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노르웨이,
마지막 경유지, 노르웨이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계가 팬데믹에 빠지기 시작하였을 때 우리는 새로운 이주 준비를 하고 있었다. 5년간의 아제르바이잔 생활은 우리 가정에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고, 뉴질랜드에 작은 집도 마련할 수 있었다. 훌륭한 교육 시스템과 적극적인 학교의 지원으로 우리 가족은 물질적인 것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꽤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없는 모국어와 문화 교육이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었다. 15년간의 해외 살이에 피할 수 없는 향수병은 좀 더 자주 찾아오고 있었다. 나는 한국의 편리한 생활, 친구, 한식이 늘 아쉬웠고, 톰슨 씨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뉴질랜드의 자연환경과 바다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모국어와 문화 교육과 더불어 우리 집이 있는 뉴질랜드에 가서 정착하기를 고대하기 시작하였다. 사실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우리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아제르바이잔에서 근무하던 학교에 12월쯤 사직의사를 밝힌 후 놀랍게도 우리에게 또 다른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톰슨 씨가 폴란드의 국제학교 시절부터 겸임하였던 IB 스쿨 감사직이 가져온 행운이었다. IB 스쿨 승인을 위한 평가를 위해 방문하였던 노르웨이에 소재한 국제 학교에서 교장직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물론 우리의 의사가 상당히 중요하였다. 노르웨이는 많은 이민자와 난민을 받는 인구가 적은 나라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특별 대우가 없었다. 물론 우리의 경우는 편도 비행기와 약간의 해외 이사비용을 지원받았지만, 물가와 세금이 높은 나라라는 것을 익히 들어왔기에 생활하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폴란드에 거주하는 동안 북유럽에는 여러 번 여행을 가보았는데, 서유럽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을 받았었다. 적은 인구수 때문인지 늘 한산하고 조용했으며, 곳곳의 푸른 자연과 예쁜 집들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노르웨이는 어떤 곳일까. ‘노르웨이’를 듣는 순간 우리는 추운 나라, 스키, 북극, 겨울왕국 등 온통 겨울과 관련된 생각만 떠올랐다. 북쪽으로 가는 길의 뜻을 가진 노르웨이, 북반구로 향한다는 사실이 꽤나 모험적이면서 흥미로웠다.
분명 사직서를 내면서 뉴질랜드로 돌아가려고 한 것 같은데 오히려 돌아서서 뉴질랜드에서 더 멀리 떨어진 나라에 가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아직까지 방랑의 힘이 남아 있었던 것일까. 노르웨이를 마지막 경유지로 생각하기로 하였다. 학교 측에서는 나를 위하여 조만간 교사 자리를 만들어 보겠다고 하였고, 톰슨 씨는 교장직 계약에 사인하였다. 나는 15년 만에 휴직하고 노르웨이에서 풀타임 주부로 일 년을 재미있게 보내리라는 흥분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어리석게도 추운 노르웨이 겨울에 고독을 친구 삼을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하였다.
세계가 코로나와 싸우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2020년 7월, 우리 가족은 아제르바이잔에서 노르웨이 ‘콩스베르그’로 이사를 왔다. 콩스베르그는 오슬로에서 60km 떨어진 작은 소도시로 은광과 스키장이 유명한 곳이다. 산과 언덕으로 둘러 싸여 있었기에 집들은 대부분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자가 격리 2주 후 우리는 자유롭게 동네를 걸어 다니며 일상생활을 했다. 뉴스에서 보는 코로나의 심각성과 다르게 노르웨이만큼은 보통의 일상생활이 가능했다. 숲과 언덕이 많은 동네라 매일같이 산책하며 곳곳에 즐비한 산딸기와 블루베리를 따먹는 등 야외활동을 즐겼다.
아침저녁으로 찾아오는 사슴과 같은 야생동물들과 아름다운 자연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노르웨이의 공공시설이나 사유물들은 언제나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었고, 충분한 공간과 시설들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그들의 이런 문화가 마음에 꼭 들었다. 아이들은 축구나 수영 등 스포츠를 쉽게 시작할 수 있었다. 이민자가 많은 나라라 다양한 인종들이 보였으며 만 8세가 지난 아이들은 합법적으로 자유롭게 동네를 혼자 누빌 수 있다. 노르웨이는 치안이 좋아서 아이들은 부모의 보호 없이도 시내를 다닐 수도 있고, 밖에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다. 아름다운 자연과 피요르드 덕에 톰슨 씨도 뉴질랜드에 온 것 같다며 행복해하였다. 실제로 노르웨이와 뉴질랜드는 숲과 호수, 낚시, 해안가, 아웃도어 라이프, 바비큐 그릴 등 여러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자정에나 찾아오는 노을과 긴 여름 해가 좋았고, 복잡하지 않고 여유로운 텅 빈 동네 조차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높지 않은 물가에 감사했으며 친절하고 영어를 매우 잘하는 노르웨이인들에게 감격했다. 이곳에 지내는 동안 언어의 장벽이 없을 것이고 평생 살아도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월셋집 대신 자가를 마련하여 평생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짧은 여름과 가을이 지나자 노르웨이 전체가 어둡고 긴 겨울을 맞이 하게 되었다. 추운 노르웨이는 예상했지만 어둡고 긴 겨울은 생각하지 못하였다. 노르웨이의 첫겨울은 10월부터 내리는 이른 눈과 추위로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하였다. 오후 2시부터 해가 지기 시작하는 겨울은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한 번의 겨울로 우리의 자세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르웨이에서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야외활동을 즐기는데 즉 운동을 생활화하고, 주말에는 캠핑이나 등산을 간다. 책에서 배우는 학습과 야외 활동을 적절히 균형 있게 경험하도록 장려한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방한복을 입고 조깅을 하거나 스키를 타는 것은 노르웨인 인들의 일상이다. 폭설이 내리면 스키나 썰매를 탈 수 있어 좋고, 눈이 그치면 캠핑이나 등산을 가는 그들의 적극적인 야외활동과 긍정적인 삶을 배울 수 있다.
우리 가족은 지금까지 세 번의 여름과 두 번의 겨울을 노르웨이에서 경험하였다. 계절과 관계없이 늘 곁에 있는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수영, 스키, 스케이트, 테니스, 카누 등 각종 스포츠를 경험하고 더불어 자연과 공존하는 삶을 지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