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www.naver.com)가 2007년 1월부터 이용자들이 많이 찾은 검색어를 분석해 발표한 <신조어 유행어 top 10>에 따르면 새롭게 등장한 신조어 중 '된장녀'가 1위에 올랐다. 곧 2022년을 바라보는 현재 이것은 '김치녀'가 되었고 주로 남성들이 생각하는 모든 부정적인 여성상들을 광범위하게 지칭하는 대명사의 기원이 되어버렸는데 슬프게도 현재 2021년인 지금까지 말이다.
된장녀의 정의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게 '소비 지향적이며 명품을 좋아하지만 경제력은 남성에게 의존하는 젊은 여성’으로 정의된다. 당시 인터넷 된장녀의 하루에 나오는 된장녀는 비싼 향수와 화장품을 진하게 바르고 고급 원피스와 핸드백을 애용하며 대학 구내식당에서 밥 먹기를 혐오하며 선배들에게 밥 사달라고 조른다. 백화점에서 윈도쇼핑을 즐기며 비싼 저녁을 먹으면 음식 사진을 찍어 개인 홈페이지에 남기고 ‘섹스&시티’ 같은 외국 시트콤을 즐겨 보면서 스스로 뉴요커가 된 착각에 빠진다.
2007년 당시 나는‘된장녀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20대 초반의 여대생으로서 이 사태를 지켜보면서 답답함을 느꼈다. 남성들의 정의 속에 있는 '된장녀'라는 인물이 같은 여성이 보기에도 비난하기에 충분한 허영덩어리였지만, 사실 보통 여성들이 한두 가지 정도 즐기고 있는 취미, 소비생활을 모두 집약시켜 한 사람이 그 모든 취미, 소비생활을 하는 것처럼 (물론 그런 여자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싸잡아서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을 향해 익명에 숨어서 마음껏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된장녀라는 캐릭터는 '경제력은 남성에게 의존한다'는 정의를 잠시 접어둔다면, 2000년대를 살아가는 20~30대 한국 여성들의 취미와 소비생활을 아주 거칠게, 집약적으로 보여준 예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2000년대를 살아가는 20~30대 대도시 미혼여성들의 삶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소설은 무엇일까? 나는 정이현의 소설을 꼽고 싶다.『낭만적 사랑과 사회』라는 소설집과 함께 21세기 젊은 작가군의 반열에 오른 정이현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표현하지 않는 세계’, ‘미디어를 통한 소문으로만 경험하는 집합적 대중의 세계’에 대해 날 선 촉각을 들이댄다. 우리가 사적으로는 향유하지만 공적으로는 발설하지 않는 세계 또는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경험하는 지독한 통속의 세계를 향해 정이현은 집요한 메스를 내리긋는다.
소설은 순결 이데올로기를 역이용하여 자신의 연애와 결혼을 규정짓는 대담한 여성 화자 ‘유리’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여러 남자 친구들 중에서 자신의 장밋빛 미래를 보장해줄 최고의 남자와 결혼하려는 그녀는 자신의 순결한 육체를 적극적으로 상품가치로 내세운다. 여자의 몸이 마치 유리잔과도 같다는 어머니의 설교나 남자 친구를 사랑해서 임신하게 되었다는 혜미의 고백은 그녀의 비웃음을 살 따름이다.
최근 20~30대 여성들은 도시에 살고 있는 낭만적 사랑의 유효성을 부정하는 냉소적인 나르시시스트들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결혼과 가족제도를 둘러싼 물신화 현상과 계층 현상에 민감한 촉수를 들이밀고, 낭만적 사랑을 견제하는 자기 보호의 전략을 만들어 낸다. 그녀들은 공적인 도덕적 가치나 내면적 윤리에 따르기보다 욕망의 개인 전략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한다. 그녀는 로맨스, 결혼, 가족을 위장한 둘러싼 지배적인 상징 질서 안에서 기만하고 음모를 꾸미고 위장함으로써 개체의 삶을 보존하고 자기 욕망을 실현할 방법을 모색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들은 지독하게 ‘현실적인’ 여자들이다. ‘개인이 처한 운명에 순응하는 여자’ 혹은 1990년대 여성소설에 등장했던 ‘내면에 침잠하여 사랑의 부재를 견디는 상처 받는 여자’들이 아닌 것이다. 이는 주인공 유리와 참 많이 닮아있다. 이처럼 철저하게 공시적인 20대 현대 여성들을 대표하는 사회성을 작품 속에 부각함으로써 작가는 사회의식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녀는 기꺼이 자신의 몸을 자본화한다. 그녀의 행위는 일종의‘악녀-되기’라 할 수 있는데, 그녀의 악녀 되기는 이전과는 새로운 인물 전형의 창조다. 이전의 소설 속‘악녀’들은 남자에게 직접적인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주인공 유리의 ‘악녀 되기’는 그들의 폭력성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탁월한 위장술에 의해 가능해진다. 살인 등의 범법행위가 아니라 대게 그녀들은 ‘위장된 순응’ 방식으로 이 세계에서 생존하고 복수한다. 체제가 요구하는 여성적 이미지를 연기함으로써 이들은 이 체제 안에서 자기 욕망을 실현할 전략을 짜는 것이다.
