗하고 번듯한 도시 경관을 상상했는데, 이는 단순히 ‘건전’한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의지 따위만으로 촉발된 것이 아니었다. 집결지 주변에 위치한 자신의 집이나 땅의 값이 오를 기회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이 자신도 개발이익의 수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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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집값이나 땅값이 오른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것은 다주택 소유자뿐이다. 대부분의 1가구 1주택 보유자들은 집을 당장 팔 수 없어 시세차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17] 더군다나 수도권에 거주하는 가구의 절반 정도만 자가를 소유하고 있다.[18] 이는 수도권 가구의 절반이 세입자라는 의미다. 그런데 재개발은 임대료와 집값을 높여 무주택자와 세입자의 삶을 더 힘들게 만든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결국 어떤 질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 


페미니스트 문제


어떤 말을 갖다 붙이든 성매매 집결지 폐쇄는 결국 기존의 주민을 쫓아내고 해당 지역을 돈 많은 사람들의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재개발에 불과하다. 그러나 동시에, 집결지 재개발은 다른 재개발과 같지 않다. 집결지 주민인 성노동자는 세입자에게 주어지는 보상–그것이 턱없이 적은 것이라고 해도–조차 받을 수 없다. 성노동자들은 주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노동자들은 단속과 처벌을 우려해서, 또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집결지 지역으로 전입신고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전입신고의 여부가 아니다. 이는 인천 옐로우하우스의 명도소송 사례[19]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집결지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들이 하는 일이 ‘불법’이라서, 숨겨야 하는 부끄러운 일이지 노동이 아니라서 주민으로서 가지는 최소한의 권리도 보장받을 수 없다. 대신 성매매 피해자로서 ‘자활지원’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이를 위해서는 집결지에서의 경험을 오로지 피해경험으로만 재구성하고 성노동을 하지 않기로 약속해야만, 그래서 ‘자립’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일터이자 삶터에서 쫓겨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쫓겨나는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히 쫓겨나야만 하는 존재로 호명되어 살던 곳을 떠나겠다고 약속하도록 요구받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공간 생산의 논리에 따라 세입자를 쫓아내는 것일 뿐인데, 세입자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해 주지도 않을뿐더러 이것이 정치적으로 옳은 행위가 된다는 것이, 그러니까 그 세입자들이 ‘창녀’라는 점에서 이 모든 차이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부정의하다고 느낀다. 섹슈얼리티 위계의 하층부에 위치한 타자로서의 성노동자를 쫓아내기 위해 그 위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그것을 공고히 하는 상황, 법과 제도를 통해 국가가 자신의 권위를 더욱 부풀리면서 책임은 회피하는 상황에 대해 마땅히 분노해야 한다고 느낀다. 이러한 감각은 내가 페미니즘으로부터 가져온 자원이다.


용주골 강제폐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에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20] 단 한 곳이 연대하러 왔을 때, 같은 날 서울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론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는 609곳의 연대단체가 참여했다. 두 기자회견이 같은 날에 열렸다는 이유만으로 각각의 참여 단체 수를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어쩌면 지나치게 단편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인상을 남기기에는 충분했다. 많은 페미니스트에게 제도화나 주류화가 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로 여겨지고 있을 뿐 아니라, 성노동자의 문제에 연대하지 않기를 이들이 적극적으로 선택했다는 인상이다. 이러한 인상 뒤에는 성특법 시행 이후 지나온 20여 년간의 역사가 있다. 그동안 많은 페미니스트가 성노동자들을 음지로 쫓아내는 과정에 공모했고, 성노동자가 자신의 삶 속에서 경험하는 문제는 페미니즘의 문제가 아니라고 선언했다. 

[그림 10] 성노동자들이 용주골에 부착한 현수막.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SHARE 셰어


그러나 ‘우리’는 왜 어떤 여성들은 삶에 필요한 자원을 얻는 데에 번번이 실패하게 되는지, 어떤 여성들이 선택한 삶의 양식과 존재 방식은 번번이 부정당해야만 하는지 질문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성노동자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다. 우리는 페미니즘 운동에서 도대체 서로가 누구인지 알 겨를도 없이 ‘우리’로 묶여서 불렸고, 이는 많은 경우에 동일성의 환상을 만들어냈다. 그 환상이 불러일으킨 여러 문제가 산재해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를 주어로서 지속시키고자 하는 이유는 성노동자의 문제를 페미니즘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성노동자들은 집결지에서도, 페미니즘에서도 쫓겨나지 않아야 한다.


