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봄에서 겨울을] 편집장 상민
지난해 12월 말부터 20대 남성의 윤석열 지지율이 당대표 이준석과의 갈등, 신지예[1]·이수정[2] 영입 등을 이유로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 틈을 타 이재명 캠프는 기존에 국민의힘을 지지하던 그들의 표를 가져오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인 것이 이재명이 유튜브 채널 〈씨리얼〉과 〈닷페이스〉에 출연 예정이라는 소식에 대해 남초 커뮤니티에서 ‘페미 채널’이라며 출연 반대 여론이 나오자 황급히 일정을 취소해버린 사건(12월 28일)이다. 차별과 혐오의 온상인 남초 커뮤니티에 후보가 직접 ‘등판’해 인증 글까지 썼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지만,[3]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채널에 출연하는 일은 ‘논란’이 된 것이다. 윤석열 측은 이준석과의 화해 이후 20대 남성 표심을 되잡기 위해 본인의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 7글자 공약을 올렸고(1월 6일), 신남성연대의 무조건적 지지도 얻어내며 여성혐오 공약 내기에 열을 올렸다.[4] 이재명 캠프는 여혐 경쟁에서는 더이상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입장을 바꿔 〈닷페이스〉에도 출연(1월 7일)하고, N번방 잠입 취재의 주역인 ‘추적단 불꽃’의 박지현[5]을 영입(1월 27일)하는 등 노선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이후 선거를 일주일 남짓 앞두고 이재명은 토론회에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윤석열의 발언을 공격하고(3월 2일), 여초 커뮤니티에도 인사 글을 올리며(3월 4일)[6] 여성 표 결집에 사활을 거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성공했다. 마지막 공표된 여론조사 때까지만 해도 40%를 넘지 못했던 2030 여성의 이재명 지지율이 지상파 출구조사 기준 20대 이하 여성 58%, 30대 여성 49.7%가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결집이 단순히 이준석-윤석열을 막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신지예를 영입했다 ‘손절’해버렸던 윤석열과는 달리 이재명은 마지막 유세의 마지막 마이크를 박지현에게 넘길 정도로 그에게 힘을 크게 실어줬고, 상대편 후보에 비해서 훨씬 나은 자신의 여성 정책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후보가 그만큼 변화된 태도를 보였기에 여성 표심이 움직였고, 상당수 여론조사에서 지속해서 3% 이상의 격차로 패배한다는 결과가 나왔던[7] 선거를 0.73% 차이로 따라잡아 역대 대선 중 가장 적은 표차로 패배하며 선방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이 무색하게 선거 다음 날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중진들은 성범죄자 안희정의 부친상에 자신들의 직함을 건 조화를 보내며 2020년 7월 안희정 모친상 때 보였던 행태를 답습했다. [8] 논리는 항상 같다. 친구가 범죄자라 해도 상을 당했으면 위로하는 것이 인간적 도리라는 것이다. 안희정이 연쇄살인마였다해도 그런 말이 통했을지는 차치하더라도, 본인들의 공적 직함을 단 근조화환을 보내고, 직접 조문을 가는 행위가 아직도 일상 회복을 하지 못한 피해자에게 ―심지어 가해자가 다섯 달 뒤면 출소 예정인 상황에서―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지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인가 않는 것인가. 2020년 당시에도 이와 관련해서 큰 논란이 일었었고, 며칠 뒤 박원순의 무책임한 자살까지 이어지며 민주당은 여성 유권자들의 신뢰를 완전히 상실했었다. 그럼에도 이번 대선에서 ‘팔을 자르는 심정으로’ 자신들을 다시 뽑아준 여성들에게 민주당과 문재인은 반나절 만에 배신을 안겼다.