아름다우면서도 순종적인 여성성을 연기하며 투자가치가 높은 부유한 남성들을 유혹해 다양한 욕망을 드러냄으로써 ‘욕망을 가진 여성’을 처벌해 온 가부장제를 가볍게 위반하며, 규범적 여성성을 교란하고 가부장제의 허약성을 한껏 비웃는다.
‘삼 년 동안 줄기차게 입어온, 양은솥에 넣고 푹푹 삶아댄 누리끼리하게 변색된 낡은 팬티’를 입어 스스로 성적 흥분을 억누르며 마치 자신은 욕망이라곤 없는 순결한 여인인 양 연기한다. 있지도 않은 통금시간을 운운하고 여자애들끼리의 술자리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순결한 육체를 상품가치로 내세우지만 ‘지방캠퍼스에 다니는 데다 키스 하나 제대로 못하는 어리바리한 민석이’이가 ‘은색 투스카니의 주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오럴(oral)을 허락하는 평범하고 순종적인 여성은 아닌 것이다. 유리는 순결, 순수, 이타성, 정숙함 등을 추구하는 듯 보이지만 이는 실상 철저히 속물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을 위장하는 방식 일 뿐이다.
‘순진성’이라는 위장 전략은 여성에게 허용되지 않는 사회적 성적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체제가 요구하는 여성적 페르소나를 연기함으로써 유리는 이 체제 안에서 자기 욕망을 실현할 전략을 짜는 것이다.
이태원 표 A급 짝퉁을 애용하는 유리는 정품 샤넬 백을 메고 노란색 폭스바겐을 타는 친구 혜미와 같은 권력 구조를 얻기 위해 몸의 자유를 반납하고 자신의 몸을 상품화 과정에 위치시켜야만 한다. 세속 도시의 이 현대판 마녀 유리는 다양한 욕망을 드러냄으로써 욕망을 가진 여성을 처벌해 온 가부장제를 가볍게 위반하며, 규범적 여성성을 교란하고 가부장제의 허약성을 한껏 비웃는다. 그런데 이러한 발칙한 위반을 부추기는 것은 21세 기적 신분의 표지인 명품이나 강남으로 상징되는 현대적 낙원에 대한 욕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유리가 남녀평등이나 자아실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급 상품으로 둘러싸인 인공 낙원의 거주자이고 싶어 나쁜 여자가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은색 투스카니, 뉴비틀, 진주색 EF소나타 골드, 루이뷔통 백, 막스마라의 연회색 캐시미어 코트, 에르메스 가죽 백 등으로 상징되는 물질적 욕망의 상품 기호들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이다. 정결한 여인으로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여대생의 수줍은 미소 속으로 파고드는 성격화의 화법은 경쾌하고 유연하다.
이 작품의 제목(title)은 『낭만적 사랑과 사회』(Romantic Love and Society,1983)라는 원 저서에서 가져온 것이다. 제클린 실비스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낭만적 사랑이 근대사회에 이르러 관습적인 형태로 길들여지는 과정을 분석한다. 이 책에 따르면 남성의 구애가 중심을 이루던 중세시대와 달리 개인주의적 사회경제질서로 재편된 산업사회에서는 여성들이 적극적인 욕망과 감정을 드러내게 되었고, 결혼과 가족이 사적인 영역으로 분리되면서 낭만적인 사랑 역시 제도적인 결혼으로 흡수되었다고 보았다. 이런 주장을 빌려온 정이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은 낭만적 사랑이 결혼으로 귀결되는 과정을 여성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물질적 욕망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여성이 한국소설에 등장하게 된 것만으로도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 ‘유리’는 소비사회의 여성적 욕망을 당당하게 드러냄으로써 가부장제의 물 신화된 사회가 여성의 육체와 정신에 씌운 허위의식을 가차 없이 뒤집는다.
