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자전거 - 여행 13
우울한 비가 올 때 떠올릴 행복한 비
조각을 전공하던 대학시절 내내 작은 지하방에서 자취를 했다. 그 공간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고립된 공간이 만드는 네거티브적인 성향에 관한 작품을 제작했고 'HOLE'이라는 제목으로 개인 전시회도 했다. 지하방의 고립을 더욱 강화하는 오브제가 비였다. 비는 습기와 곰팡이도 데려왔지만 고립과 우울을 강화시키는 기재였다.
나뿐만 아니라 비가 올 때마다 힘들고 우울해지는 사람들은 흔하다. 과학적인 근거도 있다 하고 비가 고생이나 역경에 워낙 단골로 비유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비가 올 때마다 우울해진다면 우울할 날이 너무 많다. 대책이 필요하다.
우산 없이 비를 맞는 사람은 우울해 보이지만 비를 뚫고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은 행복해 보인다. 자전거를 즐기다 보니 굳이 비를 피하지 않게 되었고 한편으론 자전거 위에서 비를 즐기게 되었다. 속력에 비례해 더 빠르게 부딪히는 비의 촉감도 뒷바퀴를 타고 등을 때리는 물줄기의 느낌도 특별하다. 이제는 비 맞는 수영, 트레킹도 좋아하고 우중 캠핑이나 낚시도 은근히 바란다. 물론 많은 위험과 수고도 분명 동반한다.
국토종주 5일 차에 비를 만났다. 비를 피하지 않고 우비를 입고 라이딩을 계속해보자는 제안에 아들은 그래도 괜찮냐고 돼 물었다. 여러 걱정도 앞섰지만 내심 아들과 기분 좋은 비를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아들과 우중 라이딩을 감행했다. 우비를 때리는 빗소리도 우비 속으로 베어나는 땀도 기분 좋았다. 짧은 우중 라이딩에도 번거로운 일들은 많이 생겨났지만 사소하게 느껴졌다. 힘들고 우울해지는 비가 내리면 떠올릴 행복한 비가 적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