무릎 꿇기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다른 기억 하나는 용주골의 성노동자들이 무릎을 꿇었던 장면이다. 다른 철거민들은 큰 소리를 내며 투쟁가를 부르는데, 왜 이들은 얼굴을 가리고 무릎을 꿇어야만 했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무릎을 꿇는 행위는 자신의 존엄을 깎는 행위로 여겨진다. 용주골의 성노동자들은 무릎을 꿇어서 존엄을 깎아내리는 순간에서야 자신의 존엄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들은 기꺼이 무릎을 꿇음으로써 무릎 꿇는 행위가 존엄을 깎는 일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을 비웃을 수 있었다. 무릎 꿇기는 일종의 비유일지도 모른다. 성노동이 자신의 존엄을 깎는 행위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도덕이나 노동에 대한 인식은 그저 환상일 뿐이라고.



편집위원 숙영 | sonsy213@gmail.com


[1]  "성매매 집결지 폐쇄는 시대적 소명이다" - 시민의 힘으로, 시의회와의 소통으로 우리 세대에서 끝낼 것 (2023.04.11). 대한뉴스. 

[2] 박정미 (2021). 47-48.

[3] 오유석 (2009). 107-109.

[4] 같은 글. 109-111.

[5] 개발동맹체제는 이것을 만들어내겠다는 일관된 목표에 따라 구축된 것이라기보다, 연쇄적으로 대두된 주거문제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에 가깝다. 

박정희 정부는 유신 개헌 이후 ‘사회복지 균점과 생활 수준의 향상’을 국가적 과제로 제시하면서 주택정책을 비롯한 사회정책을 마련했다. 집권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요소를 통제하면서 동시에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중화학 공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 주도형 산업의 육성에 우선적으로 국가재정이 투입되면서 사회정책에 대한 투자는 최소한으로 이뤄졌다. 따라서 당시 주택정책은 민간자본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하지만 민간자본과 기술력에 의존하는 공급 질서를 구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에 정부는 특정한 기준을 통과한 소수 건설업자에게 압도적 지위를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시장의 신뢰도를 높이고 불확실성을 줄이고자 했다. 몇몇 대형 건설업자에게 제도적 특권과 주택자금, 세제 면에서 혜택이 집중되었고, 그 결과 건설량 기준 상위 5개 사업자의 매출은 1978년에서 1984년까지 6년 동안 5배나 성장했다. 이들은 비경쟁적 시장에서 시장 이윤 대부분을 독점했다(김명수 (2020), 2장-3장). 

[6] 

이 시기부터는 민간 건설사와 주택, 토지 소유주들이 꾸린 재개발조합이 재개발의 전 과정을 주도하게 되면서(합동재개발 방식), 정부와 주민 간의 직접적인 대립은 주택 및 토지 소유주와 세입자 간의 대립으로 치환되었다(이원호 (2012), 43-45).

[7] 김명수 (2020). 2장. 

[8] 김수현 (2022). 213.

[9] 합동재개발 방식으로 전환되어 철거용역업체가 철거 과정에 투입되기 시작하면서 극심한 폭력이 자행되었다. 철거민 투쟁은 망루 투쟁 등 더욱 위험한 방식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이원호 (2012), 43-45).

[10] 김수현 (2022). 215-217.

[11] 재개발 사업을 주도한 건설사와 토지·가옥주, 그리고 입주권을 구매한 입주자들과 일반 분양자들이 개발이익의 직접적인 수혜자다.

[12] 유신 개헌 이후에 도입된 사회보장제도가 노동시장에서의 위계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구성되면서, 사회적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에 반드시 참여해야만 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는 노동시장에 가해지는 충격이 어떠한 완충장치 없이 곧바로 대다수 가구의 생계에 대한 타격으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13] 김명수 (2020). 4장.

[14] 영등포 지역은 1999년에 기본계획이 수립되고 2002년에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용산 지역은 2001년에 사업지구로 선정되었고, 성북구 하월곡동과 강동구 천호동, 동대문구 전농동 지역은 2003년에 사업지구로 선정되었다(김경미 (2008), 83-84).

[15] 집창촌 없애려면 ‘재개발’ 필수 (2007.04.13.). 여성신문.

[16] 김경미 (2008). 84-85.

[17] 김용창 (2003). 58.

