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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번외] 롤모델이 없었다 _ 없는 게 당연했다

by Mira


십 수년 전,

그때는 참 회식이 잦았습니다. 부어라 마셔라 취하는 자리, 그리고 다음 날 아무렇지 않게 출근하는 것이 암묵적인 미덕처럼 여겨졌던 시절.


신입으로 눈 밖에 나지 않으려면 회식에 빠지지 않아야 했고, 적당히 술도 마셔야 했고, 노래방에서 윗 분들의 장단에 맞춰 한 곡쯤 분위기를 띄우는 센스도 필요했습니다. 그런 것들이 모두 '당연한 회사 생활'의 일부였습니다.


어느 연말 회식 자리였습니다. 2차는 늘 그렇듯 노래방이었고, 많은 인원이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큰 방을 찾기가 유독 어려웠던 날, 누군가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근처에 큰 룸이 있는 곳으로 가서,

저희는 노래만 하겠다고 하시죠.”


그렇게 따라간 곳은 룸 형태의 접대 장소였습니다.

함께 간 여성 직원들도 몇 명 있었고, 저는 가장 막내였기에 그저 '이럴 수도 있나 보다' 싶었습니다. 룸은 생각보다 평범했고, 우리는 맥주를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평소처럼 회식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한두 시간이 흘렀을까요.

저는 화장실이 가고 싶어 조용히 룸 밖을 나왔고, 그때 처음 본 장면을 마주했습니다. 복도의 긴 벽을 등지고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여성들, 그리고 다른 방을 향해 들어가는 여성들.

그분들과 함께 복도 끝의 화장실을 쓰던 순간, 그 사이에서 각진 정장을 입은 저를 바라보던 낯선 눈빛.


‘아... 내가 지금 어딘가의 경계에 있구나.’


함께 있는 사람 그 누구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기에, ‘불편하다’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앉았던 자리로 돌아와, 직원들이 부르는 곡의 박자에 맞춰 박수를 쳤습니다. 그리고, 남모를 불편한 감정은 맥주와 함께 삼켰습니다.




불과, 십 수년 전.

경계선 위의 아슬아슬한 농담을 함께 웃어넘겨야 했고, 남성 중심의 딱딱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자 이유 모른 채 불려 가 멍석처럼 자리를 채우기도 했던 시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땐 '워킹맘'이라는 말 자체가 너무 먼 이야기였습니다. 애초에 여성 직장인으로서의 자리조차 어딘가 모르게 불완전했던 시절.

그때는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자존감, 아니... 존재감조차 상황에 따라 미세하게 흔들리곤 했습니다.


그 구조 안에서 ‘일도 잘하고, 아이도 잘 키우는‘

워킹맘의 롤모델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시간이 꽤 지났고, 세상은 조금 바뀌었고, 저는 그 속에서 워킹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워킹맘의 롤모델은 존재할 수 있을까?'


아마, 그 답은 오늘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위의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특정 집단·사회를 대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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