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지 못하면서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아들의 자전거 - 여행 17

by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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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지 못하면서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박진고개. 오르막 1.5km 경사도 11% 해발 165m.

자전거 국토종주의 긴 여정과 반복되는 고개에 아들은 너무 힘들어했다. 박진고개는 차도 길이라 밀어주지도 못했지만 아들은 꾸역꾸역 페달을 밟아 끌바 없이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서 만나는 경치와 바람에도 마음을 풀지 못하고 사진 찍기까지 거부하며 짜증을 냈다. "정상에 거의 다 왔으니 힘내"라는 응원도 "이번이 마지막 고개야"라는 아빠의 말도 무조건 거짓말이니 이제 안 믿는 단다.

박진 고개 주변은 온통 낙서판이다. 도로 옆으로 콘크리트 옹벽이 길게 이어져 있는데 콘크리트 표면이 들떠 있고 이끼가 자라면서 돌을 주워 긁으면 멋진 낙서판이 된다. 세월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소실될 낙서판이라서 다들 국토종주의 감회를 빽빽이 적어 놓았다. 정상 부근에는 낙서할 빈 공간이 없을 정도다. 누구에게는 농담이겠고 누구에게는 삶의 이정표가 될 수 있는 말들이 가득하다. 정당한 낙서라는 권유에 아들은 몇 번을 망설이다가 돌을 들었다.

‘2019년 OOO 극성 아빠와 국토종주. 여름에는 정말 하지 말자...’

아들이 박진고개에 쓴 낙서가 솔직한 이야기 같아 뜨끔했다. 아들이 아빠의 장래희망은 뭐였냐고 물어오면, 언제나 '훌륭한 아빠'라고 하면서 자상한 아빠를 자부했는데 극성 아빠라니. 아빠는 하트를 그리고 응원을 적었는데, 솔직히 진상 아들 모시고 오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섭섭한 마음이 또 울컥했다.

아빠와 아들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란 참 어렵다. 수없이 다양한 이유로 그러하겠지만 나와 아버지가 그랬고 나의 친구들과 그들의 아버지가 대체로 그렇다. 그래서 나와 너무 닮아가는 아들의 아빠 평에 더 민감해진다. 항상 멋진 아빠로 미화하려 들면서 진솔한 대화는 하고 싶어 한다. 솔직하지 못하면서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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