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편집장 유진
솔직히 하나도 이해가지 않습니다. 가끔은 이해하고 싶지 않기도 합니다. 나로서는 당위의 영역에서 끝나버리는 무언가를, 도저히 들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누군가에게 내 힘과 열을 다하여 설득하기도 싫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이해할 수 있고, 또 누구든 이해시킬 수 있다는 자만으로 행동했습니다. 나이가 조금 들고서 자의식을 깎아내린 후에는 이해를 포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선을 긋는 건 아주 편리해서, 더 이상 이해를 위해 머리를 감싸맬 필요도, 설득을 위해 목에 핏대를 세울 일도 없었습니다.
문득 이런 내가 글을 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가 되는 것은 고사하고, 나 자신부터 견고한 껍데기를 깰 생각조차 않는 채로는 아무리 수많은 글을 써봤자 표면만을 겉도는 활자에 그치리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여전히 이해는 어렵습니다. 나와 아주 먼 타인—예컨대 거리로 내몰리는 성노동자들, 불법체류자가 되길 택하는 이주노동자들, ‘적당히’ 수긍하지 못하는 그 누군가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 힘에 부칠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파헤쳐도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까지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나의 여력이 허락하지 않을 때가, 끝까지 곱씹어도 도저히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해까지 다다르지 못하더라도, 지금 이 자리에서 최소한의 동질감만으로도 납득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음을 압니다. 광장의 시민들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최소한의 동질감과 지향으로 서로의 정체성을 납득하는 것처럼, 납득 위에서는 또 다른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믿고 싶습니다.
그렇다 해도 구태여 아는 척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나의 모순을 숨길 생각도 없습니다. 그저 그럼에도 가능한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럼에도…로 얼버무려지는 수많은 것들과, 납득의 가능성에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편집장 유진 | gamjabat_@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