[18]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수도권의 자가보유율은 51.3%에 불과하다. 2006년의 수도권 자가보유율이 50.2%인 것을 보았을 때, 15년 정도의 시간이 무색하게 큰 차이가 나지 않을 뿐더러 여전히 수도권 주민의 절반 정도만 자가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19] 2018년부터 재개발이 본격화된 인천 옐로우하우스의 성노동자들은 자신들을 상대로 지역주택조합이 제기한 명도소송에 대항하기 위해 법원에 월세, 공과금, 생활용품비를 지불해온 8년 간의 기록을 제출했다. 명도소송은 성노동자들이 가지는 주민으로서의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었고, 이에 대항하는 8년 간의 기록은 성노동자들이 세입자, 즉 실질적인 주민으로 그 공간에서 살아왔으므로 권리 역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었다. 법원은 성노동자들이 제출한 증거를 기반으로 전입신고와는 상관없이 임대차계약의 존재를 인정했다. 그러나 동시에 임대차계약의 목적이 성매매였으므로 민법상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세입자는 맞으나 세입자로서의 권리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황수연 (2021). 99-100.

[20] 용주골 강제폐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에 연대발언으로 참여한다는 내용의 글이 셰어 홈페이지에 게시되자, 많은 이들이 셰어가 성착취를 옹호한다고 비난했다. 성노동자들의 경험이 단순히 착취나 폭력으로 치환될 수 없다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집결지 강제폐쇄에 반대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공간 생산의 논리에 따라 성노동자들을 쫓아내는 일에 반대하는 것이지 성착취를 옹호하기 위함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집결지 강제폐쇄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이용되는 성노동자에 대한 낙인이 성적권리와 재생산의 문제와 깊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셰어가 용주골 강제폐쇄 문제에 연대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참고문헌


단행본

게일 루빈 (2020). 성을 사유하기 – 급진적 섹슈얼리티 정치 이론을 위한 노트. 일탈. 신혜수 외 (번역). 현실문화연구.

김명수 (2020). 내 집에 갇힌 사회 – 생존과 투기 사이에서. 창비.

김수현 (2022). 가난이 사는 집. 오월의봄.

멜리사 지라 그랜트 (2017). Sex Work – 성노동의 정치경제학. 박이은실 (번역). 여문책.

몰리 스미스·주노 맥 (2022). 반란의 매춘부. 이명훈 (번역). 오월의봄.


논문 및 저널

김경미 (2008). 집창촌 폐쇄와 재개발의 문제점. 여/성이론, 18, 79-98.

김용창 (2003). 공간의 생산과 개발이익, 그리고 사회적 기속성. 문화과학, 39, 41-65.

오유석 (2009). 동대문 밖 유곽 – ‘청량리 588’ 공간 구성의 역사와 변화. 서울학연구, 36, 101-135.

이원호 (2012). 철거민운동의 역사와 주요쟁점 – 개발에 맞선 운동의 확장으로, 또 다른 용산참사를 막아내자 -. 도시와 빈곤, 97(3), 39-57.

황수연 (2021). 성매매 집결지의 복합적 이해와 성매매 종사자들의 투쟁: 인천시 숭의동 ‘옐로우하우스’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도시지리학회지, 24(1), 91-102.


기사 및 온라인 자료

강희철 (2007.06.07.). ‘철거 날벼락‘ 상계동, 20년전과 지금. 한겨레. Retrieved from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14381.html

권지희 (2007.04.13.). 집창촌 없애려면 ‘재개발’ 필수. 여성신문. Retrieved from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190

김남규 (2023.04.11.). "성매매 집결지 폐쇄는 시대적 소명이다" - 시민의 힘으로, 시의회와의 소통으로 우리 세대에서 끝낼 것. 대한뉴스. Retrieved from http://www.dhn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5216

이용남 (2023.05.16.). 성매매 집결지 종사자 ‘생존권’ 투쟁에서 ‘여성인권’ 운동으로 확대. 파주바른신문. Retrieved from http://www.pajuplus.co.kr/news/article.html?no=11049 

국토교통부 (2021). (일반가구)지역별 소득계층별 점유형태. 주거실태조사. 접속일 2023.08.01.. Retrieved from https://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16&tblId=DT_MLTM_6908&conn_path=I2  

성적 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2023.05.11.). 파주시 대추벌(속칭 용주골) 재개발, 여성 종사자 위협하는 탄압을 멈춰라! [홈페이지 활동 소식 안내글]. 접속일 2023.05.11.. Retrieved from https://srhr.kr/announcements/?idx=15124325&b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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