사실 애초에 ‘배신’이라고 할 만큼 대단한 신뢰가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재명은 선거 막판에 2030 여성 표를 모으는 과정에서 안희정을 비롯한 민주당 지자체장 3명의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사과를 처음 했는데, 그러면서도 선대위 안에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2차 가해자들이 있다는 지속적인 지적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가 사과를 했던 토론회에서 정의당 후보 심상정이 이에 대해 묻자 “선대위에 최하 2,000명이 있기 때문에 저희가 찾기는 어려”우니 정의당 측이 알려달라는 황당한 답변을 하며 앞선 사과의 진정성마저 의심스럽게 만들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긴 선거 기간 내내 갈팡질팡하던 것에 비하면 선거 직전 일주일간 후보가 보여줬던 행보는 놀라우리만치 전향적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으로부터 그런 모습을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이며, 만일 이 예측이 어긋난다면 그것은 이준석식 혐오 정치의 유효기간이 다하지 않았음만을 의미할 것이다.[9] 이것이 ‘국민의힘의 안티테제’라는 사실만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이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이며, 5년 뒤 우리는 더 나은―어떤 이유에서도 혐오를 용납하지 않을―선택지를 가져야 할 이유이다. 그리고 그 선택지를 ‘당선 가능한’ 선택지로 만드는 것이 남은 5년간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편집장 상민 / poursoi0911@gmail.com
[1]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내걸고 2018년부터 서울시장 선거에 두 번, 총선에 한 번 출마했었고, 이번 대선을 앞두고는 거대양당 정치 종식을 외치는 ‘대선 전환 추진위원회’를 만들었던 신지예는 지난 12월 20일 윤석열 캠프의 새시대준비위원회 수석부위원장으로 합류하는 ‘파격적’ 선택을 했다. 이후 잔뜩 몸을 낮추고 윤석열의 망언을 선해해주는 등의 행보를 보였으나 그를 ‘페미 대표’쯤으로 인식하고 있던 20대 남성들에게는 소용이 없었으며 논란 끝에 1월 3일 스스로 수석부위원장에서 사퇴, 1월 5일에는 선대위와 함께 새시대준비위원회 자체가 해체되며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2] SBS 〈그것이 알고싶다〉 출연으로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던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이수정은 지난 11월 29일 윤석열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되었으나 평소 여성·아동 대상 범죄에 대해 목소리를 내왔다는 이유로 ‘페미’라고 공격받았다. 이후 여성가족부 폐지, 군 가산점 등에 찬성한다며 신지예와 마찬가지로 윤석열의 편을 들어왔으나 앞서 말한 대로 1월 5일 선대위 자체가 사라지며 여성본부 고문 정도로만 남게 되었다. 이후 윤석열의 배우자 김건희가 “나랑 우리 아저씨는 안희정 편”이라고 한 녹취록이 세간에 공개되자 1월 17일 오후 여성본부 고문으로서 피해자에게 사과했으나 다음 날 오전 신남성연대 대표 배인규가 '국민의힘으로부터 이수정 교수는 여성본부 고문직에서도 해촉되었음을 확답 받았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이내 사실로 밝혀졌다. 다만 본인은 자진 사퇴임을 주장했다.
[3] 이재명은 12월 초 보배드림, 딴지일보 게시판, 클리앙, 디시인사이드 이재명 갤러리, 에펨코리아 등에 인증 게시글을 올린 바 있다.
[4] 윤석열의 여성공약은 여성가족부 폐지, 성범죄·무고죄 처벌 강화 외에는 대부분이 출산 관련 정책이다. 뿐만 아니라 윤석열 캠프는 캠프 관계자들이 신남성연대와 공모해 댓글을 조작한 정황이 포착된다거나 이미 팩트체크가 다 끝난 ‘성인지 예산 30조 원’이라는 가짜뉴스를 후보가 유세 중에 사실인 양 언급하는 등 남초 커뮤니티와 혼연일체가 된 모습을 보여주었다(성인지 예산은 여러 부처나 지자체의 사업 중 성평등에 효과가 있다고 판단된 사업의 예산이지 여성 정책 예산이나 여성가족부의 예산이 아니다).
[5] ‘추적단 불꽃’은 ‘불’과 ‘단’이라는 활동명의 두 사람으로 구성된 아웃리치 활동집단으로 N번방 사건의 최초 보도자이자 최초 신고자로서 익명으로 활동해왔다. 그러던 중 ‘불’ 박지현은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처음으로 공개하며 이재명 선대위의 여성위원회 디지털성범죄근절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합류했다. 이후 ‘이재명 후보로 마음 돌린 2030 여성’ 지지 선언에 7,431명을 모아내는 등 큰 활약을 했다.
[6] 그는 여성시대와 인스티즈에 올린 글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사회구조적 차별과 더불어 불안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제는 젠더 갈등을 부추기며 여성과 남성 모두를 힘들게 하는 정치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고 말하며 데이트폭력, 디지털 성범죄, 여성 1인 가구, 성별 임금 격차 등에 대한 자신의 공약을 소개했다.
물론 이를 마냥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남초냐 여초냐에 관계없이 특정 의견에만 편향되어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의견을 주요한 유권자들의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다만 오직 남초 커뮤니티의 목소리를 듣는 것보다는 낫다는 이야기이다.
[7]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 기간 직전 이뤄진 7개의 여론조사 중 이재명의 승리를 예측한 조사는 단 하나도 없었으며, 그중 5개의 여론조사가 3% 이상의 차이로 윤석열이 승리할 것을 예상했다.
[8] 국회부의장 정진석,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박수현, 원내대표 윤호중 등. 이외에도 국회의원 조승래, 이원욱, 용산구청장 성장현, 충남도의회 의장 김명선 등은 ‘직접’ 조문해 위로를 건넸다.
[9] 이후 초선의원 이탄희와 이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된 박지현이 이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긴 했으나 민주당 지지자들의 악성 댓글 세례를 받아야 했다. 민주당의 내부의 자정이 가능하기를 바라면서도 그를 낙관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추적단 불꽃 (2020).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 N번방 추적기와 우리의 이야기. 이봄.
기사 및 온라인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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