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학도면 오히려 좋은 이유
대학원에 진학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언제일까?
학사를 따러 가는 대학교에 진학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20살일 것이다. 대부분의 학사 신입생 연령 분포가 20대 초반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졸업 후, 신입사원 혹은 임용 나이 제한 때문에라도 한 살이라도 어린 것이 유리하다.
그렇다면 석사를 따기 위한 대학원도, 어릴 때 진학할수록 무조건 좋을까? 나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특히, 내가 재학 중인 전문대학원의 경우엔 더 그렇다. 실제로 우리 대학원 학생분들을 보면 실무를 하다가 진학한 사람들의 비율이 꽤나 높다. 30대에 입학한 나도 동기들 중에 나이가 중간 즈음이다.
다시 말해 대부분이 실무에서 경험을 쌓다가 여러 이유들로 대학원을 찾는다. 사업을 하다가 한계에 부딪쳤을 때 인맥을 얻고 싶어 온 대표님도 계시고, 원하는 직무 채용공고에 ‘석사 이상’ 지원할 수 있어 단순히 학위가 필요해 온 학생도 있다. 나 또한 현업에서 7년간 일하며 얻은 실무 경험 외에 다른 인사이트를 얻고 싶었다. 내 직무에 만족하며 한창 재밌게 일하던 20대 때도, 나는 내 직무를 30대에는 그만하길 꿈꿨다. 그리고 지금 시기야말로, 더 늦기 전에 대학원에 가 직무 전환을 꾀하는 것이 적기라 판단했다.
부양해야 할 가족도, 결혼할 상대도 없고 빚도 없었다. 7년간 쌓은 실무 경험으로 석사 공부를 하기에도 용이했다. 학비와 생활비를 모아놨기 때문에 졸업까지 여유로운 마음으로 공부할 수도 있다. 여기에서 지체하다간 통상적으로 결혼을 하게 될텐데, 그러면 더욱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할 것 같았다. 결혼생활에 들이는 시간과 체력 때문에 온전히 학업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또한 결혼을 한 후엔 평균적으로 아이를 낳을 것이고, 그러면 더욱 학업에 집중하기 힘들 것이라 판단했다.
또한 애초에 수 천만원이 들어가는 등록금은 결혼자금과도 상충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모쪼록 나는 실무를 어느 정도 하고, 부양해야 할 가족이 없이 학비를 벌어놓은 현재가 가장 대학원에 진학하기 좋은 시기라 생각했다. 실제로 대학원에서 인맥과 인사이트를 쌓더라도, 실무를 하고 온 상태에서 쌓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것 같다. 대학원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론만으로는 한계에 부딪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 이론이, 현업에서는 이미 한참 전에 정립된 것일 때도 있다. 실무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대학원의 이론/인맥이 더해지면 시너지가 일어나기 쉽다. 또한 졸업논문을 쓸 때도 교수님들은 학생이 실무에서 하던 분야의 주제를 쓰는 것을 추천한다. 해당 분야에 대한 공부와 인사이트가 이미 쌓여있고, 기존 학자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주제가 실무를 하다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량적/정성적 연구를 하는 경우, 관계자들에게 설문을 받아야 하는데 대학원에 바로 진학한 학생들에게 그만큼의 관련 분야 인맥이 있기 힘들다.
물론, 인생에 정답은 없다. 배움의 시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히나 학사와 달리 필수가 아닌 대학원은 더 그럴 것이다. 국내에서 최고령 석사를 받은 분은 93세의 할머니셨다고 한다. 하지만 난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30대에 퇴사를 결심하고 전업 대학원생이 되었다.
오늘이 내가 공부에 온전히 전념할 수 있는 가장 젊은 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