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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_ 당신의 삶에도

에필로그

by Mira


워킹맘으로 살아온 제 삶을 누군가와 깊이 나눈 적이 많진 않았습니다. 더 솔직히는 주위의 누군가가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삶을 주의 깊게 지켜본 경험이 드물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막연하게 ‘롤모델이 없다‘고 한탄하며, 저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참 어렵고 오래 걸렸습니다.

엄마로서도, 직장인으로서도, 딸로서도.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워킹맘에 대한 저서, 통계, 그리고 제 주위의 적지 않은 사례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이 이야기가 저만의 것이 아니라, 시대와 구조 속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많은 워킹맘들의 고충과 흔적일 수 있겠다는 것을.




숫자는 현실을 냉정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어린 자녀를 둔 기혼 여성의 고용률은 같은 연령대 남성보다 20% 낮습니다. 이른바 'M자 커브'라 불리는 이 굴곡은 OECD 국가 가운데서도 우리나라가 특히 두드러집니다. 한국은 세계 13위 경제 규모를 자랑하지만, OECD 유리천장 지수는 최하위(29개국 중 28위)입니다.

회사 안으로 들어가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500대 기업 여성 임원의 비율은 이제야 8%를 넘겼을 뿐입니다. 회의실에서 여성 리더의 자리가 드문 이유를, 이 작은 숫자가 설명합니다.


가정의 풍경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맞벌이 부부의 절반 이상이 아이를 부모 세대에 맡깁니다. 특히 영유아를 둔 가정은 열 가구 중 일곱(67.9%)이 조부모의 손을 빌려 하루를 버팁니다(20년 육아정책연구소 기준). ‘일과 가정의 균형’은 더 이상 한 세대의 몫이 아니라, 윗 세대가 함께 짊어져야 가능한 구조가 되었습니다.


또 다른 연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남성은 요건의 60%만 갖춰도 도전하지만, 여성은 100%를 채워야 지원한다고(구글, HP 사례연구). 이는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기회의 문 앞에서 여성들이 스스로의 검열 기준을 높게 잡도록 만드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오늘날 워킹맘들은 일과 가정, 현실과 꿈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그 무게를 개인의 강인함만으로 감당하기에는, 세상은 여전히 느리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모든 숫자는 차갑지만, 동시에 뜨겁습니다.

회의실의 빈자리, 기회를 주저하는 후배의 망설임, 늘 부족하다 말하는 동료의 한숨, 결국 회사를 떠난 선배의 뒷모습까지. 숫자는 곧, 제가 살아온 풍경이기도 했습니다.

이를 지켜본 젊은 후배들은 이제 공공연히 말합니다.


“저는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요.”


그리고 이미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과 워킹대디들조차, 그 선언 앞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지만, 세상이 바뀌는 속도보다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불만에 손해를 보는 건, 결국 그 자신일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변화는 분명히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남성의 육아휴직 참여율은 10년 전보다 9배 가까이 늘었고, 2024년에는 32%를 기록했습니다. 이제는 젊은 아빠들이 육아의 무게를 기꺼이 짊어지려는 모습이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숫자를 보다 보니 바람이 생겼습니다.

육아휴직을 다녀온 아빠들이 복직 후에도 사회에서 더 인정받고, 더 잘 되는 사례가 많아지기를. 그리하여 그들이 성공하는 모습이 곧, 아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가 버틸 수 있다는 증거가 되기를. 육아의 한가운데에서 흔들리며 살아가는 아빠들이,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존중받는 시대가 오기를. 그리고 그 모습이 워킹맘과 함께 이 시대의 새로운 롤모델로 자리잡기를.




앞으로도 오늘날의 많은 워킹맘, 더불어 워킹대디들은 불완전함을 안고 일하고, 사랑하고, 버텨갈 것입니다.

그래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은 더 이상 저만의 위로가 아닙니다. 이 사회 속에서 같은 조건을 안고 살아가는 모든 부모들에게 전하는 언어입니다.


오늘 미처 챙기지 못한 빵 봉투가 어딘가 덩그러니 남아 있을지라도 괜찮습니다. 그 불완전함 속에서 길을 만들었고, 내일도 길을 만들어 갈 테니. 우리가 찾던 롤모델은 바깥 어딘가에 있지 않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자신의 길을 꾸준히 이어가는 그 모습, 그 자체로 이미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빛나는 롤모델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당신의 삶에도, 나의 삶에도.



지금까지 ‘워킹맘은 롤모델이 없습니다’를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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