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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Oct 19. 2023

그가 그린 그런 지도

다양한 지도. 지도 읽기

랜드마크를 기준으로 유명 도시까지의 거리를 표시한 피켓. 그 어느 지도이든 중심은 나 자신이지만, 세상 사는 모두가 각자의 우주를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중심임을 존중하여야 한다.


호미곶에 인공섬을 띄우겠다는 실험적 아이디어로 건축 프로젝트를 추진한 적이 있다. 당시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장전하였기에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섭렵하며 야생마 같은 기운을 뻗쳤다. 달리고 또 달리며 되는대로 집어삼키던 와중에, 덜컥 바다 지도(charts)를 마주하게 되었다. 해류와 수심 지질 지형 등이 담긴 바닷속 내비게이션 정보 모음은 'un~der the sea~' 노래가 절로 입 밖으로 새어 나오게 할 만큼 나를 들뜨게 하였다.

대도시의 도면 파일을 얻게 되었을 때도 신기해 마지않아서 셀 수 없이 여러 번 훑어보았다. 선배가 특별히 아끼는 후배들에게만 하사한 지도였다. 지도가 제작된 지 10년도 넘었기에 변동사항도 꽤 있었지만, 평소 알 수 없는 오만가지 정보를 몹시 견고하게 쌓아 올린 고급 지도를 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지금은 정보를 구매하는 것이 체계화되었지만, 정보 습득에 한계가 있었던 시기에는 데이터 취합 능력치가 높을수록 학업과 업역에서 수월한 것은 분명했다. 황금 인맥을 가진 자가 족보를 구하는 것과 비슷한 메커니즘이다.

사실 건축에서는 지도의 힘이 절대적인 필수 요소이기에 대체로 친숙한 편이다. 출처가 명백한 지도 정보는 다양한 행위에 영감과 추진력을 선사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불변의 진리에 신뢰감을 보태는 사례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필요한 것을 찾고 읽어낼 수 있어야 건축에 용이한 사고가 발동하는 것이다. 도시 읽기에 능통한 사람은 처음 가는 곳에서도 거침없고 정확도 높은 길 찾기 능력을 뽐내곤 한다.


필자의 공간 지각력이 발달해서인지 지리에 대한 호기심이 꾸준히 상향곡선을 그려서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스스로 판단하건대 타인보다 지도에 대한 의존도가 꽤 높은 편임은 분명하다. 이사를 고민할 때나 약속 장소를 잡을 때마저, 우선 지도부터 펼치고 사고의 끈을 이어간다. 교통, 주요 시설, 각종 콘텐츠 클러스터 등을 견고하게 레이어링 하며 결정적 선택에 대한 기반을 구축한다.


지도는 갖은 상상의 나래에 정확한 힌트가 되어 준다. 철저히 간결한 선으로 그려진 그래픽 도면 파일임에도 불구하고 네버랜드 그 이상의 환상적인 세상으로 초대한다. 바다나 오지처럼 직접 가지 못하는 곳 이거나, 개인이 수집하기 어려운 것에 대해 광활한 정보의 스펙트럼을 한순간에 건네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카피 라이팅을 빌려서 '가보지 않아도 (대략) 알아요.'라고 흥얼거려본다.


그리고, 때로는 규정할 수 없는 모호함과 공백이 좋은 결과가 된다는 점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오감의 체크리스트로 나만의 약도 그리기를 하고, 아는 동네의 낯선 길 걷기를 거듭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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