소설의 대단원은 주인공이 자신의‘순결’을 이용하여 결혼이라는 상품시장에서 승리하기 위해 세부적인 연애기술을 연마하고 신중하게 결혼상대를 고르던 중, 드디어 상대가 나타나 첫날밤을 치르기 위한 주인공의 ‘십계명’의 실천이 진행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가 조심스럽게 준비해왔던 첫날밤의 환상은‘혈흔’이라는 결정적 증거가 나타나지 않음으로 인해 수포로 돌아간다. 주인공의 건곤일척(乾坤一擲)이 패하는 공간이다. 자신이 평생을 연기한 ‘순결’이라는 가치가‘제 값’에 교환되지 못함을 상징하고, 그것은 유리의 삶 전체에 대한 부정을 은유 상징한다. 이러한 대단원의 구현으로 물 신화된 욕망에 스스로 포박된 여성의 모습은 작가가 기도했던 전술이 체제의 감옥에 갇힐 수밖에 없는 소모적인 것임을 드러낸다.
증명할 수 없는 순결의 대가로 유리의 남자 친구는 무심하게 루이뷔통 가방을 선물한다. 유리는 그 순간 그 가방이 ‘짝퉁’이 아닐까 의심한다. 짝퉁에 대한 여주인공의 불안감은 자신이 연기한 ‘순결’에 대한 가치가 ‘제 값’에 교환되지 못함을 상징하고, 그것은 유리 자신의 삶 전체에 대한 부정이 가깝다.
‘짝퉁’은 유행에 대한 집단적 트라우마를 상징한다. 유행의 첨단을 리드하는 명품에 대한 강박의 상징 짝퉁은 낡고 초라한 것에 대한 수치심을 자극한다. 헌것에 대한 수치심은 정이현이 추구하는 우주론을 지배하는 핵심적 정서다. ‘헌것’에 대한 굴욕감은 유행‘상품’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인간’에게도 해당된다. 교환가치가 부족한 인간에 대한 수치심은 쪽팔림을 넘어 분노와 살의로 치닫는다. 유행의 속성은 인간 자체에까지 적용되는 것이다.
이처럼 주인공 유리의 ‘달콤하고도 위험한 도시’를 돌파하는 방식은 철두철미하게 주류사회로의 진입이라는 한 가지의 목적에만 골몰하는 영악한 존재다. 그러나 결국 원하는 것을 얻어도 행복에 닿을 수 없는, 아니 자신의 인생에 행복이라는 이름은 물질로 환원된 뿐이라고 생각하며 냉소하지만, 우리에게 그 냉소가 어째 가련해 보인다.
작가는 이러한 주인공 시점을 사용하여 ‘진정한 사랑’의 판타지가 존재하지 않는, 오직 합리적 교환의 관계만이 지배하는 연애의 폐쇄회로를 그린다. 그녀는 그 세계에 대한 어떤 비판이나 옹호의 태도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보여준다. 그녀는 낭만적 사랑의 신화에 대한 휴머니즘적 시선을 잔혹하게 해부할 뿐이다.
돈이 있는 여자들과는 어차피 출발선이 다른 게임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낭만적 사랑과 사회≫속의 유리는 겉과 속이 일관되고 고분고분한 착한 여자가 이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연기한다.
그러나 이렇게 서슴없이 연기, 위장을 통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것처럼 보이는 주인공은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소비의 주체를 자임하던 여성이 물적 욕망 자체에 포섭되는 아이러니컬한 결과는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난다. 몸의 자본화는 비록 여성에게 부과된 가부장적 가치들을 교란하는 짜릿한 효과가 있지만, 욕망의 실현을 위해 몸을 훈육의 대상으로 위치시켜야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즉 그들은 가부장적 가치로부터 탈주하기 위해 가혹한 자기 감시에 헌신하는 자아가 되어야 한다. 그녀는 물질을 얻기 위해 몸의 자유를 반납하고, 자신의 몸을 상품화 과정에 위치시켜야만 한다. 권력을 갖기 위해 스스로를 인위적인 이미지로 연출하는 순간 여성의 몸은 시장의 논리에 흡수되고 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이현은 저급한 여성잡지나 삼류 대중문화 장르에나 나올만한 이야기의 통속성을 아이러니와 역설이라는 문학적 기법을 활용해 문화적 주제로 탈바꿈시킨다. 소비자본주의가 조장하는 욕망의 회로를 충실히 따라가는 인물을 통해 역설적으로 그러한 욕망의 왜곡된 모습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것이다.
결국 소설은 자신이 알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도시의 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각성하게 한다. 거짓말도, 위장도, 짙은 화장도 필요 없다는 것을, 자신의 맨얼굴로 살아가도 괜찮다는 것을, 교묘하게 사람들을 옭아매는 ‘도시의 룰’을 더욱더 교묘하게 이용하면서 루이뷔통 백을 가지게 되어도 ‘짝퉁’을 의심해야 하는 슬픈 악녀보다는 옥탑방에 살아도, 이 약육강식이 지배하고 있는 무서운 세상에서 패배했지만 결코 패배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대단원을 통해 말하는 것 같다.
부디 다가오는 2022년에는 새로운 '**녀'가 나오지 않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