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 롤모델이 없었다 _ 현재에도

by Mira


얼마 전, 워킹맘 지인이 이런 질문을 건넸습니다.


“회사에서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여성 임원 멘토링 자리를 마련해 주었어요. 거기에 세 분이 멘토로 오셨는데, 한 분은 미혼, 한 분은 기혼이지만 아이가 없고, 마지막 한 분은 아이가 있지만 남편이 전업이신 거죠. 우리 회사는 여직원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었던 걸까요?”




제가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와 지금의 직장 내 풍경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여성 리더들이 곳곳에서 보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유능했고, 헌신적이었으며, 참 단단했습니다.

회사에서는 간혹 그들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탈만 여지지, 남자보다 더해.”


이해인지, 인정인지 모를 그 말속에는 그녀들이 악착같지 않았다면 버틸 수 없었던 세월이 담겨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보다 훨씬 더 불완전했을 그 시절을 뚫고 지금의 길을 걸어온 분들일 테니, 그 ‘악착같음’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없었을 겁니다.


야근 중 산통을 겪다 출산하셨던 분, 아이가 아파도 퇴근하지 못하고 자리를 지키셨던 분, 아이의 저녁을 챙긴 뒤 밤늦게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셨던 분.

실제로 여성 리더들 중에서도 워킹맘이었던 이들의 아픈 사연은 마치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한 무용담처럼 전해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런 의뢰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 회사 여성 임원들을 분석해 주세요.”


대상은 적었습니다. 그 안에서 보인 두드러진 공통점, 결혼하지 않았거나, 아이가 없었습니다. 아이가 있는 극소수 분들도 둘 이상 자녀를 둔 여성 임원은 없었습니다.


그분들의 데이터를 분석하다 보니, 남성 임원과 차이를 보이는 두 가지 결과가 눈에 띄었습니다.

하나는, 스트레스에 대한 강한 내성과 버티는 인내심. 흔히 말하는 악바리.

다른 하나는, 불필요한 사교성이나 감정적 친화력을 스스로 억제하는 경향. 즉, 관계에서 일정한 거리두기.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거지?’


혹시나 했던 예상이 차가운 숫자로 증명이 되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분석을 멈췄습니다.


‘이 결과는 꺼내지 말자. 의미를 두지 말자.

그것이 그녀들의 성격이든, 태생이든,

치열한 삶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전술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많은 사람들이 어렴풋이 아는 사실이더라도 ‘데이터 분석 결과’라는 말이 붙는 순간, 그 무게와 영향력이 달라지기에 저는 분석하던 창을 그대로 닫았습니다.


성공하고 인정받는 여성들의 공통점이 ‘악바리’와 ‘거리두기’ 라면, 만약, 그것이 정말 필요하다면, 나는 누구에게 그 필요성을 전하고 싶은 걸까?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여성들 사이에 ‘일도 잘하고, 아이도 잘 키우는‘ 워킹맘의 롤모델은 실제로 존재하기 어려운 게 아닐까?


이 질문 앞에서, 저는 한참 대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 직장 동료 워킹맘이 물었습니다.


“저는 일하는 게 좋아요.

해낼 때, 살아있는 기분이 들어요.

근데, 엄마로서 아이도 잘 키우고 싶어요.

저는 어디를 향해 누구를 보고 가면 좋을까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워킹맘의 롤모델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쩌면, 완벽한 롤모델을 찾는 일 자체가 잘못된 시작이었을까요.


keyword
이전 02화2. [번외] 롤모델이 없었다 _ 없는 게 당연했다